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독서모임 구하기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잘 싸는 것도 중요합니다. 먹은 것이 없으면 잘 나오지 않으니 건강하게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 잘 먹었는데 나오지 않으면, 그것 또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듣고 읽는 것을 수용의 과정, 먹는 것에 비유하고 말하고 쓰는 것을 표현의 과정, 싸는 것에 비유합니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고, 이 아웃풋을 바탕으로 피드백하여 좀 더 정교한 인풋이 이루어집니다. 선순환 속에서 우리는 건강하게 읽고 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읽기의 끝은 쓰기다,라는 말과 함께 결국 독서모임의 다음 단계도 글쓰기 모임이라며 힘을 싣는 분들도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작가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좋은 것은 알아도 부담스러운 글쓰기, 모임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함께 알아봅니다.
좋은 문장을 새기는 필사 모임
글쓰기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쓸 내용이 없다고도 하죠. 그럴 때 좋은 문장을 따라 쓰면서 글쓰기 내공을 차곡차곡 키울 수 있습니다. 옮겨 적으면서 내용도 마음속에 새겨집니다.
필사 모임의 형식은 다양하게 진행됩니다. 손으로 종이에 적는 아날로그 필사와 컴퓨터로 기록하는 디지털 필사가 있지만, 여기서는 아날로그 필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챌린지 형태의 온라인 필사 모임이 있습니다. 각자가 필사 미션을 수행하고 인증하는 형태입니다. 리더가 필사할 책이나 문장을 지정해서 안내하면, 다른 멤버도 그 문장을 직접 적고 카페나 오픈채팅방에 인증합니다. 자유롭게 본인이 필사하고 싶은 문장을 선별해서 적고 인증하기도 합니다. 자유도서 모임처럼 공통된 텍스트가 아닐 때는 그 문장이 왜 좋았는지 덧붙여도 좋습니다. 천천히 손으로 문장을 옮겨 적으며 의미를 곱씹는 과정을 습관화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어서 그 문장에 대한 생각을 추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오프라인 필사 모임입니다. 이것도 지정 도서 모임과 자유 도서 모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존 독서모임에 필사 과정을 추가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각자가 독서리뷰처럼 책 내용을 정리하는 것과 독서모임에서 다 같이 필사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정 도서를 읽은 후 모임에서 좋았던 문장을 필사합니다. 책은 같아도 필사한 문장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30분~1시간 정도 각자만의 글쓰기 시간을 가진 후, 필사한 부분을 서로 공유합니다. 필사의 비중에 따라 시간과 형식이 달라집니다. 가벼운 필사를 지향하면 포스트잇으로 공간을 제한하여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왜 필사했는지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지정 도서에 대한 필사는 전체 맥락을 공유한 상태이기에 자연스럽게 작품의 이야기로 심화 토론도 가능합니다.
반면에 자유 도서 모임은 각자 다른 책을 가지고 왔고, 그중 일부 문장을 필사한 것이기 때문에 맥락을 공유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간단한 책 소개와 함께 필사한 문장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필사에 진심인 모임은 모여서 각자 필사만 하기도 합니다. 책 1권을 통째로 필사하는 목표를 함께 정하고 도전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필사는 좀 더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도서 선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의미를 새기기 좋은 고전이나 문장이 아름다운 작품을 선호합니다. 디지털 디톡스의 과정으로 필사 모임이 환영받기도 합니다.
읽고 쓰기의 연결고리, 독후감 모임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학 숙제 중 하나가 독후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책을 멀리하게 된 이유가 독후감 숙제 때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학생들이 싫어하는 독후감을 왜 그렇게 쓰라고 하는 것일까요? 좋기 때문입니다. 읽기와 쓰기의 연결고리로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 대학교 1학년 독서토론 교양 강의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교수님이 지정해 주신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서 게시판에 올립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감상문을 읽고 댓글을 달아야 합니다. 이것도 성적에 포함되는 과정이라 의무였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열띤 책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지막으로 토론을 마친 후 조별로 나눈 이야기를 발표자가 공유하며 다른 모둠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듣습니다. 책도 읽었고, 감상문도 썼고, 다른 사람의 감상문도 읽은 상태니 기본기가 충만해진 상태에서 깊은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때니까, 성적에 들어가니까 이렇게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유료 독서 플랫폼에서는 모임의 퀄리티를 위해 이러한 방식을 차용합니다. 지정된 시간까지 A4 1장의 독후감이 올라오지 않으면 모임에 참여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새벽에도 부랴부랴 글을 써서 게시판에 올립니다. 이렇게 글을 미리 쓰고,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은 후 대화를 나눈다면 훨씬 질 높은 모임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멤버들과의 협의가 필요합니다.
모임 후에 글쓰기를 강조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모임 후에 쓴 감상문은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 그 경험도 함께 담겨 있게 됩니다. 독서 후기와 독서모임 후기가 더해진 형태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런 모임 후 감상문을 공유한 멤버에게 상품을 준다거나, 페이백을 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앞이냐 뒤냐의 차이지 감상문 자체를 모임의 과정 안에 포함하려고 하는 의지가 보입니다.
독후감의 전형적인 방식으로는 책을 읽게 된 동기나 첫인상, 호기심을 유발하는 에피소드 등으로 시작해서 줄거리를 요약하고 감상과 느낌을 적습니다. 여기서 나의 자유로운 감상이 주로 드러나기 때문에 독후감상문이 됩니다.
서평식 글쓰기를 추구하는 학구적인 모임도 있습니다. 서평은 말 그대로 평가의 형태가 포함되기 때문에 평가의 근거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 더 탐구하는 자세로 작품을 분석하고 정리합니다.
그 외에도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적기도 하고, 뒷 이야기를 바꾸거나 이어서 쓰기도 하고, 육하원칙에 맞게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는 읽은 내용에 생각을 더하는 글쓰기가 좀 더 부담이 덜할 수 있습니다.
일상과 상상력을 글로 표현하는 모임
필사나 독후감이 지정 텍스트에 얽매여 있었다면, 좀 더 자유로운 글쓰기 모임도 가능합니다. 책에서 소재만 쏙 뽑아서 활용한다거나,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아 에세이 형식으로 자유롭게 써도 됩니다. 읽기 모임과 연계하는 경우 첫째 주 독서모임을 하고 둘째 주에는 만나서 글을 쓰는 형식도 가능합니다. 새로운 책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콘셉트에 따라 정말 분리해서 별개의 모임으로 운영하기도 합니다.
책에서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 ‘시간여행’이라는 주제로 글을 자유롭게 써 봅니다. 가족의 갈등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작품에서 키워드만 뽑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사람들과 공유합니다. 2시간 모임을 전제로 생각하면 글쓰기 시간을 30분~1시간 정도로 제한하고 이후에는 쓴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쓴 분량이 많지 않다면 전문을 소리 내어 읽어 줘도 되고, 일부만 요약해서 전달하며 느낌을 공유해도 됩니다.
책에서 벗어나 일상 속 키워드를 정해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사회 이슈에 대한 내용이나 요즘 관심사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시나 에세이, 소설 장르도 자유롭게 열어두고 쓸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만 조성해 줍니다. 글쓰기 경험 자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30분~1시간 제한적인 상황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평가는 최소화하고 감상만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쓰기 실력 향상을 위해서 미리 글을 쓴 후 게시판에 공유하고, 다들 읽은 상황에서 모여 합평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과제가 주어지면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에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긍정적인 부담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실천력이 글쓰기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멤버들이 과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글쓰기에 참여하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