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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삽: 일의 우선 순위를 챙겨라

일잘러의 어휘력

by 이승화
아삽으로 부탁드려요


처음 ‘아삽’을 만났던 2017년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조금 보수적이었던 교육회사에서 젊은 분위기의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후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재경팀 사원이 메신저로 급여 지급을 위한 서류를 요청했어요.


*최 사원: 급여 지급을 위한 서류들 좀 보내주세요.

*이 과장: 새로 준비해야 할 서류도 있네요. 언제까지 드리면 될까요?

*최 사원: 아삽으로 부탁드려요.

*이 과장: ???


순간 오타인줄 알고 살짝 멍하니 있었어요. 상대방이 오타를 확인하고 수정해서 다시 보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추가 수정은 없었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공손한 말투였기 때문에, 급하게 적느라 생긴 오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했어요. 그때 ‘아삽’의 정체를 처음 알았습니다.


가능한 빨리 해주세요


아삽(ASAP)은 ‘As soon as possible’의 줄입말로 ‘가능한 한 빨리’의 의미예요. 업무가 급한 상황에서 많이 쓰입니다. “언제까지 하면 좋아요? 마감기한이 언제인가요?”라고 누군가 물을 때 “아삽”이라고 대답하면 조금 급한 상황을 전달하고, 긴장감을 줄 수 있어요. 이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이 긴장감을 바탕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지만, 과도한 사용은 신뢰도를 떨어뜨립니다. 모두가 ‘아삽’을 외치면 그것 또한 무뎌집니다. 실제로 급하지 않은 일인데 상대에게 부담을 주었다면 그것도 민폐죠. 또 부탁이 아니라 명령으로 느끼면 감정의 충돌로 업무 효율성도 떨어지고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자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가능한 빠르게 해주세요’, ‘지금 바로 부탁드려요’ 등의 말로 풀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추가로 급한 이유를 함께 말해주면 상대방이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어 좋아요. 수많은 ‘아삽’ 속에서도 우선 순위가 또 생깁니다.


*요청드린 내용 아삽하게 부탁해요.

*이번 디자인 아삽으로 가능한가요?


마지노선을 지켜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가 ‘빨리빨리’입니다. 업무할 때 ‘천천히 주세요’라는 말은 듣기 힘듭니다. 그렇게 미루다 누락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통 마감 날짜를 함께 말합니다. 이때까지는 꼭 해달라는 의미로 ‘데드라인’이나 ‘마지노선’이라고도 해요.


마지노선은 프랑스 장군의 이름 ‘마지노(Maginot)’와 선(線)이 합쳐진 말로 마지막 한계, 최후의 보루와 같은 뜻입니다. 이 말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구축한 난공불락의 요새, 벙커 라인에서 유래했어요. 이 방어선이 뚫리면 모두 죽는다는 의미로 ‘데드 라인’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 마지노선을 정하는 것에 비하면 ‘아삽’은 조금 여지가 있어요. ‘가능한~ 빠르게’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거나 바로 안 해주면 죽는다고 하진 않아요. 그럼 그 가능한의 기준을 살펴봐야 합니다. 한 분은 업무를 요청하며 “내일까지 해주세요!”라고 했고, 다른 한 분은 “아삽이요!”라고 했다면 둘 중에서 어느 일을 먼저 하겠나요? 둘 다 급하긴 한데, 더 급한 것을 찾는 거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느끼는 긴박감이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우선 ‘가능한’ 빨리 해주어야 하는 업무에 필요한 시간을 확인해야 합니다. 금방 끝나는 일이면 얼른 처리하고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게 나을 수 있죠. 해야 할 목록이 쌓이면 마음만 복잡하니까, 간단한 일부터 해결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면, 그 일을 하다가 내일까지 해야 하는 일을 못할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내일까지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겠죠. “진짜 급하면 마감 날짜를 말하는데, ‘아삽’은 덜 급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네요. 그럼 ‘아삽이요!’를 여러 곳에서 이야기했다면 어떻게 진행하겠나요? 선착순으로 일할 건가요? 무조건 겁 먹고 불안해 하기 보다 이렇게 일의 우선 순위를 생각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일의 우선 순위를 챙겨라


프로젝트를 할 때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꼭 마감일을 놓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지노선, 데드라인이라고 해도 못 지키는 사람들은 꼭 있습니다. 교재를 만들 때도, 여러 사람들에게 원고와 그림, 디자인 청탁을 하고 취합을 하는데, 항상 늦는 프리랜서 분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마음에 내키는 일을 한다고 했어요. 마감과 상관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업무를 하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고 일정을 못 맞추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시간 관리, 일정 관리를 잘합니다. 시간 관리의 포인트는 우선 순위를 정하고, 효율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과정이에요. 그럼 이 순위를 세울 때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 기준은 내가 아니라 요청하는 사람에 의해 정해집니다. 협업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상사일 수도 있고, 공식적인 이벤트일 수도 있어요. 내일까지 정리해서 보고해야 하는 일과 다음 달에 마감하는 일 중,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까요? 당연히 내일 마감하는 것을 우선 마무리해야겠죠. 한글날 기념 이벤트를 진행한다면, 한글날을 기준으로 삼아서 계획을 짜야 합니다.


하지만 일의 상황이나 마감 날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되는지, 업무 일정표는 꼭 숙지해야 합니다. 이걸 바탕으로 다른 업무가 추가로 생겼을 때,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를 꼭 확인해서 순위를 재배치 해야 해요.


그때 순위 조정에 필요한 말 중 하나가 ‘아삽’입니다. 본인이 업무를 요청할 때, 요청 받을 때 모두 포함이에요. 다른 것들보다 우선해서 이 업무를 빨리 해달라는 의미일 때는 상대방 업무 일정에도 관여하는 일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가볍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마감 날짜와 함께 말하면 좋아요. “아삽으로 부탁드려요. 수요일날 보고해야 하는 내용이라서요.” 이정도만 말해도 상대방이 우선 순위를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아삽’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 “제가 내일 세미나가 있어서, 목요일까지 해도 되나요?”라는 식으로 좀더 정교한 마감 날짜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순서를 조율하는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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