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9단계 구성 실전
설정은 말 그대로 한 편의 글이라는 구조물 입구에 해당한다. 글을 읽는 독자가 당신의 글 입구에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세 가지 판단 기준이 작동하다. 첫째, 집 주인이 누구인가. 둘째, 이 집에 들어가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나. 셋째, 이 집의 시공간적 좌표. 호기심이 일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초대 받아, 이전에는 몰랐던 세계를 만나고, 함께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문을 열고 성큼 들어갈 것이다.
아마 눈치 챘을 것이다. 이것은 3막(설정-갈등-해결) 구조를 기준으로, 1막 설정부에서 반드시 그려줘야 하는 서사의 3요소(인물, 사건, 배경)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자재로 한 편의 글을 지으려고 한다. 글의 저자이자 이야기라는 집의 주인으로서, 나라는 인물이 결정적인 사건을 만나 이 시대를 배경으로 고군분투를 거쳐 가는 과정을 구성이라는 설계도에 맞게 지어 올린 집에 독자를 초대한다고 상상해 보자.
우선, 집에 문패를 달아보자. 제목과 로그라인에 해당한다. 문패를 만들면 어떤 집을 지을지 보다 선명해진다. <돌봄과 작업2>에서 필자가 쓴 글의 제목은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 된 시간」이다.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연출과 제작 과정을 포함하는 공동 육아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서 처음에는 「공동 육아로 시작해서 공동 제작과 배급까지」를 제목으로 정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공동 육아를 포함하는 키워드 ‘돌봄’을 만났다. 돌봄 노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서 또 하나의 경력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봄’의 시간이 단절과 공백이 아니라 당당히 성취와 경력으로 남는 ‘작업’이 된 것이다. 돌봄 노동은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다.”
<돌봄과 작업2>,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 된 시간」, p.122
출산과 육아라는 개인의 경험(x축)과 경단녀와 돌봄 노동이라는 이 시대의 키워드(y축)가 만나는 지점에서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 된 시간」이라는 핵심 문장에 맞게 한 편의 글로 구성했다. 로그라인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는 나를 ‘경단녀’라고 부르지만 나의 돌봄은 경력 심화 과정이었다.”
로그라인에도 서사의 3요소,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들어간다. 주인공(인물)이 사건을 만나 저항하며(사건) 이 시대(배경)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이야기이고 스토리텔링이다. 서사의 3요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이다. 인물이 곧 이야기라고 할 정도로, 같은 사건 같은 배경이라고 해도 인물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만들 때 가장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에세이를 쓸 때는 극적 화자가 곧 저자가 된다. 특히나 내 인생 경험을 한 편의 글로 창작할 때 나라는 인물이 독자에게 어떤 캐릭터로 다가갈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당신은 어떤 인물에게 끌리는가. 독특한 성격, 새로운 관점, 매력적인 재능, 공감하고 응원할 만한 가치관 등이 인물을 추앙하게 만든다. 내 인생 서사를 글로 쓸 때도 나라는 인물을 소설이나 드라마 속 캐릭터로 설정하고 작업해 보길 권한다.
구성의 9단계는 설계도에 해당한다. 내 인생 이야기가 담길 9개의 공간을 상상해 봐도 좋다. 1단계에 해당하는 ‘보통의 일상’은 글이라는 구조물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첫 발을 들여놓는 현관 같은 역할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일반적인 현관의 모습보다는 예상 못한 공간이 나온다면 어떨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공간이 아니라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공간이 나타난다면 메인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기대감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배를 타고 들어갈 수는 없다. 도입부에 배를 타고 들어간 이유가 글의 전체 맥락에 닿아야 한다. 맥락이라는 기둥을 세우는 일이 스토리텔링 구성이기도 하다. <21일 만에 시나리오 쓰기>의 저자 ‘비키 킹’은 이야기의 맥락을 빨래 줄로 비유했고 구성의 9단계를 9개의 빨래집게로 비유했다.
빨래 줄에 양말을 널 때는 빨래집게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이불을 널 때는 빨래집게가 더 필요하다. 한편의 이야기를 널 때는 9개의 빨래집게(구성의 9단계)가 필요하다. 빨래집게는 집는 순서도 중요하다. 먼저 1단계(설정, 위의 표에서 1에 해당)에 빨래집게를 물린다. 그 다음에 9단계(해결, 위의 표에서 120에 해당)에 빨래집게를 물린다. 이불을 널 때도 양쪽 끝을 먼저 고정하면 아무리 큰 빨래라도 펼쳐서 전체 모양을 살리며 빨래 줄에 걸 수가 있듯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그 끝을 알고 써야 맥락에 충실한 구성을 할 수 있다.
일상===>(스토리텔링)===>다시 일상
스토리텔링을 간단히 정리하면, 일상에서 시작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을 만나 고군분투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지만 이전의 일상과는 다른 삶을 시작한다. 집으로 비유하면 들어간 문으로 다시 나오는 것이다. 구성의 빨래집게를 물리는 순서가 구성의 1단계와 9단계가 먼저인 이유이다. 일상에서 시작해서(1단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가(9단계). 다시 말해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얻은 변화와 성장을 1단계와 9단계의 대조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물론 초고 단계에서는 끝이 명확하지 않은 채로 시작해도 된다. 하지만 퇴고 과정에서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서로 맞물려야 한다. 구성의 빨래 줄에 시작과 끝에 빨래집게를 물린 이후에는 중간 부분은 순차적으로 물려 나가면 된다.
구성의 1단계, 보통의 일상은 본격적인 사건(구성의 2단계, 발단)이 등장하기 전에 인물(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극적 배경과 사건의 암시들로 그려진다. 예시로 드는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 된 시간」(<돌봄과 작업2>)에서는 본격적인 사건이 곧 출산이었으니, 출산 이전의 단계가 보통의 일상이었다. 계획 임신에 성공해서 정성껏 태교하며 아이와의 만남을 기쁘게 기다렸던 일상. 미리 읽고 공부해 둔 육아서 내용대로 나의 육아도 이상적으로 달성될 거라 믿고 있던 일상. 아이의 탄생과 함께 일시에 무너져 내린 꿈같은 일상이었다.
한정된 분량으로 원고를 써야 하는 경우에는 이불만큼의 스토리텔링을 하기 힘들다. 손수건 만큼의 스토리텔링으로 대체할 수 있다. 구성의 9단계를 염두하되, 어떤 단계들은 과감히 생략거나 압축할 수도 있다.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 된 시간」에서도 1단계를 단 두 문장으로 압축했다.
“자율성, 성취감, 연결감. 행복을 느끼는 세 가지 조건이다. 육아는 세 가지 조건을 정확히 빗겨갔다.”
<돌봄과 작업2>,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심화 과정이 된 시간」, p.107
이 두 개의 문장으로 시작해서, 행복을 느끼는 세 가지 조건이 정확히 어떻게 빗겨갔는지 구체적인 상황 묘사를 해서 도입부 문단을 완성했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인생 서사의 1단계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당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첫 문단은 어떤 설정인가. 첫 문장은 첫 인상이다. 시작해 보자, 첫 문장을. 그리고 첫 문단을 완성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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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서사 구성 1단계]
1. 설정/일상 (보통의 일상)
서사의 중심이 되는 인물(주인공)이 등장한다. 그/그녀의 성격, 관심사, 가치관, 취미, 습관 등이 설정된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관계가 보여진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보통의 일상이 펼쳐진다.
-당신은 어떤 주인공인가요
-당신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당신의 관심사, 취미, 일, 관계에 대해 써주세요.
-당신의 평소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당신이 한편의 글로 증명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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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alookso)에서 연재하는 <인생2막을 응원하는 글쓰기 워크샵> 8강에 구성의 9단계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9개의 빨래집게를 물리는 위치와 각각의 빨래집게가 맡은 역할을 숙지하고 싶을 때 참고하세요.
https://alook.so/posts/E7t3eE2?utm_source=user-share_51toyVo
부교재라고 생각하고 <돌봄과 작업2>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s://m.yes24.com/Goods/Detail/119847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