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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Sep 22. 2024

워렌버핏의 점심과도 맞바꾸지 않을 그 날의 시간

나의 롤모델이면서 누구보다 내 병과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주실 것 같은 임소장님, 그리고 인사팀 동료들이 보고 싶어 분당에 있는 첫 직장에 찾아 갔다. 임소장님 역시 인사담당자 출신으로 과로와 스트레스로 삼십대 후반에 갑자기 쓰러지시는 바람에 평생 몸을 관리하면서 살아오셔야 했지만, 사내 상담과 힐링캠프 프로그램 등으로 사람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와 희망을 주는 분이셨다.


급하게 찾아 갔는데도 인사팀 동료들이 모두 시간을 내어줘서 고마웠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소장님은 인사팀 동료로부터 미리 내 병에 대해 들으셨고, '아이고, 이런 것까지 닮아버리면 안되는데'라고 하셨다. 소장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평소의 상담이었다면 내 이야기부터 듣고 이야기를 해주셨을텐데,  소장님이 먼저 39세부터 병을 겪으면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쭉 들려주셨다.


소장님이 그 동안 강의와 책에서 해주시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간 알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들까지도 나를 위해 들려주셨다. 그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소장님께 처음으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병이 생기고 나서, 내가 그 동안 공감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까지 공감하게 된 것은 오히려 좋은 점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내 이야기도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 들어주셨다. "어떻게든 해낼 수 없게 된 내가 가치가 있을까?"처럼 내가 가장 크게 고민했던 부분들은 오히려 큰 고민이 아니라고 안심 시켜주셨고, 이야기를 할 수록 오히려 희망이 생기는 부분들도 많았다.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동안의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고, 생각이 열리고 마음이 후끈후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소장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소장님이 해주신 이야기들이 다 도움이 되었지만 몇 가지 내용들은 꼭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정리해야겠다고 생가했다.




소장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중에서 다시 기억하고 정리해야할 것들



01. 병이 오고 난 후,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내 사고체계와 앞으로의 삶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 상실한 것에 너무 집착하면 인생이 괴로울 수 있다.

- 지금 남은 것,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작성해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 소장님도 에너지가 줄어서 힘들었지만, 받아들이고 저녁 이후에는 활동을 하거나 약속을 잡거나 하는 일 없이 살아왔다. 이전 삶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지나오고 보니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다.


02. 경영학의 As-Is, To-Be 모델은 성과 달성에는 도움되지만 건강을 관리하고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 To-be 이미지나 역할이나 불안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등으로부터 만들어진 욕망일 수 있다.

- To-be가 깨지고 기능이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 To-be를 달성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드도 있지만, 하루만 살기 모드도 있다.

- 목적이 없으면 비교 대상이 없다.


03. "이프문법"을 폐기해야 한다

- 만약 ~했다면, ~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빼고, To-be를 없애야 삶에서는 행복해질 수 있다.

-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개념이 도움 되었다. 우리의 자아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라는 개념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면 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04. 현재에 집중하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들을 작게 시도해봐야 한다.

- "내가 전보다 줄어든 에너지와 시간으로 더 잘할 수 있을까, 내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을까?"는 오히려 큰 고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MVP(최소가치모형) 모델로 만들어서 테스트해보고 시도해보면서 찾으면 된다.

- 기존의 내 상품성과 핵심역량은 떨어졌을 수 있고, 다시 핵심역량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다시 핵심역량을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 핵심역량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어들을 놓아두고, 내 주변에 어떤 언어들과 단어, 글들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도움이 된다.


05. 병이 온 것은 50대 중반에 다른 사람의 아이덴티티와 셀프를 찾아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 상품성은 페르소나(Persona, 사회적가면)의 영역이고, 아이덴티티는 셀프(Self)의 영역이다.

- 소장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50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나의 페르소나(Persona)를 벗고, 셀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장님은 30대 후반에 남들보다 20년 가까이 앞서서 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내가 병에 걸린 것도 오히려 50대 중반에 겪을 것을 미리 경험하고, 내가 50대 중반이 되어서는 다른 사람의 아이덴티티와 셀프를 도와주라는 시그널일지도 모른다.

- 인사담당자 출신으로서는 이런 경험들이 앞으로 더 큰 일을 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06. 생각이나 마음을 너무 내 안에서만 정리하고 쌓으려고 하면 안된다.

-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마음들을 너무 내 안에서만 정리하고 쌓으려고 하면, 내가 너무 소중해져서 과잉 될 수 있다.

- 소장님을 찾아뵈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지금의 생각들을 나중에 브런치 같은 곳에 글로 써보자.


07. 병은 초대하지 않았지만 찾아왔다.

- 병이 찾아왔지만 소장님은 파괴되지 않았고, 함께 지나왔다.

- 지나고 보니 소장님을 패스트트랙으로 성장시켜주고, 지금의 일을 하기 위해서 병이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다.




소장님과의 상담 시간은 언제나 특별했지만 이번 시간은 정말 워렌버핏과의 점심 시간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얼마나 잘 되려고, 얼마나 더 깊어지려고 이런 병이 나를 찾아온 지는 모르겠지만 소장님 말씀대로 이 병을 파트너로서 잘 맞이하면 지금까지 삶보다 더 좋은 삶들이 펼쳐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님은 병 이후에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지만 오히려 더 좋은 삶을 살아가고 계신, 증거 그 자체이고 그런 소장님을 내가 알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소장님처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소장님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이전 글을 참고해주세요.


* 중증근무력증(Myasthenia Gravis): 10만 명 중 10명 정도 발생하는 희귀 자가면역질환. 주요 증상은 근육 약화와 쉬운 피로감. 눈꺼풀 처짐, 복시 등 안구 증상으로 시작해 전신으로 진행 가능. 팔다리 근력 저하, 걷기 어려움, 삼키기 곤란, 말하기 어려움 등 발생. 증상은 변동이 심하며 휴식 후 일시적 호전. 스트레스와 연관성 높음. 완치는 불가능하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 조절 및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 과거 40% 이상이던 사망률이 현재 5~12%로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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