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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송 Sep 13. 2024

이혼소송의 꽃

가정폭력, 바람.. 유책 배우자와의 소송일지(12)













사실, 꽤나 기대했던 피고 측의 답변서는 중구난방이었고 논리가 없었다. 이혼의 시작을 알리는 소장과 이혼의 첫 답변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재판은 약 3~5분 안에 끝난다. 재판이 많기 때문이다. 판사님은 바쁘다. 그렇다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된 답변서 혹은 소장을 기준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그게 편하거든.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건을 처리하셨을 텐데, 딱 보면 알지.


모든 이혼에서 가사조사를 하지는 않는다. 소송을 진행하다 한참 후에 가사조사가 결정나기도 한다. 피고는 재판 하루 전, 오후 5시쯤이 되어서야 마치 전략이라는 듯 답변서를 겨우 제출했고 나는 벼락치기 답변서를 좋아하는 판사님은 없으며 변호사 협회로 "재판 전날 답변서 보내지 좀 말라"는 공문이 종종 보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 야. 너 처음부터 찍혔네.


첫 재판일 3주 뒤에 바로 가사조사 기일이 잡혔다. 이 말인 즉슨, 더 볼 것도 없다는 거다. 이 어린 피고놈의 자식이.. 재판 전날, 응? 내가 퇴근해야 할 시간에 답변서를 제출해? 폭행에, 생활비 끊고, 애가 둘이고 어린데 무단 가출. 이거 딱 가사조사 각이구만.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지만 빨리 하고 해치우자. 그래서 첫 재판부터 가사조사를 조져버린 것이시다. 가사조사관님은 정확한 "쌍놈 감지 레이더"를 갖고 계신다.


아,. 우리 변호사님도 정말 똑똑하고 믿음직스럽지만 판사님도 장난 아니시네. 나 재판 운 좋네. 그리고 바로 가사조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들이 많았다. "가사조사 망했어요" 대부분 다 망했다고 한다. 왜지.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분석했다. 그와 그녀들이 가사조사를 망한 이유부터 가사조사의 목적까지 싸그리 다. 일단은 원하는 말을 하지 못했고, 상대방측에 말려들어 언쟁을 했고, 중요한 부분을 어필하지 못했다는 것.










나는 가사조사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이 분께 가사조사라는 것은, 일이다. 그렇지만 어떤 부부의..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30년이 넘을 이혼의 과정을 조사해야 하는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변호사님께서 듣는 것 만큼이나 굉장한 감정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객관적 시야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잘 보이려거나 모든 이야기를 하려는것 보다 이 분의 수고를 덜어야 한다.


심플하다. 가사조사관의 시간을 뺏는 일, 가사조사관께서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말자. 그리고 가사조사관님은 판사를 대신하여 이 관계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해주시는 분이기에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심리 조사관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1. 감정을 배제하고 언쟁따위 말고 무시하자. 2. 서면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패스하자. 3. 100%는 없다. BUT 중요한 것은 반드시 반박으로 쳐내고 나오자.


어차피 가사조사에서는 본인들의 주장만 하게 되어 있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상대방 측 까지 내가 아량을 베푸는 척 하면서 시간을 할애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가사조사를 준비할 때는 상대방 답변서는 살포시 없는 것 취급하고 내 이혼소장과 내 주장만 한번씩 확인하고 가면 된다. 날짜 같은 것들이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애써 조작하거나 할 필요 없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하면 된다.







이혼 소송, 가사조사는 기회다. 내가 사람으로서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 한 번, 잘 해야만 하는 기회다. 그래, 이왕 해야 하는 거. 잘 하자. 결혼생활과 이혼의 사유에 대한 가사조사는 끝났다. 다음 조사는 한 달 뒤. 아이에 관한 조사. 야. 니가 애를 직접 봤다고? 그래서 난 두 가지 질문을 하기로 했다.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았다면 절대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그는, 다음 조사일에 완전히 조곤조곤 밟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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