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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r 15. 2024

봄 섬 욕지도

그기 더 맛나나?”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뜻한 등산복 차림의 두 여자가 손에 쥔 껌을 내보이며 주고받는 말이었다. 새콤한 사과를 베어 물듯 사근사근한 경상도 여자의 말투는 언제 들어도 귀에 착 감긴다.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 새벽 다섯 시 반 출발, 때아닌 이른 기상으로 몸이 적응이 안 돼 선지 목이 자꾸 말랐다. 생수병을 하나 사들고 터미널 안 매점에서 돌아서니 삼각형 모양 색색의 깃발들 사이로 눈에 익은 산악회 깃발이 개찰구 가까이 보였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힘들게 등산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이번 산행은 섬 산이어서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것과 힘들면 입구에서 바다구경을 하다 다시 돌아와도 될 것이라는 지인의 말에 맘이 동했다. 게다가  ‘통영’이라는 지명과 섬 ‘욕지도’에 대한 호기심도 거들었다. 산악회 회원들은 대부분 대형 트럭에 을 싣고 새벽이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사들과 그 가족이었다.


 삼월 중순이었지만 제법 매서운 갯 냄새가 얼굴을 비벼댔다. 주말 여행객으로 꽉 찬 주차장에서  일행들은 버스를 바람막이 삼아 개다리소반을 옹색하게 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바람을 피해 웅숭그리고 있던 사람들이 밥상 주위로 모여들었다. 밥상 위에는 콩나물국과 김치 그리고 김과 홍어무침이 차려졌다. 개다리소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새초롬한 봄바람을 맞은  식어버린 콩나물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법 빨갛고 윤기가 흐르는 홍어무침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달았다. 목넘이로 넘어가는 밥이 꿀꺽 소리를 냈다.


 “안녕하십니까? 승객 여러분! 이 배는 이곳 통영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하여 연화도를 거쳐 욕지도까지 약 한 시간 십분 동안 운행됩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선실 바닥은 좌판을 벌인 시장꾼들처럼 여기저기 가방을 내려놓은 사람들로 그득했다.

 한쪽에서는 벌써 술판이 벌어졌다. 우리는 한쪽 구석  사물함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차 안에서 받은 욕지도 관광 안내서를 펼쳤다.

‘통영은 섬나라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영을 바다의 땅이라 부른다. 통영 바다에는 526개의 섬이 있고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4개. 통영의 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들이 모여 연화열도를 이룬다. 연화열도의 중심 섬인 욕지도는 그중에서도 최고의 비경을 자랑한다. 통영항에서 32km, 한 시간 거리의 뱃길이다. 청보석의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과 여들. 욕지도 바다의 풍경은 한 편의 산수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름답다.

욕지도는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탁 트인 남태평양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다도해의 소담함과 대해의 장쾌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섬이다. 욕지도를 본섬으로 하는 욕지면은 10개의 유인도와 45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욕지도에 면소재지와 각종 관공서가 위치해 있다. 욕지도에는 45개 마을 2000여 명이 살고 있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어디선가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벨소리는 새벽부터  달려온  장소를  거슬러  며칠 전으로   데리고 갔다.

“야! 시상에나... 야- 야- 느그 할머니 대그빡이 깨졌단다! 할머니라고는 나밲이 없는디 대그빡이 깨졌다가 뭐시다냐?”

어머니는 시누이의 컬러링에 나오는 유행가를 그렇게 듣고 있었다. 아니라고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몇 번을 설명했으나 소 귀에 경읽기였다. 결국 시누이는 컬러링을 바꿨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이제 곧 욕지도에 도착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소지품을 잘 챙겨 내리실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방을 챙겨 선실에서 나와 갑판에 올랐다. 깊게 숨을 내뱉으니 부글거리던 속이 바다에 버려진 듯했다. 뱃머리가 선착장에 닿기도 전에 사람들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밀리는 느낌이었다. 발을 빠르게 앞으로 내밀어 보았지만 윗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통영과 그 섬에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산악회 회장은 입구에서 네 시간 반 코스로 오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마 섬산이 얼마나 힘들까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함께한 일행들은 대부분 오십 대 이상 인듯했으나 이런 산행은 산행축에도 못 낀다는 말에  말없이  산을  타기 시작했다. 숨소리만  들썩거렸다.


머리카락에 젖은 땀을 손목에 감긴 수건으로 쓰윽 훔쳐내며  멈췄다. 일행들은  내 걸음에  맞춰  산을  올랐지만 늘 멈춰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삼분의  일쯤 올랐을까? 뒤쪽에서 꼬물거림이 껴졌다. 강아지였다. 흰색 강아지였으나 꼬질꼬질한 땟국물이 묻어 회색빛에 가까웠다. 언제부터 따라오고 있었을까?  녀석은 내 가방에 든 음식물 냄새를 맡았을까? 앞지르지 않고 뒤만 따라오는 녀석이 맘에 쓰였다. 이 녀석은 가족이 있을까? 친구가 있을까? 두 눈이 마주쳐도 알 수 없는 저 동공. 녀석이 잘 따라오나 자꾸 뒤돌아 봐 졌다.


그제야 숲이,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산길 여기저기 아주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듯한 동백은 이미 바닥에 빛바랜 꽃머리를 떨구고 있었다. 공기정화에 좋다며 집에 들여놓았팔손이는 아직 겨울잠에  빠져있건만  여기서는 봄기운을 싣고 번질번질한 손을 펼치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었다.  태고암까지는 강아지가 따라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천왕봉에 올라보니 녀석이 안보였다. 여기저기 산뜻한 원색차림의 등산객들은 예닐곱 명씩 무리 지어 둘러앉았다. 산악회원답게  지인 부부는 배낭에서 코펠과 버너를 꺼냈다. 그리고 오리주물럭을 얹어 익히기 시작했다. 벌건 고추장 양념에 양파, 깻잎, 대파, 버섯을 올렸다. 주변을 살펴봐도 이렇게 거하게 준비해서 올라온 팀은 없는 듯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자, 드세요! “

고기가 눌어붙지 않도록 뒤적이며 지인의 남편은 호방한 목소리로 말했다.  45인승 버스 두 대로 출발한 인원들이 섬 여기저기로 흩어져 따로 출발해서인지 천왕봉에는 그 절반의 수정도만 보였다.


“맛있게 먹었으니, 자 이제 다시 움직여봅시다!”

이젠 내리막 길이었다. 산꼭대기를 바라보고 오르느라 나무만 보이던 전망이 이내 바다로 바뀌었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일렁이는 작은 파도를 밀고와  소금 같은 포말을 섬 테두리에 쌓아놓았다. 며칠 동안  울적했던 마음을 털어버리려 일부러 씩씩하게 걸었다.


오르막길에서  붉은 홍시같이 벌게진 얼굴이 사라지고  이제 걸음걸이가 제법 여유로워져 보였다. 산행에 제법 익숙한 지인 부부는  길 언덕배기 뾰족이 붉은 살 내미는 진달래를 찍고 있었다.

“여보! 이리로 와봐!

부부는 대기봉에 서서 너른 바다와 그 가운데 둥둥 떠있는 여러 섬을 뒤로 사진을 찍었다. 하트를 만들기 위해 거무스름한 얼굴에 키가 큰 남편은 엉거주춤 무릎을 구부리고 아담한 지인은 뒤꿈치를 들어 바깥쪽 팔을 올렸지만 똑같은 반쪽은 되지 않았다. 나도 섬 줄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리막 길이 끝날 즈음 흰 강아지 녀석은 쑥 캐는 아낙들 옆에서 알짱거렸다. 그 녀석도 뭍사람들 행렬이 몸에 밴 모양이었다.

선착장에 내려와 완만한 산을 올려다보니 주황, 초록지붕을 뒤로 동그마한 배를 살짝 내밀고 있는 듯 한 산비탈 밭들이 정겹고, 여기저기 들어앉은 오리나무, 비파나무는 푸른 봄빛을 올려놓았다. 동백은 이미 그 기운이 한풀 꺾여가고 연분홍 진달래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마지막 뱃시간까지 한 시간 여가 남아있었다. 우리는 섬을 일주하는 버스를 탔다.

 운전기사의 설명에  바다가 보이는 왼쪽 창가 쪽으로  몸을  옮겨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 속에서  산에 오르며 머릿속에 구물거리던 많은 것들은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욕지(欲知)? 알고자 하는?’

‘나는 무엇을 알고자 했을까?’     

돌아오는 길, 핸드폰 검색창에는 이렇게 떠 있었다.

‘각종 욕지도 관광 안내서에는 욕지(欲知)의 뜻을 ‘알고자 하는’으로 풀이해 놓고 있다. 무얼 알고자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그냥 글자 뜻풀이 일 뿐 욕지도란 이름의 진짜 의미를 풀이해 주지는 못한다. 욕지도의 뜻은 그 자체로는 결코 풀이될 수 없다. 욕지도 한 섬만으로도 풀이가 되지 않는다. 욕지도의 뜻은 주변의 다른 섬들,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 등의 섬들과 연계될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린다.

욕지도를 비롯한 이들 섬의 이름은 “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이라는 불경 구절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화세계(극락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께 물어보라.” 옛날 욕지도를 비롯한 연화열도의 섬들은 스스로 이미 연화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 이름은 불국토, 이상향을 염원하는 누군가의 기획 하에 지어진 것처럼 아귀가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이름의 섬들이 통영바다에만 몰려있을까. 근처의 미륵도와 반야도 또한 이 불국토의 자장 안에서 지어진 이름이리라.‘     


‘나는 나 자체로는 결코 풀이가 되지 않는다는?’

‘나는 주변의 다른 섬들  어머니, 남편, 아이들의 섬들과 연계될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린다?’      

나는 그날 이렇게 적었다.


*오래전  욕지도를  다녀와  쓴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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