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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May 12. 2024

입사 첫날부터 시작된 재택근무가 3년이 넘을줄 몰랐다

어쩌다 이직, 외국계 A to Z

시스코에 입사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노트북 받으시고요.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시고 계속 재택하시면 되요. 

네? 내일부터 재택이라고요?


네, 저희는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제공해 왔고, 현재는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라 글로벌 전체에서 모두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입사 첫날 리쿠르터는 당장 내일부터 사무실에 나올 필요 없이 재택을 하면 된다고 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심한 상황이었으니까 잠시만 재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오판'이었다.


잠시만 이라고 생각했던터라 황급히 아이들의 공부방에 자리를 잡고 아이패드와 화상회의를 위한 스튜디오 조명 등으로 홈오피스를 만들었다. 아니 임시방편으로 구색만 맞췄다는게 정확할 듯 하다. 


갑작스런 재택근무로 인해 아이들 공부방을 활용하여 꾸며진 첫 홈 오피스 환경


위 사진이 3년 전 입사 직후 꾸며진 최초의 홈오피스 모습이다. 

당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들 방에 임시 기거하기로 했다. 


"여보, 지금 코로나가 심하니까 재택을 기본으로 하는 것 같아. 일상으로 복귀하면 다시 출근할테니 1년 정도만 아이들 방에서 일할 수 있게 해줘"


두번째 '오판'이었다. 

지난해 5월까지 3년여간 이어진 코로나가 종식 선언이 되었지만, 필자는 여전히 재택을 하고 있다.

그렇다. 재택근무를 한지 벌써 만 3년이 넘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이브리드 워크를 하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출근하여 일하는 '오피스 근무'와 집에서 일하는 '재택 근무'를 병행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일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사무실에 의무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횟수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


단언컨대 필자가 가장 애정하는 제도이자, 복지이며, 문화다. 


재택근무를 3년간 하면서 얻은게 많지만, 

가족과의 시간, 일과 삶의 균형, 자기주도적인 삶을 꼽을 수 있겠다. 


첫째, 가족과의 시간. 

재택근무를 경험하기 이전에 회사에서는 사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을 했고,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늦은 밤인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는게 일상이었다. 


어느 순간 아내로부터 아이들이 아빠를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큰 충격이었는데 지금 재택과 출근을 자유롭게 병행하는 현재 하이브리드 워크 환경에서는 아이들을 포함하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출근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저녁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퇴근 후 평일 저녁에도 같이 운동이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보드게임 등을 하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행복한 추억을 매일 쌓아가고 있다. 


둘째, 웰빙을 누리는 삶.

출퇴근 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어들면서 그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건강을 위한 운동을 찾는 과정에서 출근 전 새벽 테니스를 통해 평생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을 찾았다. 

유연한 업무 환경 덕분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에만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입증하면 되기에 그 외 나머지 부분에서 주어지는 자유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점이다. 


출퇴근을 통해 절약된 에너지는 평일 저녁에도 무언가 의미있는 일이나 자기개발(글쓰기, 독서, 운동 등)을 위한 시간에도 힘을 쓸 수 있는 다른 에너지로 자연스럽게 치환이 됐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에너지를 아끼게 되니 업무 외 다른 곳에도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웰빙을 누리게 됐다. 

재택근무가 아니었다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자기주도적인 삶.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말그대로 자유가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필자는 아태 커뮤니케이션팀 소속으로 매니저가 한국이 아닌 싱가폴에 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매니저를 만날수 없다. 


지난 3년동안 매니저를 만난 횟수를 세어보니 4번이었다. 입사 직후에는 코로나가 한창이었고, 이후 입사한지 1년 반만에 한국에서 처음 만났고, 출장으로 갔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 라스베가스, 호주 멜버른까지 포함해서 단 4번 밖에 만난적이 없다. 그 외에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사가 보유한 협업 솔루션 '웹엑스'를 통해 수시로 통화, 메신저, 화상회의를 병행하며 소통하고 있다. 사무실이 아닌 각자의 집에서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누구도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체크하는 사람이 없다. 이 말은 스스로가 업무 시간과 환경을 컨트롤 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태해지기로 마음먹으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이지만 이렇게 되는 순간 필자가 애정하는 이 제도가 사라질지도 모르기에 나름의 규칙과 루틴을 정해뒀다. 


보통 업무는 9시-6시로 하되, 외국계 회사 특성상 미국 본사 시간대 혹은 아태 지역과의 회의를 위해 아침 8시에 회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늦은 밤 회의가 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기본 9 to 6에 맞춰서 일을 하고, 점심은 1시간 이내에 마무리 한다. 예를 들어 12시부터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면 1시에는 자리에 돌아온다. 회의를 하다가 12시반부터 먹게 되었다면 자리에는 1시반까지는 돌아와서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식이다. 


오히려 재택을 해보면 가족 외에 갑자기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보니 사무실 보다 훨씬 높은 집중력을 경험하게 됐다. 말거는 사람이 없으니 한시간 혹은 두시간 가량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사무실 출근은 오프라인 행사가 있거나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명분이나 이유가 있는 날에 맞춰 동료들과 점심도 하며 일종의 네트워킹 차원에서 나가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집중이 필요한 업무는 대부분 재택에서 해결이 된다. 


필자의 회사가 현재와 같이 웹엑스라는 협업툴을 계속 판매하는 이상 현재의 하이브리드 업무 제도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장소에 관계 없이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솔루션을 팔면서 오피스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아이러니일테니까. 


입사 첫날 이후 시작된 재택이 3년 넘게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어쩌다 이직하여 재택을 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가장 만족스런 문화라고 생각한다. 


유연한 업무 환경, 이보다 나은 복지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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