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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화 Oct 16. 2024

[독서모임 구하기] 소리로 즐기는 낭독모임

매너리즘에 빠진 독서모임 구하기

낭독은 소리 내어 글을 읽는다는 의미입니다. 묵독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왜 소리를 내어 글을 읽을까요? 글의 내용에 읽는 사람의 호흡이 더해집니다. 그 호흡이 더해진 리듬은 듣는 사람에게 전달되고 또 다른 울림을 줍니다.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마음속에 글이 다시 한번 새겨집니다. 시각적인 자극과 청각적인 자극이 모두 만족되는 경험이죠.


그런 매력이 있기에 낭독회, 낭독공연, 낭독모임이 존재합니다. 요즘은 책을 읽어주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채널, 오디오북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시 낭송을 전문으로 하는 낭송가분들도 각종 무대에서 시를 멋들어지게 낭송해 줍니다. 소리 내어 읽기만이 주는 색다른 매력을 독서모임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알아봅니다.



낭독 모임의 매력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 행위는 책 속에 갇혀 있던 활자를 일으켜 세워 공간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입체성은 다양한 모습과 역할로 읽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단어 하나의 의미에서부터 단락과 단락 사이의 맥락에 이르기까지 긴 호흡으로 깊이 있는 독서가 되도록 돕는 안내자와도 같다.”


<낭독은 입문학이다>의 저자이자 오랜 시간 낭독 모임 ‘북 코러스’를 만들고 이끌었던 김보경은 낭독의 즐거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숏폼에 빠진 요즘 세대에게 ‘긴 호흡의 깊이 있는 독서’ 그 자체만으로 힐링의 의미를 제공합니다. 


어떤 분들은 낭독이라고 하면 구연동화를 생각합니다. 그림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연기자와 같은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 없다고 피하기도 합니다.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톤으로 편하게 읽으면 됩니다.


군부대에서 독서코칭강사로 파견되어 독서모임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때 시집을 읽고 독서모임하는데,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시집에 수록된 여러 작품 중에서 인상 깊었던 시를 낭송하기로 했는데, 씩씩한 군인들이 엄청 부끄러워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뻣뻣하게 시를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톤을 찾고 편안하게 낭송했습니다. 이렇게 천천히 언어를 음미하며 감상한 경험이 많지 않아 낯설었겠지만 그만큼 큰 충격이었습니다. 많은 멤버들이 시를 들으며, 이런 시가 있는 줄 몰랐다며 혼자 후루룩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작시를 써 온 멤버가 있어, 저자가 직접 낭송해 주는 시를 듣고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시가 아닌 에세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출간 기념 낭독회를 참여했을 때, 김영하 작가가 읽어주는 책의 구절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미리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내용이 새롭지는 않았으나 전해지는 감성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나의 속도가 아닌 읽어 주는 사람의 속도와 흐름에 맡겨 보는 느긋한 경험이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합니다. 그 사람만의 호흡, 표정, 언어 습관 등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는 이 시간을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의도적인 여유를 갖고 낭독의 시간을 가져 보세요. 대충대충 훑어 읽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집중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글자마다 영혼을 불어넣어야 하니까요.


낭독 모임 입문하기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단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기존 독서모임의 방식에 낭독의 요소를 살짝 추가할 수 있습니다. 선정된 도서가 시집일 때 가장 적용하기 수월합니다. 낭송할 텍스트가 길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습니다. 대신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릴 수 있는 환경과 서로 경청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다른 멤버가 천천히 낭독할 때, 혼자 눈으로 빨리 읽고 딴짓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지정 도서 모임일 때, 지정된 책을 각자가 읽고 옵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각자가 고른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낭송 후에 이 시를 고른 이유도 살짝 덧붙이면 좋습니다. 직접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눈으로 읽었을 때와 다른 감상을 나눕니다.


 자유 도서일 때, 각자 다른 시집을 가져와도 좋습니다. 자신이 가져온 시집에서 몇 편을 골라서 읽는 시간을 갖습니다. 다른 멤버가 처음 듣는 시이기 때문에, 잘 전달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에세이나 소설에서도 낭독의 요소를 모임에 넣을 수 있습니다. 딱딱한 비문학 책보다는 문체의 맛이 있는 작품이 좀 더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좋았던 문장, 아름다웠던 문장을 정성 들여 읽고 나눕니다. 부끄럽더라도 특정 구절을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넣어 봅니다. ‘이 구절이 좋았어요!’에서 그치지 않고 ‘그 구절 한번 읽어주세요.’로 나아갑니다. 빨리빨리 대충 읽지 않고 여유 있게 낭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번역체에서 느낄 수 없는 글의 맛을 느끼기 위해 한국소설만 다루는 독서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작품들도 모두 문장이 유려하다고 소문난 분들의 소설을 선정했습니다. 그때는 시간을 들여 소리 내어 문장을 읽고 생각을 나누었는데, 그 생각이 문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문학에서 글의 맛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회 무슨 맛인지 몰랐다가 어느 순간 그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맛에 눈을 떴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슬로우 리딩, 윤독 모임하기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기가 중심인 모임도 있습니다. 책을 미리 읽어오지 않고 함께 모여서 읽으며 완독 합니다. 순서대로 돌아가며 읽는다고 하여 윤독(輪讀) 모임이라고도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던 장면과 비슷합니다. 분량을 정하고 함께 천천히, 긴 호흡으로 읽어 나갑니다. 


소리 내어 읽기가 쑥쓰럽거나 어색해서 힘들다는 분도 있지만, 반대로 부담이 적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책을 미리 읽고 오지 않아도 되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조리 있게 표현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읽기 힘든 상황에도 모여서 함께 진도를 나가니까 결국 해내게 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한 권을 함께 완독 했을 때는 함께 달성한 결과이기에 성취감도 배가 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호흡하는 그 분위기 자체가 좋다고 하는 멤버도 있습니다. 빨리, 많이 읽으려는 조급함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작은 부담 없는 단편 소설을 추천합니다. 완독까지호흡이 너무 길면 내용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리 자체에 신경 쓰다가 내용을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읽다가 지치지 않도록 분량을 적절히 나누고 돌아가며 읽습니다. 미리 정하지 않고 스스로 분량을 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스스로 읽다가 마무리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분에게 바톤을 넘깁니다. 우선 소리 내어 읽는 것에 집중한 후, 완독 후 가볍게 감상을 나누어도 좋습니다.


 혼자 읽기 힘든 고전이나 대하소설 등을 일부러 선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분량을 체크하며 완독을 목표로 하는 경우로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 <혼불(최명희)>, <토지(박경리)> 등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몇 달 동안 이루어지는 대장정이기 때문에, 긴 호흡을 생각해서 일정을 짜야합니다.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소음 없이 서로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 더 적합하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윤독 모임을 하면 다른 분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릴 수 있으니까요. 온라인 윤독 모임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를 보면, 오롯이 목소리로 감동이 전달되었다는 거죠. 


문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비문학 책도 가능합니다. 함께 천천히 곱씹을 수 있는 책이라면 장르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사회자는 이 모임에서 통찰력 있는 질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크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그 에너지를 도서 선정과 환경 조성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읽다가 지치지 않고 함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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