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9단계 구성 실전
보통의 일상은 ‘사건’이라는 주먹을 맞고 무너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링 위에 올라와 있다. 상대(빌런, 장애물)는 호시탐탐 또 다른 주먹을 날리려고 한다. 링 밖으로 도망갈 수는 없다. 이미 대결은 시작됐다는 걸 안다. 그 끝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싸워봐야 한다. 구성의 2단계를 설명하는 단어가 ‘주먹’이라면, 구성의 3단계는 ‘작심’이다. 두 단어로 설명하면, ‘만나볼 결심’이다. 무엇을 만나려고 작심하는 걸까.
구성 3단계에서 주인공이 하는 작심은 사건 이전의 나와 달라진 사건 이후의 나를 만나볼 결심이다. 사건 이후에 스토리텔링을 거쳐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며 이전의 나로서는 상상하지 못한 한계치를 갱신한 나를, 새로운 관점과 감각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될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하는 지점이 바로 구성의 3단계이다. 3막 구조 안에서 1막의 문을 닫고 2막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구성점(plot point)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성의 3단계 예시도 이 영화로 골라봤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먼저 보고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영화는 싱글 대디(아이오 타쿠미)와 초등학생 아들(아이오 유우지)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이들 부자(父子)는 죽은 아내이자 엄마(아이오 미오)가 비가 오는 계절에 돌아올 것이라 믿고 씩씩하게 일상을 살고 있다. (구성의 1단계) 여름 장마가 시작되자 미오가 남긴 그림책 속 메모처럼 실제로 나타난다. 죽은 사람이 살아서 나타나는 것은 이들 가족은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 사건이다. 극중에서 더 핵심적인 사건은 돌아온 미오가 남편 타쿠미와 아들 유우지를 포함해서 생전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구성의 2단계) 죽은 아내이자 엄마였던 미오가 돌아와서 이전의 일상은 변화를 겪는다. 미오가 자신이 아내였고 엄마였던 기억이 없어서 기대했던 재회 상황도 흔들린다. 주인공인 타쿠미와 유우지는 이제 어떤 결심을 해야 할까. 무엇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해야 할까.
새해마다 작심을 해서 겨우 삼일이라도 노력해 보는 이유는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구성도 새해 작심삼일과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주인공은 일상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기로 작심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변화와 성장을 만나볼 결심을 한다. 그것은 사건 이전까지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애써볼 결심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발 들여 놓지 않았을 새로운 갈래 길로 접어들 결심이기도 하다. 사각의 링이 있는 줄도 몰랐다가 사건이라는 주먹을 맞고 새로운 대결을 자각한다. 싸워보기로, 버텨보기로 결심하는 지점이 바로 구성의 3단계이며 구성점⓵이다.
돌이킬 수 없는 스포일러가 나갈 예정이니, 이 영화를 아직 안본 분들은 글 읽기를 멈추고 영화부터 보셔야 한다. 마지막 반전으로 이 영화는 강렬한 감정의 파고를 일으킨다. 타쿠미와 유우지의 관점이 아니라 미오의 관점에서 ‘만나볼 결심’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미오를 주인공으로 놓고 보면 이 영화 전체는 또 다른 영화 한편이 된다. 교통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미오가 미리 만났던 자신의 미래가 타쿠미와 유우지 입장에서 구성된 이전의 영화라면, 깨어나서 타쿠미에게 달려가 해바라기 밭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입맞춤을 하는 장면은 다가올 자신의 삶을 만나볼 결심을 하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놓고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미래임을 알면서도 미오는 미래의 남편을 미래의 아들을 지금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구성의 3단계에서 주인공이 하는 결심은 삶을 바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상을 뒤흔든 사건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건을 겪은 주인공이 새로운 삶을 만나볼 결심을 하기로 선택할 때 삶이 바뀐다. 결심이라는 선택과 행동을 통해 우리의 삶은 1막에서 2막으로 넘어가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된다. 누구라도 사건에 흔들릴 수 있지만 아무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험이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건 이전과 다른 이후의 나를, 나의 결심으로, 내가 주도권을 갖고 만나볼 결심을 하고 앞으로 나아갈 때 주인공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주인공의 자격을 얻고, 본격적인 서사로 진입하는 첫 번 째 관문이 바로 구성점⓵이다.
“육아 과정이 ‘엄마’라는 한 여성의 노동이거나 ‘엄마의 엄마’인 또 한 여성의 노동에 기대지 않는 다른 대안을 찾고 싶었다. 더불어 살아가며 아이도 함께 키우는 공동 육아와 공동체 마을을 찾아 이사를 했다.”
-<돌봄과 작업2>,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 된 시간’, p113-
‘출산과 육아’라는 사건을 만나 휘청였던 나는 이전의 방식으로는 더는 안된다는 생각에 새로운 방식을 만나볼 결심을 했다. 변화를 위해 삶의 터전을 바꿨다.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방과후가 있는 동네를 찾아 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단호하고 과감한 결정이었다. 돌아보면 주양육자로서 가장 잘한 일이 공동육아를 하기로 결심하고 이사를 한 것이다. 절실할 때는 어디에선가 용기가 난다.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이 구성점을 통과하며 나는 비로소 육아서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봤을 때는 미혼이었다. 결혼 안한 삶은 상상한 적이 없어서 비혼(非婚)이 아니라 미혼(未婚)이었다. 결혼이 아닌 다양한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기혼에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뒤에 다시 보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전혀 다른 영화로 다가온다. 미오의 입장에서 그녀의 결심을 생각해 본다. 내가 미오라면, 나도 미오처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의 삶이 미리 들여다 본 미래이고, 다시 돌아간 현재에서 나는 결혼 전이라면 미오처럼 미래의 남편이 될 현재의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부부가 되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될 삶을 만나러 갈 수 있을까. 한참 독박 유아로 심신이 무너질 때 깨어났다면 다시 돌아갈 결심 앞에서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을 만너러 가지 않았다면 <고백 부부>의 주인공 진주처럼 밤마다 ‘두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울었을 것이다. 공동육아를 만나고 남편과 나는 함께 성장했다. 어린이집과 마을 방과후에서 공동 육아를 배워 가정 안의 공동육아도 이뤘다. 마을이 키운 아이들은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어 있다. 지금 다시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지금의 삶을 만나러 갈 것이라고.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만날 기회가 온다면, 돌봄의 권리와 의무를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남편과 같이 누릴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인생 이야기’에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전환이 필요하다. 전자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라면, 후자는 만나볼 결심을 하고 새롭고 구성하는 이야기이다. 어떤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가. 그것에 따라 구성의 1단계에서 3단계까지 써보기로 하자. 구성의 9단계까지 쓰고 나면 당신은 글을 쓰는 주인공이 되어 글 한 편을 완성한 당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목표는 정해졌다. ‘만나볼 결심’을 통과하면 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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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서사 구성 3단계]
3. 1막의 끝/ P.P① (만나볼 결심)
사건의 발단으로 파생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이 작심하고 행동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주인공은 목표를 향해 첫발을 내딛고, 사건의 발단에서 시작된 스토리는 초점을 갖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주인공이 달성해야 하는 미션(목표)도 분명해진다.
-사건을 겪고 난 뒤 당신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미션을 수행하게 됐나요.
-사건에서 비롯된 새로운 목표는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