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비 오는 날이었다. 약속이 늦어 우산을 쓰고 정신없이 뛰어 카페에 도착했는데 핸드폰이 없었다. 점퍼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뛰어오다가 떨어트렸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오던 길을 되짚어가며 급기야 거의 집까지 가까이 왔는데 저 멀리서 뭔가 보였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달려가보니 핸드폰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그 사이에 차가 밟고 지나갔나 보다. 본능적으로 선 듯 집어 들었는데 모래알처럼 부서진 유리들이 온통 손에 가득해 다시 손을 펼치는 바람에 비 오는 길가에 또 한 번 떨어뜨렸다.
보통 핸드폰을 새로 샀냐며 반색하던 친구들은 여기까지 듣고는 경악을 한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묻는다. 안에 있던 사진이랑 파일이랑 전화번호 어떻게 해!
너무 고맙게도 자기들 일처럼 걱정해 주는데 막상 나는 별 생각이 없다.해줄 말은 '글쎄' 정도? 사진은 다시 찍으면 되고 요즘은 메신저로 연락을 하니까 상관없고, 중요한 문서 같은 건 없으니까 더더욱 괜찮다. 그러니까 핸드폰이 부서졌지만 사실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써서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던 누가 봐도 낡은 기계였다.
우리 엄마는 같은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아이고 냉정한 년! 애들 사진 없어진 게 서운하지도 않아? 엄마의 이 한마디를 제목으로 쓸 만큼 내가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지만 정말 내가 냉정한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긴 했다. 왜냐하면 최근에 MBTI를 했는데 어떤 유형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로봇'이라는 결과를 보고는 이 말에는 살짝 휘청했다. 나는 살아있는 로봇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 건 바로 북클럽 단체톡.
내가 속해있는 북클럽은 '공감자들의 모임'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들 그런지 아프거나 힘들 때 어쩜 그렇게 예쁘고 선한말만 골라하는지 사실 미쳐버리겠다.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까지 잘 말할 자신이 없으니까.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슬플 땐 ㅠ.ㅠ 위로할 땐 ㅜ.ㅜ 기쁠 땐 와! 정도.
마음은 따뜻하지만 아직은 로봇인 나는 이 공감자들 사이에서 마음을 전달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북클럽을 한지 햇수로 2년째인데 이제야 조금 메시지 창에 한두 줄 정도 위로와 축하의 말을 사람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공감자들 사이에 있다 보니 로봇도 공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많이 늘었다며 칭찬도 받았으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로봇이 점차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 냉철한 머리와 마음이 아닌 이제 마음도 뜨끈한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천성이 물건이던 관계던 별로 미련이 없던 터라 아직은 어렵다.
그래도 이만큼 깨달았으니 아주 냉정한 년은 아니라고 한 줄 써보고 싶었다.
p.s 그런데 솔직히 요즘 핸드폰 사진기로 쉽게 사진을 찍다 보니 애들 사진은 넘치도록 많다. 진짜 안 그래요? 다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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