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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위험’ vs ‘금융혁신 기회’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한국 금융의 갈림길

by 꽃돼지 후니

2026년을 앞둔 지금, 한국 금융권의 최대 화두는 ‘스테이블코인’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안정성 훼손”을 우려하며 은행 중심 발행 모델을 추진 중이고 반대로 핀테크 업계는 “소비자 접근성과 혁신”을 내세우며 민간 주도형 발행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규제 논쟁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누가 디지털 경제의 통화 주도권을 쥘 것인가”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사실상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본다.
따라서 통화량과 금리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은행과 공공기관 중심의 제한적 발행 모델을 선호한다.

그러나 시장은 다르게 움직인다.
디지털 자산과 글로벌 결제 인프라는 이미 국경을 넘었고 핀테크 기업과 결제 스타트업들은 사용자의 실생활 중심에서 답을 찾고 있다.


강남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실험 —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현장’

서울 강남역 인근 피부과 대기실에 일본어와 중국어가 뒤섞인다.
코로나 이후 회복된 외국인 발길이 ‘K-뷰티’ 열풍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보톡스, 레이저 시술, 스킨케어 패키지 등 미용 의료가 이제는 ‘한국 여행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것이다.


낯선 풍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결제 방식이 달라졌다.
현금 대신 스마트폰, QR코드, 와우패스(WOWPASS), 알리페이(Alipay), 위챗페이(WeChat Pay)가 일상화됐다. 하지만 이 결제 방식들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

와우패스는 외국인 전용 선불카드이지만 충전 한도가 낮다(약 10만 원).

카드 결제는 3~5%의 수수료가 붙는다.

환전소 방문은 번거롭고, 각국 통화 차이로 인한 실시간 환율 손실도 크다.


이 빈틈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 결제다.
달러나 엔화에 1:1로 연동되어 가치가 안정적이고 환전 절차 없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즉시 결제가 가능하다. 병원, 숙박업소, 쇼핑몰 등 외국인 결제가 많은 업종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실질적 효용이 있는 결제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핀테크의 움직임 — 시장은 이미 혁신의 문을 열었다

와우패스 운영사 오렌지스퀘어는 최근 ‘스테이블코인 월렛 및 ATM 서비스’를 공개했다.
사용자는 USDC, JPYC 등을 앱에 충전해 원화로 환전하고 이를 한국 내 교통, 쇼핑, ATM 인출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선불카드가 아니라 글로벌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이다.

오렌지스퀘어 이장백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스테이블코인은 환율 수준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통용이 가능하다.
여행 결제 수단으로 가장 적합하다.”

그 말처럼, 의료·숙박·외식 업계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결제 수단”으로 보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강남, 명동, 제주, 부산 일대는 스테이블코인 실험의 전선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시각 — “통화정책 위험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입장은 다르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민간 기업이 대규모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그 코인은 사실상 ‘민간 디지털 원화’가 된다.
이 경우 한국은행이 공급하는 통화(M1, M2)가 줄고 금리정책이나 유동성 조절 기능이 왜곡될 수 있다.

또한 핀테크 사업자가 무분별하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자금세탁, 해킹, 유동성 붕괴 등의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한은은 ‘은행 중심 발행 구조’를 검토 중이며 민간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거나 감독 하에 두려는 방침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요컨대 한은은 “혁신보다 안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정이 과연 시장의 변화를 막을 만큼 강력한 논거가 될까?


시장의 반론 — ‘위험’이 아니라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

핀테크 업계의 입장은 정반대다.
이들은 “위험을 이유로 혁신을 미루는 것은 결국 시장을 해외에 넘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 중국은 이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통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민간 결제 시스템을 혼합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서클(USDC)과 JP Morgan의 JPMD를 통해 민간 주도형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했다.

한국이 은행 중심의 폐쇄적 모델을 고집한다면 소비자는 편리함을 찾아 외국계 결제 서비스로 이동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통화정책을 안정시키겠다며 소비자의 손을 놓는 역설”이 된다.


K-콘텐츠 소비의 현장 —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쓰이고 있다

K-뷰티뿐만이 아니다. 홍대와 명동의 K-패션, 잠실과 여의도의 K-팝 공연 티켓, 그리고 부산·제주의 K-푸드 관광지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결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일본, 동남아 관광객들은 엔화와 달러를 각각의 블록체인 스테이블코인으로 보유하고 있어 한국 원화 결제 시스템과 직접 연결되는 인프라가 절실하다.
만약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상용화된다면 이들은 더 이상 환전소나 카드사 수수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한 피부과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외국인 환자에게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가능하다면 병원도, 환자도 편하다.
수수료가 낮고 송금이 빠르기 때문이다.”

이는 결제의 문제이자, 문화산업의 경쟁력 문제다.
K-뷰티와 K-콘텐츠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디지털 결제 생태계의 ‘수요 단말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은 바로 이 시장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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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이유로 기회를 놓치지 말자

한국은행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통화정책 위험’을 이유로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울타리 안에 가두는 순간 혁신은 더 이상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은 이미 실험을 시작했다.

강남의 의료관광, 홍대의 K-콘텐츠, 명동의 쇼핑거리, 제주도의 숙박·외식업체까지 스테이블코인은 “쓰이고 있는 화폐”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제 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실험 중심의 정책이다.
규제가 아니라, 작은 샌드박스에서의 검증이다.
그리고 은행과 핀테크가 협력할 수 있는 공존형 구조가 그 해답이 될 것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의 위험’이 아니라 금융혁신의 기회다.
한국이 그 기회를 붙잡을지 놓칠지는, “누가 더 먼저 현실을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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