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독서모임 구하기
페어링(Fairing)은 함께 짝을 지어 내놓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잘 어울리는 한 쌍, 조화로운 만남을 이야기할 때 많이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전자 기기들끼리 블루투스 신호 맞출 때도 페어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결국 연결고리를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어떤 음식이 궁합이 잘 맞는다거나, 특정 술과 안주가 어울릴 때 많이 사용합니다.
이 페어링이라는 말에 책(Book)이 붙은 북 페어링은 결국 책과 어울리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서로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책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 책을 읽으며 들으면 좋을 음악, 책을 읽고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까지 다양합니다. 심지어는 해당 책과 잘 어울리는 술도 있습니다. 책과 조화롭게 어울릴 것들을 찾고 함께 즐기는 모임에 대해 알아봅니다.
함께 읽으면 더 매력적인 책
책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역시 책입니다. 함께 읽으면 더 의미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빈칸을 채워주기도 하고, 생각을 확장해주기도 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자극하기도 합니다.
가장 조화로운 것은 같은 작가의 다른 책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주제의식은 좋지만, 조금 유치해서 아쉽다는 멤버에게 <1984>를 함께 권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1984>가 어렵다는 멤버에게 좀 더 쉬운 <동물농장>을 권할 수도 있죠.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의식을 다른 구성으로 접할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주 도서와 부 도서를 선정해서 함께 읽고 모임 할 수도 있습니다. 두 책을 비교 분석하며 대화를 전개하면, 작가의 작품 스타일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작품의 주제의식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질문도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과 다른 특징을 구분하여 나누면 좋습니다.
다음은 주제를 중심으로 책들을 묶어 봅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우리의 미래 세계를 부정적으로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인간의 많은 것들이 통제된 미래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작품으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있습니다.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성의 대부분이 상실된 사회에 대한 풍자가 그려집니다. 미래의 모습을 주제를 중심으로 연결한 책들이기 때문에 주제 의식을 중심으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하면 좋습니다. 서로 다른 작가의 스타일을 느끼면서 어떻게 미래를 묘사했는지, 결국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더 입체적인 감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관점의 책을 함께 연결합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돼지 나폴레옹의 독재정치를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지향했던 돼지 스노우볼이 리더가 되었다면 어떨까요? 이 상상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동물농장(존 리드)> 책이 탄생합니다. 자본주의로 운영되는 동물농장의 모습 속에 또 다른 작가의 비판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기존 <동물농장>과 비교하면서 보면 사회 정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은 추천 목록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입니다. ‘함께 읽고 나누면 좋을 책’은 좀 더 나아가 독서모임의 이야기를 풍요롭게 해 줄 책입니다. 발문을 할 때도 이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뒤죽박죽 혼란스럽게 이야기가 섞이지 않으려면 하면 개별 작품의 포인트를 간단히 나누고 통합 연결고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정리하여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책과 영화, 따로 또 같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원작 소설이 있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있을 때 어느 작품을 먼저 보겠나요?’ 질문에 대답은 결에 따라 다릅니다.
우선 많은 분들이 원작 소설을 뛰어넘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며, 원작 소설을 읽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둘 다 보았을 때 영상화된 작품을 보고 만족한 적이 없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오리지널이 최고라는 의미죠.
반면에 들어가는 기회비용 측면에서 영화를 먼저 보고, 그다음 만족스러우면 소설을 읽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우선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다르니까요. 바쁜 현대인들의 효율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했던 독자 입장에서는 항상 원작 소설을 우선시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영화모임까지 확장하는 과정도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영화를 활용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선후 관계와 상관없이 영상 문법을 자체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가 담긴 소설과 감독의 의도가 담긴 영화를 구분하여 별개의 작품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디어 통합 명작 읽기’ 모임을 도서관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 후에 두 작품을 대등하게 비교 분석하며 소설의 즐거움과 영화의 즐거움을 모두 얻는 모임이었습니다.
우선 원작을 각색할 때, 원작에 충실한 각색이 있고 내용을 변형한 각색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글로 묘사된 내용을 얼마나 센스 있게 영상으로 구현했느냐입니다. 소설 속 인물과 동기화가 잘 되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부터, 몰입감 높은 배우의 연기, 풍경의 묘사를 구현하는 촬영 기술까지 하나하나가 충실함을 기준으로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해서 우리의 상상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와 다르게 형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변형이 아니라, 감독이 의도를 갖고 캐릭터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주제를 비튼 경우도 많습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감동 존 스텝슨이 실사 영화로 만든 <동물농장>이 있습니다. 우선 실제 동물들의 모습이 나온 연출도 흥미롭지만, 구성이나 주제 의식에서 원작과 다른 차이점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원작에서 등장하지 않는 강아지를 추가하여 이야기 전달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곳곳에 소설보다 앞선 영화의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장면은 폐허가 된 동물농장을 보여주며, 전체주의는 불행한 결말을 직접 노출합니다. 소설에서 인간처럼 변하는 돼지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 장면과 비교하면 직접적인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이런 차이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책과 어울리는 다양한 미디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에는 다양한 재즈 음악이 소개됩니다. 주인공이 음악 애호가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책 속에 소개된 음악들만 모아 놓은 플레이 리스트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며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소설에 더 몰입하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주제로 웹툰 <죽음에 관하여(시니, 혀노)>를 함께 나눈 적이 있습니다. 웹툰은 주로 연재 작품이다 보니 전체를 다 보고 이야기 나누기 힘들어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어 분량을 한정했습니다. 스토리가 독립적으로 구성된 작품이나 단편 웹툰이 모임에서 나누기에 좀 더 적합합니다.
영상 미디어의 인기가 점점 많아지면서 영상 모임 자체의 인기가 많아지고, 영상에 대해 충실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한 덕후 멤버의 강력한 의지로 <반지의 제왕> 같은 유명한 드라마 시리즈에 대한 모임을 열기도 했습니다. <죽음에 관하여>라는 웹툰 모임을 열기도 했고, 환경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참여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최근 모임 플랫폼에서 개설되는 다양한 모임들을 구경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와 예능, 연극이나 뮤지컬, 전시회나 연주회 등등 모든 것이 읽을거리고 나눌거리입니다. 이런 모임들을 주최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영상 미디어는 다 같이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영화나 공연을 보고 카페에 가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최신 개봉 영화나 공연을 함께 본다면, 서둘러 예매해야 합니다. 나란히 앉기는 더 힘드니 잘 확인해야 합니다. 최신작이 아니라면 콘텐츠를 구매하고 공간을 빌려서 함께 시청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미디어 감상실을 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함께 2시간 정도 영화를 보고, 이어서 1시간 대화를 나누면 총 3시간 정도 모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영화를 바로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모두 완독을 보장한 상태에서 모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몰입감은 굉장히 높은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맞게 스스로 곱씹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또 전체 모임 시간이 늘어납니다. 안 그래도 영화를 보는 만큼 시간이 소요되어 대화를 나눌 시간이 줄어든 상황이니까요. 시간 관리를 신경 써야 합니다.
함께 영상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각자 영상을 보고 모여서 이야기 나누어도 됩니다. 대신 내용 기억이 구체적으로 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독서모임에서 책을 들여다보며 구절을 나누듯, 스터디룸 같은 공간에서 화면을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면 더 몰입도가 높습니다. 확실히 독서모임보다는 신경 쓸 것이 많아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