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의 어휘력
조별과제 잔혹사
한 예능에서 ‘조별과제 잔혹사’라는 콘텐츠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일을 유쾌하게 풀어낸 이야기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다양한 버전이 재생산되기도 했어요. 모두가 조장을 맡기 싫어서 미루는 것부터 팀원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들 모두 있을 법한 일이죠. 예를 들어 이런 상황입니다.
*승화: 이 부분 자료 조사 왜 안 보냈어?
*재민: 창연이가 하기로 하지 않았어?
*창연: 처음 듣는데?
*석현: 바로 장표 만들어야 하는데….
*재민, 창연, 석현: ….
*승화: 그냥 내가 할게.ㅠㅠ
대학생 때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댓글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건 직장에 가면 그대로 답습됨”, “사회에선 안 그럴 것 같지?”, “어디서든 일 하는 사람만 함” 등을 통해 직장 생활 팀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어려움이 따라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모두 알앤알 문제입니다.
나의 역할과 책임은?
알앤알(R&R, RNR)은 ‘Roles and Responsibilities’의 약자로 역할과 책임을 뜻합니다. 회사에서는 해당 직원이 업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책임 범위까지는 어디인지를 말할 때 주로 쓰여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하여 분업화된 요즘 조직에서는 꼭 필요한 기준입니다.
상사가 해당 프로젝트를 담당한 팀원들의 알앤알(R&R)을 요청했어요. 그럼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사람, 홍보하는 사람, 보고하는 사람 등 명확한 역할 범위를 정리하여 보고하면 됩니다. 상사 입장에선 개별 담당자를 알면 명확하게 피드백을 줄 수 있고, 담당자 입장에서는 해당 부분에 대한 책임감이 생깁니다. 보통 조직별로 혼란이 없도록 담당 업무를 정리해 둬요. 업무관계도, 업무분장표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주기적으로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를 파악하고 조율하기도 하고요. 외부에서 문의가 왔을 때도 이를 보고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을 전합니다. 업무 분담이 잘 되어 있으면 주 담당자가 자리에 없을 때, 부 담당자가 그 빈자리를 바로 채울 수 있어요.
*지금 알앤알은 정하고 일을 진행하는 건가요?
*각자 알앤알 잘 파악해서 업무 누락 생기지 않도록 해주세요.
업무를 나누다
알앤알을 업무 분장이라고도 합니다. 분장(分掌)은 나누다 ‘분(分)’과 손바닥 ‘장(掌)’이 합쳐진 말이에요. 장(掌)은 ‘관리하다, 통제하다’라는 의미도 있어요. 장악(掌握)하다는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손바닥(掌)에 무언가를 올려 놓고 쥐다(握)는 의미는 무언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분장’은 그런 관리 능력, 통제 영역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비즈니스에서는 ‘업무 분장’으로 함께 많이 쓰이는데, 업무의 역할과 책임을 정해서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에요. 비슷한 의미로 분담(分擔)이 있는데, 메다, 짊어지다 담(擔)을 통해 짊어지고 있는 책임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업무분장표를 확인해 주세요.
*업무를 정확히 분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것 내 것이 어딨어, 우리 것이지!?
모임을 하고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때, 계산을 어떻게 하나요? 누군가는 각자 계산하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1/N로 나누면 정없다며 여유 있게 여러 사람의 비용을 내기도 합니다. 얻어 먹으면 고맙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부담을 느끼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꾸 사주다 보면 안 사줄 때, 사람들에게 서운하다는 소리를 듣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해요.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선은 필요합니다.
축구 경기는 선수별로 주어진 포지션이 있습니다. 몰입해서 경기를 하다 보면 자리가 뒤엉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빠르게 자신의 위치로 복귀하는 선수가 있고 헤매다가 동선이 겹치는 선수가 있습니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그 자리에 빈틈이 생겨 실점과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해요.
결국 ‘팀의 패배야!’라고 연대 책임을 지겠지만, 선수 개인의 평점은 낮게 매겨질 겁니다. 그 선수가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자신의 위치, 역할을 인지하고 있어야 위기의 상황에도 빠르게 흐름을 안정화할 수 있고, 다른 선수의 도움을 받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탄탄한 조직을 위한 역할 분담입니다.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하라
회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직책과 담당 업무가 주어집니다. 회사 규모에 따라 촘촘하고 세부적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고 일당백으로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업무를 맡기도 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정신 없이 떠맡아 할 때도 알앤알을 구분하고 인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알앤알을 명확히 나누면 정이 없어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조직에서 분업화하여 일할 때는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우선 스스로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신입사원일 때, 업무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깍두기처럼 주변을 맴도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도 계속 스스로의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도 주체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어요. ‘내 일’, 담당 업무’를 챙기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알앤알이 잘 구분되어 있으면 누군가에게 업무를 요청하고 협업할 때, 명확한 소통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나쁜 일이 발생해서 책임을 물을 때도, 주 담당자가 누구인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주 담당자가 최종 확인을 하지 않은 책임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을 맡더라도 주/부 업무의 경계는 분명히 알고 업무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럴 때 주체성을 갖고 선택과 집중하여 일에 몰입할 수 있어요.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팀원끼리 협의를 하거나 상사에게 교통정리를 부탁해야 합니다. 이때 일을 적게 하려고 꼼수를 부리는듯한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일을 적게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힘을 쏟기 위한 역할 분담이라는 것을 명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