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얘기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아서요.
술을 처음 마셔본 건 대학교 1학년 동아리 환영회 때였다. 중고등학교 때 몰래 마셔봤다거나 하는 거창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벌써 그 얘길 썼겠지만. 뭐 술에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어른만 마시는 줄 알았던 참 순수 그 자체였던 사춘기 소녀시절을 지나 드디어 스무 살.
한잔 두 잔 소주를 받아먹고, 맥주도 들이켜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대학 신입생 환영회였는데 어랏? 생각보다 취하지 않네? 그렇다. 술 냄새만 맡아도 헤롱거리는 엄마와 동생과 달리 난 아빠의 강력한 술 유전자를 물려받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첫 환영회를 마치고 나서 그날 새벽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가는데 티브이 예능에서 들어봤던 얘기가 현실이 됐다. 신발을 벗고 있는 나를 본 엄마가 이제 일찍도 일어나 수업 간다며 칭찬을 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시 신발을 고쳐 신고 씻지도 못한 채 근처 찜질방으로 갔다.
진한 커피를 먹으면 손이 덜덜 떨리고 어지러워서 잘 걷지도 못하면서 어쩜 그렇게 알코올엔 강한지 뭐 안주 좀 챙겨 먹고 잘만 마시면 먹으면서 깨고 또 마시고 깨는 핑크간 소유자의 일상이 계속됐다. 물론 나도 취해 업혀가거나 따뜻한 주차장에서 아주 곤히 잔 적도 있지만 큰 타격감은 없었는데 이런 나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 있긴 하다.
그냥 기분 좋아서 한잔 두 잔 먹다 보니 얼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니던 헬스장으로 들어갔다. 왜라고 묻는다면 이유는 없다. 그냥 들어가서 헬스장 코치님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고, 울면서 러닝머신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이미 머신 위에서 휘청거리며 운동을 시작한 나. 멀리서 코치님이 달려오셨고 어찌어찌해서 우리 집 앞까지 날 데려다주셨는데 다음날 아침 이 모든 게 다 기억이 났다. 당연히 그 헬스장은 발도 못 들였고, 그 이후에 나는 조금 조신하게 술을 마시게 되었다.
취황찬란한 나의 20대 30대를 보내고 마흔 중반을 달리는 지금. 아직도 나는 애주가이지만 이제는 아주 우아하게 한 모금 두 모금씩 와인을 넘긴다. 물론 이러다 왕창 마시게 되는 날도 있지만 이젠 핑크간이 살짝 변색이 된 느낌이랄까.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며 얘기하는 걸 좋아했던 나를 좋게 봐줘서 결혼해 준 남편도 있으니 그 정성을 봐서라도 이젠 집에서 안전하게 마셔야지 않겠는가.
늘그막에도 스테이끼 썰며 와인 한잔 정도는 해야 되니까, 오늘도 나는 꽤 즐겁게 술을 먹기 위해 걷고, 달리고, 오르며 몸을 관리한다.
아빠가 물려준 알코올 유전자는 너무 소중하니까.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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