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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Sep 29. 2024

아장아장 걸어서 출퇴근하기

다리를 절뚝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병을 알게 되고 50일 정도 되었을 때부터, 다리를 절뚝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처음에는 다리에 힘이 빠져서 원래의 보폭 대로 걸으려고 하면 휘청이는 수준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무릎 아래부터 힘이 빠져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를 절뚝절뚝 거린다.


저녁으로 가면서 힘이 더 빠지는 근무력증의 특성인지, 보통은 저녁 무렵이 되면서 부터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어떤 날에는 점심부터, 어떤 날에는 아침부터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쉬면 괜찮아지고 증상이 이어지지는 않는데, 어떤 주는 일주일에 한 번만 그러기도 하고, 어떤 주는 일주일 내내 그러기도 한다.




회사에 복귀하고 나서 3일 째 되던 날, 퇴근 시간 무렵부터 갑자기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다리가 절뚝 거리기 시작했다. 무릎과 마음을 붙잡고 지하철을 타고 가려는데,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 앉을 것 같은 느낌이라 손잡이를 꼭 붙잡고 갔다. 조금 더 힘들었으면 노약자 석에라도 양해를 구하고 앉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다행히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집 앞의 역까지 내리자 마음이 안도했는지 조금 더 절뚝 절뚝.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네이버 지도로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걸음이 매우 빠른 편이라 남자들에게도 언제나 천천히 좀 걸어가라고 핀잔 받던 나에게는 10분도 안 걸릴 거리였다. 그런데, 그 날은 특히 10분 거리가 1시간처럼 느껴졌다.


좋게 이야기하면 십자수에 수를 놓듯이 한걸음, 한걸음 정성껏 올려놓으면서 걷는 기분이었는데, 걸음을 넓게도 빠르게도 뗄 수가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이 아주 아주 천천히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한 번에는 못 갈 것 같아서 중간에 돌에 앉아서 잠깐 쉬는데, 어쩐지 조금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고작, 10분 거리도 한 번에 못 가다니. 다시 몸을 일으켜 집에 겨우 도착했는데 방전된 배터리처럼 30분~1시간 누워있어야 정신이 좀 들고, 다시 움직일 만 했다. 바닥을 충전기 삼아, 무선 충전을 하는 기분이었다.




복귀하고 처음 몇 주는 항상 그랬던 것 같고, 지금도 종종 그럴 때가 생긴다. 다른 사람에게 병을 설명할 때, 오래된 핸드폰 배터리 같은 몸상태라고 설명한다. 건강했을 때 대비 배터리가 빨리 떨어지는 것이 그렇고, 계속 충전을 해도 완충되지 않고 배터리가 60% 정도 밖에 충전되지 않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꽤 충격적이었다. 병이 생기고 나서, 모든 사물이 두 개로 보인 다거나, 손이 가끔 저린 다거나, 팔에 약간 힘이 안 들어 간다거나, 어지럼증이 생긴다거나 하는 불편함은 어쨌든  겉으로 볼 때 티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받아들인다고 하면 일상을 심각하게 당장 불편하게 만드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겉으로도 티가 날 수 있고, 행동에 지장을 주고 있어서 처음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들을 보는데, 아들의 걸음걸이가 나랑 비슷했다. 똑같이 걷는데 우리 아기는 아장아장 예쁜 아기 걸음, 나는 절뚝절뚝 걸음. 행동은 똑같은데, 아들에게서는 희망이 나에게서는 비관이 보였다. 물론 아들처럼의 귀여움은 없어서 비교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도 아장아장 그래도 잘 걸어다니고 있는 편 아닌가라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무릎이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도 흔들리는 게 문제이지,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기 때문이다. 또, 언제 발생할 지 몰라서 불안하지만, 반대로는 언제나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좋게 생각할 부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 발생하지 않아서, 쓸데없는 걱정을 얹어주지 않는 것도 다행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도 완전하지 못하고 예전만큼 일하지 못하게 된 건 아쉽지만, 어쨌든 9 to 6로 8시간 일할 수 있는 체력은 되는 것 같으니 적응하고 또 치료하면 좋아질 것이라 믿고 싶었다.



아이가 세상을 향해 걸어나가는 것을 배우기 위해, 가끔 넘어지기도 하지만 아장아장 걸어나가는 것처럼. 나도 아장아장. 아자아자.




참고해주세요!

- 글을 써둔 시점과 현재 시점에 차이가 있어, 현재 증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 다리를 절뚝 거리는 증상은 근무력증의 영향이지 않을까 의심할 뿐, 정확히 병원에서 진단받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환우 분들이라면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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