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의 행복
한국마사회에서 승마 초·중급의 과정을 마치고 승마동호회에 가입했다. 회원 수를 보고 생각보다 승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처럼 이미 승마를 경험하고 오는 신입회원도 있었지만, 호기심에 처음 오는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다.
동호회 활동은 주로 온라인 카페에서 이루어졌지만 매주 토요일은 말을 타러 가는 오프라인 정모가 있었다. 동호회 게시판에 참가 신청을 하면 토요일 오전에 사당역에서 모여 함께 승마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동호회 정모다 보니 지정 승마장이 있었다. 동시에 10명 이상을 태울 정도로 많은 말들을 보유한 승마장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마사회 승마장과 비교하면 처음 간 승마장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사회가 별 3개짜리 호텔이라면 정모 승마장은 모텔로 비유하면 될까. 그래서 인당 5만 원이 가능했구나 싶다.
사실,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타러 승마장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만의 승마용품이 하나씩 늘어났다. 동호회 회원 중에 승마 부츠와 바지를 제작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 회원가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나의 발에 맞춘 승마 부츠와 체형에 맞춘 승마바지. 승마용품을 넣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까지. 승마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
사당역에서 동호회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차를 나눠 타고 승마장으로 향했다. 말을 만나는 것은 행복하고 설레는 일이었지만 말을 탄다는 것은 늘 긴장되는 일이었다. 갈 때마다 다른 말을 만나기 때문에 오늘은 어떤 성격의 말인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내가 박차를 가하지 않아도 앞말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여주는 말을 만나기도 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계속 흔들어서 고삐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하는 말도 있었다. 앞말 엉덩이에 코를 박을 정도로 따라붙는 말도 있고, 뒷말이 가까이 붙으면 사정없이 뒷발질하는 말도 있었다.
가끔은 말 배정과 함께 막대기를 받을 때도 있었다. 말이 겁이 많다 보니 (사람의 기준에서) 말(語)을 듣지 않을 때는 채찍을 들고 타게 했다. 말은 시야가 넓어서 뒤쪽까지 보이기 때문에 고삐 잡은 내 손에 채찍이 들려있으면 어느 때보다 말을 잘 들었다. 하지만 채찍에 겁을 먹고 작은 소리와 동작에도 반응하는 말을 보고 있으니 가해자가 된 것 같아서 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1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회원들의 수준에 따라 초, 중, 고급으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초급은 원형 트랙에서 나란히 돌면서 평보, 속보를 연습했다. 말들이 방향을 바꿀 수 없는 오직 한 방향으로 기계처럼 빙글빙글 도는 곳이라 기승자가 어떤 신호를 주지 않아도 리더 말이 움직이면 뒷말들은 자동으로 따라 뛰었다. 그래서 리더 말은 초보 중에서도 기승 횟수가 제일 많은 사람이 타는 경우가 많았다. 리더 말을 타게 된 날은 다른 사람들과 실력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서 더 열심히 탔던 기억이 난다.
중급은 트랙이 없는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고삐를 좌우로 당기며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향 전환 기술을 배운다. 좁은 트랙에서 한 방향으로 달리다가 처음으로 넓은 운동장에 들어설 때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말머리 위에서 머물던 시선이 먼 곳까지 확장되었다. 허허벌판 같던 운동장이 탁 트인 초원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고급은 실력에 따라 자유로운 기승이었다. 워낙 잘 타시는 분들이라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기(습보)도 하고 장애물 뛰어넘기 연습을 하는 분도 계셨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회원은 장애물 넘기를 연습하셨는데 말과 함께 뛰어오르는 모습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열심히 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있었으나 말을 좋아하는 마음과 다르게 실력은 빠르게 늘지 않았다.
말을 만나고 말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당근이나 각설탕을 주며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매주 정모에 참여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정모 후 모임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동호회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 있었다. “말 뽕 맞았구나” 승마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동호회에는 그런 분들이 많았다. 주말마다 3~4곳의 승마장을 돌며 종일 타는 분도 계셨고, 매일같이 타러 다니시는 중년의 여자분도 만날 수 있었다. 마음만은 나도 매일 승마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싶었다. 승마장에 자기 말을 맡기고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오는 자마 회원이 부럽기도 했다. 그때 나의 꿈은 내 말을 가지는 것이었다. 말 한 마리에 드는 비용을 듣고 바로 포기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각자의 기승이 끝나면 다 같이 식당에 모여 점심을 먹는 것까지가 동호회 정모 일정이었다. 그 후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다른 승마장으로 향했다. 그중 한 명이 나였다.
정모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타기 때문에, 실력에 맞게 맞춤교육을 받을 수가 없다. 특히나 초보의 경우 5명 이상이 한꺼번에 타야 했기에 (그것도 사람이 많으면 30분씩 나눠 타야 했다) 눈에 띄게 잘하거나 못 하는 경우가 아니면 선생님의 눈길조차 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칭찬받는 날은 세상 기쁜 날이기도 했다. 소수의 사람만 가는 승마장에서는 1:1 지도도 가능하니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말뽕 맞은 사람들과 함께 토요일마다 두 번씩 말을 만나러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