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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24. 2023

'몸'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그대

예술가 김령혜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보며 령혜를 떠올린다. 깡 마른 몸에서 춤추는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풍긴다. 아이 친구 엄마로 처음 만나 차근차근 알아가다 보니 그녀는 바다 같은 사람이다. 깊고 넓다. 발레를 해서 그런지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뼛속깊이 예술가다.


현재는 자이로토닉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 단순히 운동만을 하는 게 아닌, 사람들이  몸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령혜는 나보다 한참 어려 진정한 MZ 존에 있기 때문에  그녀가 나와 놀아줄 때마다 고마울 뿐이다. 진심이다.



오늘의 사적인 인터뷰는 춤추는 사람 김령혜.  예술과 운동을 발판 삼아 삶을 아름답게 꾸며나가는 그녀를 만나보기로 한다.


part 1.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어


남팁: 령혜에게 듣는 러시아 얘기는 항상 흥미로워요. 러시아로 발레를 배우러 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령혜: 그 질문에 답하려면 중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야 해요. 당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어릴 때부터 발레를 좋아했지만 초등학교때는 키가 작기도 했고, 부모님도 바쁘셔서 계속 춤을 출 상황이 아니었죠. 결국 발레를 4년이나 쉰 상태로 미국에 가게 됐어요. 그때는 발레 할 생각이 없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룸메이트였던 대만 친구가 앞으로 뭘 하면서 살고 싶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남팁: 중요한 질문이네요.


김령혜:  맞아요. 그 질문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춤을 계속 추고 싶지만 전공할 만큼의 실력이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 그 친구가 잘하건 못하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냐고. 원하는 걸 꼭 해야 한다면 저는 춤을 추고 싶었어요. 춤에 대한 마음을 접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발레에 대한 열정이 식은 적은 없었나 봐요. 친구의 말을 듣고 그 길로 댄스 스튜디오를 등록했어요.  발레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죠.


남팁: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그 말이 참 와닿네요.


김령혜: 그때 댄스 스튜디오에서 칭찬을 많이 들으면서 자존감도 조금씩 올라갔어요. 선생님이 러시아에서 망명한 분이셨는데 영향이 컸죠. 선생님 덕분에  발레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결국 러시아로 가게 된 겁니다.



part 2. 볼쇼이 발레학교에서 예술에 눈을 뜨다.


남팁: 발레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김령혜: 사실 러시아에 가기 전까지는 예쁜 발레 옷을 입고 춤을 추고 싶은 로망이 더 컸어요. 춤을 잘 춰서 주목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만 향하던 시절이었죠.


김령혜: 유럽은 극장에 소속된 발레단이 많거든요. 발레만 배우는 게 아니에요. 공연 음악, 무대설치도 알게 돼요. 자연스럽게 극장에 대한 구조도 배우게 됩니다. 항상 극장을 오가다 보니 어느 순간 무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누군가 표를 사고 시간을 내어 공연을 보러 온다는 건 신성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거죠.  나만 춤을 잘 추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발레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공연 전반적인 모든 걸 알게 되면서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어요.


남팁: 러시아 문학도 공부했다고요?


김령혜: 발레를 하려면 러시아 음악을 알아야 되는데요. 음악을 이해하려면 러시아 문학도 공부해야 됩니다. 학교에서 푸시킨의 시도 공부했어요.


남팁: 춤을 추기 위해 음악을 알아야 하고, 음악을 알기 위해 시를 배운다니.. 멋지네요. 러시아는 어떤 나라였나요?


김령혜: 저는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크 이렇게 두 곳에서 살았는데요. 두 도시가 모두 강을 끼고 있어요. 러시아는 동양과 서양의 느낌이 어우러져 있는 나라예요. 건축물도 참 예쁘고요. 길을 걸으면 다른 유럽의 거리와 다르죠. 걷기만 해도 다양한 역사와 새로운 느낌을 마주할 수 있어요. 산책할 때마다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팁: 러시아 유학을 하면서 예술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겠어요.

 

김령혜: 발레를 배우러 갔는데 예술적으로 사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예술은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름다움에 가치를 두는 높게 두는 편입니다. 인생을 예술적으로 살려면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음악공연과 미술 전시회를 자주 다니고 있어요.


남팁: 춤추는 사람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좀 다를 것 같은데요.


김령혜: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람의 몸이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키 크고 날씬하고, 어깨도 넓은 누가 봐도 이상적인 몸이요. 외형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는 몸의 쓰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신체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part 3: 몸의 움직임을 알아가는 기쁨


남팁: 자이로토닉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김령혜: 러시아에 계속 있고 싶었어요. 그런데 러시아 무용수들과 피지컬적으로 경쟁을 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모든 걸 다 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미련이 없어요. 하지만 춤추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건 확실했어요. 발레학교에서 예술에 눈을 뜨게 된 후 발레가 아니어도 다양한 예술적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김령혜: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자이로 토닉을 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어요. 자이로 토닉은 운동이지만 음악과 리듬과 공존해요. 무용과 비슷하죠.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건강한 아름다움이란 뭘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건강하다는 건 몸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진에 찍힌 것 같은 '정적인 미'가 아닌 '움직이면서 알게 되는 희열'을 느끼면 좋겠어요.


남팁: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게 정말 중요하군요.


김령혜: 네, 맞아요. 저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창조주의 섭리를 느낍니다. 움직임 자체가 기도가 된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은 본인이 움직이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끼는데요. 사실 그게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내가 원하는 데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죠. 그런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함께 운동하는 분들이 몸의 감각을 찾아가고,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소리를 할 때 감동받아요.




part 4. 앞으로의 꿈


남팁: 새로운 스튜디오를 계획하고 있죠?


김령혜: 네, 스튜디오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새로운 공간은  다 함께 움직임의 미학을 알아가는 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몸을 컨트롤하는 것이 인생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팁: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음악이 있나요?


김령혜: 원래 밀도 있는 음악을 좋아하진 않는데요. 러시아에 살면서 그곳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라흐마니노프가 좋아지더라고요. 러시아는 겨울이 길잖아요. 겨울 동안 사람들이 예민해져요. 대신 7월 8월은 덥고 해가 나는데요. 그때 일 년 치 필요한 광합성을 하죠. 날씨의 영향이 있는지 러시아인들은 특유의 리드미컬한 성격과 차가움이 있어요. 그런데 한 번 친해지면 정말 정이 많거든요. 그들의 유약한 면과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우울한 면까지 이해하게 되니 라흐마니노프가 좋아지더라고요. 그의 음악에 이런 모든 게 다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밝고 명랑한 사람들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사색에 잠기는 걸 좋아하고 글루미 한 면도 있어요.  그런데 러시아에서 이런 제 성격이 마냥 안 좋기만 하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죠.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춤추는 령혜


남팁: 추천하고 싶은 발레 작품이 있다고요?


김령혜: 안톤 체호프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아뉴타(Anyuta)'라는 작품이에요.

러시아 민속음악이 나와서 이국적인 느낌도 있고요. 내용은 난해하지만 2막에서 남녀주인공이 추는 빠드되(pas de deux: 둘이 추는 춤)를 좋아해요. 한국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작품일 텐데 이번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남팁: 언젠가 령혜가 구상한 작품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령혜: 감사합니다.







예술가 김령혜가 추천한 '아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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