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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Nov 22. 2019

어떻게 좋아한다 말할까

친구가 한껏 신이났다. 보아하니 머리도 다듬었다. '그게 벌써 내일인가.' 그 친구놈이 내일 여자를 만난다. 말로는 기대하면 될 것도 안된다 말하지만,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도그럴 것이 참 오래간만에 온 떨림이다. 상대방도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만, 그보다 이 친구에게는 이성과 단 둘이 약속을 잡고 만난다는 사실이 더 값질 것이다.


"형 근데, 어디서 만나지? 일단 스벅에서 한시에 보기로 했는데. 괜찮나?"


전혀 안괜찮다. 평일 점심시간, 학교 앞 스벅은 만석이다. 시장바닥을 방불케한다. 둘이 말하다간, 서로 데시벨 올리기 바쁠거다. "안돼. 바꿔."  스벅 대신 다른 카페를 제안했다. 천장이 높은 지하에, 사람이 붐벼도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니 안성맞춤이다. 건승을 빈다 짜식.


며칠전 이 친구는 알바를 했다. 상대방은 거기서 만난거다. 알바는 네명이서 했다. 이 친구를 포함한 세명이 서로 아는 사람이다. 알바는 차이나타운 일대를 걸어다니며,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받는 일이었다. 둘씩 찢어져서 다니기로 했나보다. 아니, 그렇게 다니기로 설계했단다. 친구 둘이 빠져서, 남은 둘이 몇시간 동안 걸으며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도록. 결국 계획대로 됐고, 그 친구는 커피 약속을 잡아내게 된거다.


그날 저녁 알바를 같이 한 세명과 나까지 넷이서 맥주에 모였다. 술 안주는 상대방과의 카톡. 멋지게 커피 약속을 얻어낸 친구는 다른 둘에게 호되게 혼나고 있었다. '왜 카톡을 그렇게하냐', '벌써 사귄다고 생각하는거냐'. 말로 맞고 있는 모습이 참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가는 이야기들은 이른바 '썸'의 단계를 이끌어내기 위한 연애고수 둘의 훈수였다. 예컨대 이렇다. 카톡은 상대방이 보낸 만큼만 보내야한다. 두번을 보내면, 다시 두개에서 세개 정도로 되갚는(?) 거다. 답장하는 시간은, 상대방이 답장하기까지 걸렸던 시간에서 4분의 3 정도 기다린 뒤다. 15분만에 답장을 받았다면 나는 10분에서 12분 뒤에 보내면 된다. 내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야돼?"


그러자 "오빠, 오빠가 그래서,,, ㅋㅋㅋ"


앞에 있던 친구도 "아 이 형도 나만큼 연애 고자야"


맞다. 연애고자다. 나는 시간을 재가면서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다. 문제는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지도 못한다. 최악이다. 결벽증이 생길정도로 조심스러워진다. 이런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평소와 달라보이지 않지만, 머릿속은 소란스럽다. 어쩌다가 상대방과 단 둘이 있게되면 속에선 세계 제3차대전이 일어난다. 독짓는 늙은이처럼 단어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다. 그렇게 말이 많던 사람이 벙어리 수준으로 말을 잘 안한다. 참 웃기다 이게. 무대 위에서 벌벌 떠는 사람처럼 긴장한다. 그걸 드러내면 하다못해 인간미라도 있을텐데, 잘 숨긴다. 이 복잡한 마음을 상대방 앞에서 느끼는거다. 한심한놈. 그러니 연애고자, 맞다.


고백은 또 다른 문제다. 말이라는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에 확신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게 단순하게 외로워서 그러는지, 잠시 지나가는 감정인지, 금새 사랑에 빠져서 그런지, 아니면 같이 만둣국먹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는건지 모른다. 반대의 경우도 같다.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미지수다. 내 호감은 호의로 다가갔겠지만, 그 호의가 그녀의 호감을 이끌어낸다는 보장은 없다. 슬프게도 사실이다. 


종종 '어쩌면 이정도면 됐다' 고 생각을 맺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사람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들을 수집한다. 그 말들을 단초로 삼아 한 사람을 탐구하는 만물박사가 된다. 예를들면, 해바라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흘깃 들으면 그걸 기억했다가 해바라기가 들어간 오브제를 찾아본다. 좋아하는 영화를 나도 봐보고, 좋아하는 노래를 나도 들어보는 식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구 하다보면 일종의 유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딱 그정도로 가까워진거다. 생판 몰랐던 사람을, 적어도 그 사람의 일부를 알게됐으니 뭐 만족할만한 성과다. 더 다가가면, 그나마 쌓았던 유대가 무너질 수 도 있으니까, 나는 여기까지다. 겁먹었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정답일테며, 멍청하다면 그 또한 정답이다. 그런게 나인걸 어쩌겠는가.   


그러니, 어떻게 좋아한다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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