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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Dec 13. 2024

술얘기

술얘기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아서요.


술을 처음 마셔본 건 대학교 1학년 동아리 환영회 때였다. 중고등학교 때 몰래 마셔봤다거나 하는 거창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벌써 그 얘길 썼겠지만. 뭐 술에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어른만 마시는 줄 알았던 참 순수 그 자체였던 사춘기 소녀시절을 지나 드디어 스무 살.


한잔 두 잔 소주를 받아먹고, 맥주도 들이켜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대학 신입생 환영회였는데 어랏? 생각보다 취하지 않네? 그렇다. 술 냄새만 맡아도 헤롱거리는 엄마와 동생과 달리 난 아빠의 강력한 술 유전자를 물려받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첫 환영회를 마치고 나서 그날 새벽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가는데 티브이 예능에서 들어봤던 얘기가 현실이 됐다. 신발을 벗고 있는 나를 본 엄마가 이제 일찍도 일어나 수업 간다며 칭찬을 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시 신발을 고쳐 신고 씻지도 못한 채 근처 찜질방으로 갔다.


진한 커피를 먹으면 손이 덜덜 떨리고 어지러워서 잘 걷지도 못하면서 어쩜 그렇게 알코올엔 강한지 뭐 안주 좀 챙겨 먹고 잘만 마시면 먹으면서 깨고 또 마시고 깨는 핑크간 소유자의 일상이 계속됐다. 물론 나도 취해 업혀가거나 따뜻한 주차장에서 아주 곤히 잔 적도 있지만 큰 타격감은 없었는데 이런 나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 있긴 하다.


그냥 기분 좋아서 한잔 두 잔 먹다 보니 얼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니던 헬스장으로 들어갔다. 왜라고 묻는다면 이유는 없다. 그냥 들어가서 헬스장 코치님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고, 울면서 러닝머신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이미 머신 위에서 휘청거리며 운동을 시작한 나. 멀리서 코치님이 달려오셨고 어찌어찌해서 우리 집 앞까지 날 데려다주셨는데 다음날 아침 이 모든 게 다 기억이 났다. 당연히 그 헬스장은 발도 못 들였고, 그 이후에 나는 조금 조신하게 술을 마시게 되었다.


황찬란한 나의 20대 30대를 보내고 마흔 중반을 달리는 지금. 아직도 나는 애주가이지만 이제는 아주 우아하게 한 모금 두 모금씩 와인을 넘긴다. 물론 이러다 왕창 마시게 되는 날도 있지만 이젠 핑크간이 살짝 변색이 된 느낌이랄까.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며 얘기하는 걸 좋아했던 나를 좋게 봐줘서 결혼해 준 남편도 있으니 그 정성을 봐서라도 이젠 집에서 안전하게 마셔야지 않겠는가.


늘그막에도 스테이끼 썰며 와인 한잔 정도는 해야 되니까, 오늘도 나는 즐겁게 술을 먹기 위해 걷고, 달리고, 오르며 몸을 관리한다.  


아빠가 물려준 알코올 유전자는 너무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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