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페스팅, 삶을 설계하는 또 하나의 방식

생각 → 감정 → 행동 → 결과 → 현실

by 낭만무애 후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적어도 나 자신을 바라볼 때 그렇게 느낀다. 그런데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운이 좋아지도록 삶을 설계해 온 사람’에 가깝다. 그리고 그 설계의 다른 이름이, 내가 말하는 매니페스팅(Manifesting)이다.


매니페스팅은 멋있게 포장하면 우주의 기운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내 삶 속에서 그것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생활적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꽤 선명하게 그려 놓고, 그 사람답게 행동하는 습관을 매일 반복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또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것.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이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가볍게 던지는 낙관이 아니라, ‘안 되더라도 이 과정에서 얻는 게 있을 거야’라고 믿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사람들이 모였다. 도전이 일상이 된 사람들, 힘들다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언제 한 번 같이 해볼까요?”를 꺼내는 사람들. 나는 그들 사이에 있으면, 마치 잘 설계된 체력 단련장에 들어온 것처럼 내 정신과 감정의 근육이 단련되는 느낌을 받는다.


도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멋있게 들리지만, 사실 나는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모르는 곳에서 1박을 해야 한다거나, 처음 타보는 차를 타고 모르는 길을 간다거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길을 찾아야 할 때면 지금도 심장이 조금 빨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도 늘 그쪽으로 한 걸음 내디디는 쪽을 선택해 왔다. 강의 요청이 오거나 설명회 제안이 들어오면, 머릿속에서는 ‘이거 준비할 시간 될까?’라는 계산이 돌아가는데, 입에서는 먼저 “한번 해보겠습니다”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말을 해버린 순간, 내 안의 매니페스팅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 말에 걸맞은 내가 되어야지.”


그래서 나는 수없이 새벽에 일어나 슬라이드를 고치고, 자료를 다시 뒤지고, 내 경험의 서랍을 하나씩 열어본다. ‘이 주제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경험을 꺼내야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직 완벽히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준비되는 과정 자체를 스스로에게 매니페스트하는 셈이다.


나는 학습하는 사람이고 싶다.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삶과 일, 글로 연결해 내는 사람. 그래서 나에게는 하나의 리듬이 있다. 2년에 한 번씩 책을 낸다는 약속이다. 출판계 전체로 보면 별 대단한 숫자는 아니지만, 내게는 중요한 주기다. “2년에 한 번씩 책을 내는 사람”이라는 문장은 나를 앞으로 당겨 주는 일종의 선언이다.


새 원고를 쓰는 시기가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출판사 관계자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커피를 마시며 시장 얘기를 듣고, 독자의 변화를 듣고, 다른 저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만남 자체가 매니페스팅이다. ‘책을 중심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에 내 시간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두는 것. 그러면 이상하게도, 다음 책의 주제가 어느 날 문득 선명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머리로 억지로 짜낸다기보다, 오래 준비해 둔 씨앗이 어느 날 발아하는 느낌에 가깝다.


조찬포럼과 정기적인 칼럼 활동도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 아직 도시가 완전히 깨지 않은 시간에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내 하루의 방향을 정렬해 준다. 새벽에 듣는 한 문장의 인사이트가, 그날 나의 선택과 대화를 바꾸어 놓는다. 정기적인 칼럼은 그 반대 방향의 매니페스팅이다. 누군가의 아침에, 내 문장이 조용히 놓여 있을 수 있도록 나를 밀어붙이는 장치. ‘꾸준히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현실로 불러오는 작업이다.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숫자와 전략, 구조를 좋아하지만, 결국 사람과 이야기가 빠지면 금세 지루해진다. 그래서인지 나와 오래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매너가 있고, 배려가 몸에 배어 있고, 공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나는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대화 상대가 자리를 떠날 때 “내가 인정받았어, 존중받았어”라는 느낌을 갖고 가도록 말이다.


이 역시 매니페스팅이다. ‘배려 깊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삶’을 원한다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먼저 경청하고, 먼저 기뻐해 주고, 먼저 축하해 줄 때,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남는다. 그 관계가 쌓이면서 내 삶의 정서는 점점 더 안정되고,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감정적 안전망이 마련된다.


몸을 관리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새벽 운동을 주 2회 이상 하는 것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다. ‘나는 나를 돌보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매주 두 번씩 실제 행동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몸이 피곤해도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는 그 순간, 나는 매니페스팅을 하고 있다. ‘나중에 더 큰 무대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나’를 오늘 이 새벽에 조금씩 불러오는 것이다.


저녁 모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네트워크에 성실한 편이다. 하지만 그 성실함은 명함을 많이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깊게 쌓는 방향에 가깝다. 술자리가 길어지는 중에도,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만남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의미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대화의 깊이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품으며 여러 해를 건너온 관계들은 어느 순간, 비즈니스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기대 설 수 있는 기둥이 된다.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을 즐긴다. 완전히 처음 해보는 형식의 프로젝트, 아직 정의되지 않은 분야, 아무도 가보지 않은 조합을 보면, 겁과 설렘이 동시에 올라온다. 예전에는 이 감정을 잘 다루지 못했다. 설렘을 과대평가하거나, 두려움에 질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거나. 그런데 매니페스팅을 의식적으로 연습하면서부터 나는 이 감정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아, 또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왔구나.’


그래서 요즘의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매니페스팅은 “될 거야”를 주문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그림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그 그림에 어울리는 일상의 습관을 꾸준히 선택하는 힘이라고.


긍정적인 사람들 속에 나를 두고, 도전을 즐기는 사람과 함께 움직이고, 2년에 한 번씩 책을 내는 리듬을 유지하고, 조찬포럼과 칼럼으로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고, 공감과 배려를 습관처럼 연습하고, 새벽 운동과 저녁 네트워킹으로 몸과 관계를 관리하고, 새로운 것 앞에서 “해보겠다”고 먼저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매니페스팅의 결과물이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낯선 것 앞에서 심장이 빨라질 것이고, 때때로 ‘이번엔 너무 큰 걸 받아들인 건 아닐까’ 걱정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알고 있고, 그 사람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매일 조금씩 선택하고 있다.


그 선택들의 축적을 나는 이렇게 부르고 싶다.
“정훈식 매니페스팅.”


결국 매니페스팅의 핵심은 거창한 우주의 비밀이 아니라, 내가 어떤 나를 믿고 있는가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길 위의 나를 꽤 마음에 들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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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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