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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행경산악회는 서해랑길을 걸었다

바다 바람과 굴향기, 그리고 함께 걷는 사람들

by 꽃돼지 후니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11월 8일 두번째주 토요일, 행경산악회는 올해의 가을 정모를 맞아 서해랑길 64코스 간월암에서 천북굴단지까지의 16km를 함께 걸었다.

서울에서 이른 아침 버스에 오를 때마다 느낀다.
우리는 산을 정복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행경산악회의 회원들은 함께 걷기 위해,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리고 자연 속에서 위로받기 위해 길 위에 선다.


오전 7시 양재에서 출발한 버스가 서산 간월암 주차장에 멈추었을 때, 서해의 바람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았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간월암은 물때에 따라 길이 열리고 닫히는 신비로운 곳이다.
회원들은 간월암에서 부처님과 바다를 배경으로 서로의 바람을 빌었다.
“오늘은 걷는 만큼 마음도 가벼워지면 좋겠다.”
누군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서해랑길은 평탄했지만 길었다.
천수만 방조제와 남담항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바다와 갯벌이 번갈아 펼쳐졌다.
구름덕분에 햇살이 가려져 너무 좋았고 바람은 시원했다.
서로의 발소리와 바다의 파도소리가 한 리듬이 되어 흘렀다.

중간중간 간식을 나누며 쉬어가고 누군가는 새우깡,누군가는 버터링쿠키, 누군가는 조금전 구매한 호두과자를 함께 나누며 웃었다. 그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정(情)이 있다.


“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으며 산다)” 3대 회장님의 말처럼, 우리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걷는 것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의식이었다.


4시간 반의 걸음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천북굴단지였다. 멀리서부터 하얀 연기와 고소한 굴구이 냄새가 바다 바람에 실려왔다. 이곳은 매년 11월이면 ‘천북굴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행경산악회는 매년 1회 해안길을 트레킹 하는 편인데 지역 축제 기간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올 해는 천북 굴축제 기간에 트레킹을 했고 내년은 가보지 못한 다른 곳의 축제 기간에 걸을 것이다.

천북 굴은 천수만의 청정 해수를 머금고 자라 껍질은 얇고 속살은 통통했다. 굴단지 가게마다는 “튀고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하는 상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 일행은 '갈산굴수산'에 자리를 잡았다. 철판 위에서는 굴이 폭탄처럼 굴 껍질이 터지고, 꾹 다문 조개 입이 익어가면서 조금씩 열리면 장갑낀 손으로 칼집을 내고 탐스런 굴을 한 입에 쏙 들어간다.

굴구이, 굴찜, 굴무침, 굴전, 굴라면, 굴칼국수까지 온 세상이 굴로 가득한 향연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리고 총동문 회장님이 직접 말아주신 쏘맥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회원들은 서로의 잔을 부딪히며 웃었고 그 웃음 속에는 함께 있음의 감사가 담겨 있었다.

늦게 도착한 회원 한 명을 모두가 기다려 주었고 그 회원은 전원에게 따뜻한 커피를 쏘며 고마움을 전했다.
신입회원과 회원의 딸도 함께 걸었고 이방인 같지 않은 따뜻한 눈빛으로 자연스레 어울렸다.


산이 아닌, 사람을 만나러 간다

행경산악회의 진짜 목적은 ‘산행’이 아니다. 우리는 산을 오르기보다 서로에게 내려가는 사람들이다.
서로의 대화 속에서 공감하고, 한 잔의 커피 속에서 위로받고, 자연이 주는 감동 속에서 다시 일어선다.


매월 한 번, 버스를 타고 산으로 혹은 바다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서다. 산과 바다는 우리의 배경일 뿐 진짜 주인공은 사람이고, 그 사람의 마음이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땅이 이어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그래서 이 모임은 참 이상하고, 참 따뜻하다. 회사에서는 CEO이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좋은 친구다.
산이 주는 경외감, 바다가 주는 위로, 그리고 사람이 주는 감동이 어우러진다.

가을날의 서해랑길, 그리고 다음을 향해

몇 시간 거하기 먹고 마시고 웃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 천수만의 저녁이 찾아왔다.

굴향이 남은 손끝을 씻으며 모두는 “다음 달에도 또 함께 걷자”고 약속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 누군가는 조용히 잠들었고, 누군가는 그날의 사진을 정리하며 미소 지었다.


행경산악회의 길은 늘 그렇다. 산이든 바다든, 그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가을날, 행경산악회는 서해랑길을 걸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을 만났다.
산이 아니라, 사람을 오르는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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