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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화가 가져올 변화

Tokenisation: 금융 인프라의 다음 50년

by 꽃돼지 후니

금융 인프라는 지난 50년간 놀라운 속도로 변화해왔다. 1970년대 우편으로 주식 정산서를 주고받던 시절에서 SWIFT가 등장해 거래 시간이 며칠에서 몇 분으로 단축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변화는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토큰화(Tokenisation)—모든 자산을 디지털 토큰으로 기록하고 즉시 정산할 수 있는 기술—는 금융 시스템 그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랙록의 래리 핑크(Larry Fink)와 롭 골드스타인(Rob Goldstein)은 《The Economist》 기고문에서 “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회계의 복식부기(double-entry)를 만든 이후 처음”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언어를 바꿔버리는 변화다.

블랙록 기고문.jpg The Economist 기고문

토큰화는 왜 중요한가: ‘기록’의 혁신에서 ‘정산’의 혁신으로

블록체인의 본질은 세 가지다.

누가 무엇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 기록이 누구든 검증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것

그 기록이 이동할 때 중개자가 필요 없도록 만드는 것

과거에는 주식·채권·부동산 등 대부분의 자산이 종이 문서 또는 비표준 전자 기록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는 곧 결제 지연, 카운터파티 위험, 높은 비용을 의미했다.

토큰화는 이 문제를 단 한 번에 해결한다.

실시간(instant) 정산

감사·검증의 자동화

분할 소유·소액 투자 가능

공통된 형태의 자산 표준화

이 변화는 금융의 ‘속도’를 바꾸는 것을 넘어 유동성, 접근성, 비용 구조를 다시 만드는 혁신이다.


토큰화가 만드는 두 가지 경제적 효과


① 즉시 정산: 위험을 제거하는 금융 인프라

지금 대부분의 글로벌 시장은 여전히 T+1 또는 T+2 기반(거래 후 하루~이틀 뒤 정산)으로 운영된다. 여기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 카운터파티 위험이다.

“내가 산 상품을 상대방이 정말 줄까?
돈을 보내줬는데 상대방이 파산하면 어떻게 되는가?”

토큰화는 이 위험을 제거한다.
블록체인의 특성상 자산과 결제가 동시에 이동하며, 정산 과정의 불확실성을 거의 제로로 만든다.

이는 금융 안정성 차원에서도 매우 큰 진전이다.


② 비유동 자산의 유동화: 실물 자산 금융의 민주화

전 세계 사모시장(Private Markets)은 수천 조 원 규모이지만, 대부분 대형 기관만 접근할 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거래가 느리고,

문서 기반으로 복잡하며,

대규모 단위로만 매매 가능했기 때문이다.


토큰화는 이런 자산을 “1만원 단위로도 사고팔 수 있는 디지털 토큰” 으로 바꿔버린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스, 인프라 채권, 예술품, 탄소배출권 등"

그 결과 개인·글로벌 투자자 누구든 새로운 투자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며, 시장의 깊이는 폭발적으로 커진다. 실제로 블랙록은 RWA(실물자산 기반 토큰) 시장이 “향후 10년 내에 채권·부동산 시장의 핵심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큰화가 바꿔놓을 금융 지형


① 전통 금융(TradFi)과 디지털 금융(DeFi)은 경쟁자가 아니다

블랙록은 이 관계를 “경쟁이 아닌 다리(bridge)”라고 규정한다.
왼쪽에는 전통 금융—은행, 자산운용사, 규제기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알고리즘, 자동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네트워크가 있다. 토큰화는 두 세계를 연결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만든다.

결론은 명확하다. 자산은 한 지갑에서 통합 관리되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주식

채권

예금

스테이블코인

토큰증권(STO)

RWA

이 모든 것이 공통 레일 위에서 움직이게 된다.


② 개발도상국이 먼저 채택한다

현재 암호자산 보유자의 75%가 개발도상국에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물가 상승

금융 접근성 부족

자본 규제

느린 크로스보더 송금


토큰화 기반 금융은 이런 제약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따라서 토큰화의 초기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남미·아프리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이미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 논의를 서두르는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규제와 보호 장치 없이 토큰화는 성공할 수 없다

블랙록은 강조했다.

“접근성 확대는 반드시 더 강력한 보호 장치와 함께 가야 한다.”


토큰화가 자산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위험은 포장 방식이 아니라, 자산이 무엇인지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규제당국과 산업이 함께 구현해야 할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동일자산·동일위험·동일규제 원칙

채권이 토큰으로 바뀌어도

부동산이 조각 토큰으로 바뀌어도

펀드 수익증권이 디지털화되더라도

“자산의 본질적 위험”은 동일하며, 규제 또한 이를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② 투자자 보호 장치

자산 검증

커스터디 안정성

스마트컨트랙트 보안

발행자 재무건전성

회계·감사 기준

토큰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이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③ 글로벌 공통 인증 시스템

블랙록은 특히 디지털 ID·KYC 표준화를 강조했다. 하나의 지갑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재인증·중복절차를 줄여야 한다.


토큰화는 금융의 미래이며, 동시에 시험대다

토큰화는 금융 시장의 ‘속도’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금융 시장의 ‘논리’를 바꾸는 기술이다.

실시간 정산

카운터파티 위험 제거

글로벌 자산의 단일 레이어

개인 투자자의 접근성 확대

기관 시장의 투명성 강화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면 금융 인프라는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더 거대한 전환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혁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호 장치와 규제가 함께 가야 금융은 더 빠르고 안전하고 포괄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블랙록이 강조한 것처럼, 토큰화는 단지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세계 금융 질서를 다시 디자인하는 기회다.
그리고 이 기회는 준비된 국가와 기업, 규제체계를 가진 곳이 먼저 가져가게 될 것이다.

지금 금융 산업이 마주한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이 다리 위를 건너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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