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숙녀 링
어린 시절, 집에서 즐기던 유일한 취미는 만화영화 보기였다. ‘들장미 소녀 캔디, 요술공주 밍키, 이상한 나라의 폴’ 등 다양한 만화를 즐겨 봤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는 ‘작은 숙녀 링’(후에 다른 방송국에서 ‘들장미소녀 린’으로 재방영됨)이었다.
주인공 링은 영국 귀족인 아빠와 살기 위해 영국으로 오던 중에 교통사고로 (원작은 일본인인) 한국인 엄마를 잃는다. 낯선 나라에서 다양한 역경을 이겨내며 엄마와 약속한 대로 멋진 숙녀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이웃에 사는 잘생기고 다정한 아더와 까칠하지만 따뜻한 에드워드 형제는 링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형제의 말인 세바스찬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음을 열어주었다. 이복언니 세라의 냉대에 슬플 때에도, 갑자기 등장한 새엄마와 의붓남매의 괴롭힘에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아더와 에드워드의 다정함도 있었지만, 세바스찬이라는 존재의 힘이 컸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생기면 마구간으로 달려갔던 링. 그걸 알아듣는 듯 위로하는 말.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세바스찬은 가족들 속에서 외로웠던 나에게 가지고 싶은 존재였다.
역경을 딛고 자라난 링은 학교 승마부에 들어가 ‘앤드류’라는 운명의 말을 만나면서 더욱 당당하고 멋진 숙녀로 성장한다. 어떤 시련도 이겨내는 링의 모습도 멋졌지만, 말인 앤드류와 링이 교감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은 큰 감동을 주었다. 앤드류를 타고 장애물을 넘고 초원을 달리며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두운 집안 분위기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나에게 말이라는 동물은 어떤 생명체보다 멋지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나의 소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