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성이 필요하다

by 꽃돼지 후니

지금 우리는 ‘디지털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자본은 더 이상 오프라인, 실물, 은행 중심의 거래 체계에 머물지 않는다. 블록체인, NFT, 메타버스, 가상자산 등으로 확장된 디지털 경제에서의 자본은 새로운 형태의 통화, 곧 디지털 자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기존 법정 화폐와 1:1로 연동되며 안정적인 디지털 결제 수단으로 기능하는 이 자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토대를 재편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모바일 결제, 인터넷 인프라 등 어느 하나 뒤처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디지털 통화 생태계에서는 점점 더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디지털 원화”가 없는 디지털 대한민국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USDC와 USDT는 이미 전 세계 디지털 자산 거래의 주류가 되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이 두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유동성의 절반을 넘는다. 심지어 미국 정부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이 지연되고 있음에도,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 역할을 사실상 대체하고 있다.

news-p.v1.20250613.5a32f461af984f628f1be98285de2f4c_P1.jpg 미국 주요 스테이블코인 규모 -출처:헤럴드경제

중국은 반대 전략을 취했다. 중앙은행 주도로 디지털 위안화(CBDC)를 출시하고, 이를 아시아 지역의 무역결제 및 외환 대체 수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심지어 일부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에서는 중국과의 무역 대금을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하는 시범사업도 가동 중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본격적인 상용화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NFT, 게임 아이템, 디지털 콘텐츠 결제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외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원화는 디지털 경제 내에서 “실종된 통화”가 되어버렸다.


왜 민간이 먼저 나서야 하는가?

정부는 여전히 통화 주권 훼손, 금융 안정성 위협 등의 이유로 CBDC와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조심스러워한다. 물론 리스크는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제도 밖에서 손 놓고 있는 사이, 외화 중심의 디지털 자산 질서는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는 환율 리스크, 자금세탁, 해외 통화 정책 영향 등 대한민국 디지털 경제의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가 나서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원화(CBDC)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동시에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허용하고 육성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서클(Circle)은 USDC를 발행하며, 뉴욕 금융감독청(NYDFS) 등으로부터 정기적인 회계 감사를 받고 담보 구조와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테더(USDT)는 한동안 회계의 불투명성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점진적으로 규제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역시 정부의 감시와 제도적 프레임 안에서 충분히 안정성 확보가 가능하다. 문제는 허가 구조를 너무 경직되게 만들면 생태계조차 태동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금융이 아닌, 디지털 경제의 인프라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다. 게임, 메타버스, SNS, 이커머스, 실물 연동형 NFT, 디지털 아트, 교육 등 수많은 영역에서 한국 디지털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 진출할 때 원화로 디지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인프라이다.


지금의 구조는 ‘콘텐츠는 한국에서 만들고, 수익은 외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으로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K-콘텐츠, K-게임이 흥행해도, 결국 그 부가가치는 해외 금융 자본에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의 정의, 발행 주체 요건, 회계 기준, 담보 기준 등 제도화의 골격을 갖춰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실제 발행 주체들이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언제 시작하느냐’의 문제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주도권은 속도와 신뢰의 문제다. 한국이 제도적 불확실성 속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외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이상 ‘통화 주권’이라는 명분만으로 지체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파일럿 프로젝트다. 정부가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고, 민간이 발행과 유통에 참여하면서 실제 사례와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도는 유연하게, 감독은 정밀하게, 생태계는 개방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선택이 아니다. 디지털 경제에서 통화 주권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지키기 위한 전략적 핵심 자산이다. 지금 이 생태계를 구성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또 다른 주도권 전쟁에서 뒤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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