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잘 버리기도 하는데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기도 하는 모순덩어리.
물건 버리는 건 좀 나중에 글로 써보기로 하고, 오늘은 빈티지에 대한 이야기다. 빈티지가 뭐 별 건가. 중고로 나온 물건들이면 다 빈티지인 것을. 때때로 유명 브랜드 패션쇼도 찾아보기도 하고, 윈도 쇼핑하는 것도 매우 좋아하는 나지만 빈티지 가게를 뒤질 때만큼 희열을 느낄 때가 없는 듯하다. 우선 유행과 상관없이 빼곡하게 차 있는 옷더미 속에서 내 취향에 맞는 옷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환경보호라는 거창한 명목은 없다. 그저 어릴 때부터 빳빳한 새 옷보다는 한두 번 동생이 입던 옷, 물려받은 옷이 편했던 터라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듯하다. 그런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환경보호까지 할 수 있으니 더더욱 내 취향을 사랑하게 됐다.
빈티지에 흠뻑 빠지게 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아빠가 중고 LP를 모으는 걸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몇 번 따라가 봤는데 형광등이 지지직거리는 어두침침한 가게에 셀 수 없이 많은 LP판이 발 디딜 틈 없이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봐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나와 달리 아빠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쪼그려 앉아 숨은 보석들을 골라냈다. 아빠눈에만 보석일 수도 있는 LP판들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사 오는 날이면 그날은 밤새도록 턴테이블이 돌아갔고, 처음 보는 외국가수들이 부르는 가사도 모르는 음악이 꿈속에서 맴돌았다. 알고 보니 사이먼 앤 가펑클이더라. 흠. 보석 맞았네.
이사할 때마다 이고 지고를 반복하고 정리하며 남은 게 대략 몇천 장이 되는데, 사실 턴테이블을 돌리는 아빠가 부러워서 얼마 전에 나도 미니 턴테이블을 샀다. 엄마는 어딜 가도 턴테이블과 LP판뿐이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은근히 반가운 듯하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된 빈티지 사랑은 책, 옷, LP로 거듭 진화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름다운 가게를 종종 들르는데,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옷인 헌 옷'을 구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정말 말 그대로 '새 옷인데 헌 옷'인 게 너무 많아서 첫째로 놀라고 둘째는 너무 싸서 놀란다. 재작년 겨울 스웨터를 두벌 샀는데 입고 또 입어도 편하고 마음에 든다. 연말이니 다음 주 중에 아름다운 가게를 한 번 더 가볼 생각이다. 원래 여자들은 항상 입을 옷이 없는 법이니까.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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