기업이 IR을 하지 말아야 할 때

기업이 IR을 하지 말아야 할 유일한 순간은 ‘존재하지 않을 때’뿐이다

by 꽃돼지 후니

IR은 기업이 시장과 소통하는 가장 전략적인 창구다. 단순히 실적을 나열하고 전망을 발표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존재 이유와 방향성을 시장에 전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IR을 하면 안 되는 때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IR을 일시적으로 제한해야 할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IR의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블랙아웃 기간은 IR 활동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대표적인 시점이다. 미공개 정보를 무심코 흘리는 순간, 공정공시 위반이라는 법적 리스크가 현실이 된다. 또, 인수합병이 진행 중일 때는 기밀 유지가 핵심이다. NDA(기밀유지협약) 하에 진행되는 협상 정보는 IR 담당자에게도 철저히 금지된 영역이다.


소송이나 내부 감사처럼 위기 관리가 필요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IR은 자칫 불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전략적 신제품이나 기술 파트너십 논의가 오가는 민감한 시점도 IR의 ‘침묵 전략’이 필요한 때다. 시장에 유리한 정보만 던져줄 수는 없다.


이처럼 법적, 전략적, 상황적 이유로 IR이 ‘잠시 조용해져야 하는 때’는 있지만, IR이 완전히 멈춰야 할 이유는 없다. 진짜 위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다. 시장은 설명이 없는 기업에 가장 무서운 이름을 붙인다. ‘불확실성’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은 언제나 주가를 짓누른다.


결국, IR은 침묵을 관리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을 때조차,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것. 살아 있는 기업이라면, 언제나 시장과 대화해야 한다. 기업이 IR을 하지 말아야 할 유일한 순간은 단 하나. 바로 그 기업이 존재하지 않을 때뿐이다.


“왜 지금 IR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나는 기업에서 IR(Investor Relations)을 담당하고 있다. IR은 단순히 실적을 보고하고 주주를 관리하는 기능이 아니다. 시장과의 대화이며, 세상에 대한 설명서이고, 기업이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해석하는 가장 솔직한 언어다.
그런데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지금처럼 주가가 좋지 않을 때, IR을 해야 하나요?”, “위기 상황에서는 잠시 쉬는 게 낫지 않나요?”라는 질문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기업이 IR을 하지 말아야 할 때는 없다. 위기든 기회든,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시장과의 대화는 멈춰서는 안 된다.


코닥의 침묵, 그리고 비극

코닥은 한때 세계를 움직이던 기업이었다. 필름 카메라 시장의 제왕, 사진과 기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업을 “몰락의 아이콘”으로 기억한다.
흥미로운 건,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1975년, 사내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은 디지털 카메라의 원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경영진은 이 기술이 기존 필름 사업을 망가뜨릴까 두려워했다. 결국 코닥은 자체 혁신을 외면했고, 그 기술은 소니와 캐논, 삼성에 넘어갔다. 코닥은 시장에 묻지 않았다. “이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투자자와 소통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쌓은 성공의 벽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결과는 파산이었다. 혁신을 두려워한 침묵, 시장과의 단절, 그 모든 것이 코닥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 넣었다.


정보의 비대칭을 넘어서

주식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정보의 비대칭, 제도적 차별, 자본력의 격차. 우리는 그것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른다.
기관과 외국인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데이터와 분석 리포트를 바탕으로 전략을 짠다. 반면, 개인 투자자는 뉴스 한 줄, 공시 하나를 근거 삼아 투자 결정을 내린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바로 ‘IR’이다.
기업이 시장에 직접 설명하고, 불확실성을 줄이고, 전략과 가치를 공개하면, 정보의 흐름은 한결 공평해진다.
IR은 ‘평평한 운동장’을 향한 기업의 약속이다.


IR은 위기 때 더욱 빛난다

시장이 좋을 때는 기업도 말을 많이 한다. 실적이 좋고 주가가 오를 때는 말하지 않아도 시장이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시장이 싸늘할 때, 실적이 불확실할 때, 주가는 떨어지고 언론의 조명은 사라진다. 이때 IR이 필요하다.
투자자는 불안해하고, 언론은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며, 시장은 기업의 침묵을 ‘위기’로 해석한다.
이럴 때야말로 IR이 말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 문제를 이렇게 보고 있고, 이렇게 해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침묵은 공포를 부른다. 반면, 설명은 신뢰를 만든다. 어떤 기업은 위기를 해명하지 못해 주가가 반 토막 나기도 하고, 또 어떤 기업은 성실한 소통으로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치를 지켜낸다.


언제든 시장에 묻고, 시장에서 답을 찾는다

IR은 일방적인 발표가 아니다. 시장의 반응을 듣고, 투자자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세상의 흐름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다.
시장에 묻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기업은 결국 고립된다. 시장이 ‘좋다’고 평가해야만 자금도 모이고, 브랜드 가치도 쌓이며, 인재도 몰려온다.

과거엔 경영진과 실무팀만 IR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기업의 전략 그 자체가 IR이다. ESG, 정책 리스크, 산업 변화, 글로벌 확장. 어느 것 하나 시장과 무관한 것이 없다.


기업이 IR을 하지 말아야 할 유일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기업이 존재하지 않을 때뿐이다. 살아 있는 기업이라면, IR을 멈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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