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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10. 2023

영화에 옷을 입히는 그녀

무대의상 디자이너 이은진


은진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15년 전인가?(우리가 벌써 15년 지기라니 ㅋㅋㅋ) NGO 같은 팀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그녀. 그녀는 내게 헤르만 헤세를 알려준 사람이다. 한 번은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보여주며 좋은 구절을 읊어 주기도 했다.


당연히 은진은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훗날 글은 내가 쓰고 은진은 무대의상디자이너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평범한 머플러 하나도 그녀가 하면 남다르게 보였던 이유가 있었나 보다.


part 1. 무대의상디자인에 대한 고찰


남팁: 무대의상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패션일을 하는 줄 알 것 같은데?


이은진: 패션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분야예요. 트렌드를 만들죠. 하지만 무대의상은 인물을 예쁘게도 만들고, 망가지게도 할 수 있어요. 만약 극 중 역할에 따라 옷을 입지 않겠다면 그것도 선택이 되는 거죠.


남팁: 패션과 무대의상은 전혀 다른 거군요.


이은진: 그렇죠. 제가 중국 철학을 전공했는데, 그 영향이 컸는지 상업적인 활동보다는 예술적인 분야가 더 마음에 들어왔어요. 패션계는 옷을 팔려고 만드는 것이지만 무대 의상은 작품의 일부라는 게 끌렸습니다.


part 2. 늘 영화를 꿈꾼 소녀, 유학을 가다.

 

남팁: 저와 함께 NGO에서 해외봉사파견을 하다가 갑자기 영화의상팀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놀랐어요. 


이은진: 영화를 정말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영화학교를 들어가고 싶어서 부모님 몰래 휴학까지 했었거든요. 당시에는 끝까지 밀어붙일 용기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아빠의 권유로 중국 어학연수를 가게 됐는데, 중국으로 가면서 더더욱 영화 쪽 일은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남팁: 그런데 결국 이십 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영화의상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이은진: 저한테는 영화의상을 시작하는 게 용기가 필요하다거나 큰 전환점이 아니었어요.  결국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남팁: 한국에서 여러 작품을 하다가 미국유학을 갔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이은진: 기본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의상과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성장을 하려면 더 배워야겠다고 느꼈죠. 국내에서는 연기와 연출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미국이 더 세분화되어 있기에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남팁: 영어공부하고, 포트폴리오 만들며 고민했던 모습들이 생각이 나네요. 그렇게 카네기 멜론 대학교 드라마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은진: 카네기 멜론 대학교 드라마학부는 영상을 위한 작품이 아닌, 전통적인 무대의상을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쉽게 말해 연극, 오페라 무대를 떠올리시면 돼요.

1학년때는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선배를 보조하고, 2학년은 작은 작품을 디자인, 3학년 때 대형작품을 디자인하게 됩니다.


카네기 멜론 드라마 학부 시절 이은진 무대의상디자이너가 참여한 작품들.



남팁: 지난 인터뷰에서 뮤지컬 배우 조영태 님은 배우에게 의상은 갑옷과 같다고 하셨거든요. 의상과 분장의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은진: 맞아요. 무대의상은 캐릭터를 빌드업하는 역할입니다. 좋은 의상은 작품의 스토리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의상이 스토리에 녹아들어 가야 합니다. 의상이 눈에 들어오는 작품도 물론 있죠. 화려한 캐릭터의 경우 그래요. 하지만 그런 콘셉트가 아닌데 작품보다는 의상이 눈에 들어온다면 그게 맞는 건지 고민해 봐야 해요.


이은진: 처음에는 의상이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고 계속 배우다 보니 결국 전체적인 작품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작품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부분들이 튀는 순간 집중이 흩어집니다. 눈에 띄지 않게 각자의 역할을 할 때 결국 좋은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죠. 


남팁: 졸업하고 뉴욕에서도 일하셨죠?


이은진: '뉴욕에서 일 년을 버텼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경력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그 정도로 힘들다는 얘긴데요. 주급을 받으면서 일하면서 세상에 홀로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만큼 성장했던 것 같아요.

뉴욕에서는 <위기의 주부들>을 만든 프로덕션에서 일했는데요. 브레인 데드(BrainDead)라는 드라마와 각종 예술영화에 참여했었어요. 많이 배웠죠.




part 3. 향후계획


남팁: 영화의상을 하고 싶게 만든 영화가 있다면?


이은진: 의상을 중심으로 봤을 땐 웨스 앤더슨 작품을 좋아해요. 특히  <로열 테넌바움> 같은 초기 작품을 좋아해요. 이 감독의 영화는 모든 캐릭터가 옷으로 표현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독특한 시각으로 작품을 만들죠.


남팁: 저도 웨스 앤더슨 작품을 볼 때마다 색감에 놀라곤 하는데 의상 중심으로 다시 봐야겠네요.  뉴욕에서 한국에 와서 다시 작품을 하다가 무술감독과 결혼하셨죠. 은진에게는  영화라는 일이 정말 특별하겠어요.


이은진: 그렇죠. 비혼에 딩크족이었는데 결국 영화일을 하다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죠. 딸은 저의 뮤즈예요. 아이를 낳고 잠시 일을 쉬고 있지만 저에게 항상 영감을 줍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고요.

최근에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에 관해서든 제 꿈에 대해서든 기록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남팁: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이은진: 유학시절에 담당 교수님께서 제 작품을 퀄키(Quirky)하다고 그러셨어요. 우리말로 바꾸면 독특하고 위트 있다는 뜻 정도가 되겠네요. 단순히 다르기만 한 게 아닌, 그 속에 해학이 담긴 작품이라는 뜻 같아서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는 단어예요. 제 SNS 대문 사진에 있는 사진이 딱 퀄키를 표현한 거예요. 예전에 친구가 딱 'Quirky' 한 느낌이라며 선물해 준 엽서입니다.


퀄키'Quirky'는 이런 느낌이라고 하네요.


최근에 꼭 의상이 아니더라도 실과 원단으로 '퀄키'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작품으로 나오겠죠. 지금 제가 하는 뜨개질도 그 일부인 것 같아요. 뜨개질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제 아이덴티티를 형상화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 중입니다.


남팁: 은진 만의 '퀄키'한 작품을 기다릴게요.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이은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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