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 수 있는 도시
돌아보면 나는 선척적으로 심약한 사람이다. 절대 강한 사람은 아니다. 3살 터울의 말 많던 O형 형과 비교하면 A형의 동그란 얼굴의 나는 조용히 구석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어딜 가나 사랑받던 망우리의 스타였던 형과 다르게 3년 뒤에 태어난 4.2kg의 우량아는 덩치만 컸지 엄마 품에서 떨어지기만 할라치면 그 거대한 울림통으로 망우리가 떨어져 나가게 울었다고 한다. “형제가 어쩜 저렇게 다르니”라는 말을 그 어렸던 시절부터 자주 듣고 자랐다. 달라도 어떻게.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걸.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몰라요.
형과 스타크래프를 하면 핵을 맞거나 캐리어 2부대가 뜨거나 울트라리스크 목장이 펼쳐졌다. 나는 앞마당만 먹고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지키려고 했고 그 외의 영역은 모두 형의 차지가 됐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범위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언가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던 천성을 가진 사람에게 스타크래프트는 딱 앞마당까지의 범위만을 허락했다. 두려울 것이 없는 형 같은 사람에게는 10개의 멀티를 점유하고 2개를 잃어도 8개가 남는 셈법이 가능했다. 겨우 2개를 지키려고 모든 것을 잃는 것과 2개를 잃어도 8개를 가지고 가는 선택은 태어날 때부터 dna에 각인된 결과이지 않을까. 형한테 올멀티 관광을 당하고 울고 있던 스스로를 떠올리며 들었던 생각이다.
처음부터 다른 각도로 세상에 태어났던 우리 형제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거리를 두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갔다. 호전적이고 겁 없던 형은 어딜 가나 대장이 됐다. 그 옆에서 나는 우리 돈키호테를 보필하는 산초 같은 역할을 했다.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람마다 역할이 부여된다. 그건 단 몇 초만 이야기를 해보면 서로가 알아서 상하좌우의 사회적 위치를 정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내 성정에 맞게 누군가의 옆이나 뒤에 있었다. 절대 앞에 있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꽤 도전적으로 살아왔다. 없는 리더십을 끌어올려 반장을 하려고 했고 중고등학교 시험에서 어떻게든 1등 해보려고 잘난 놈 제치고 더 잘난 놈 밟아가며 피 튀기며 경쟁했다. 용기도 없는데 대학을 자퇴하고 다시 수능을 봤다. 고려대 가라던 아버지의 세뇌 교육의 결과였다. 고려대는 못 갔지만 그 언저리에는 착륙할 수 있었다. 그러고선 정신을 못 차렸는지 1년에 몇 명 뽑지도 않는 피디를 해보겠다고 2년을 싸맸다. 서울에 있는 방송국 문을 못 열었지만 또 그 언저리의 지역 지상파 방송국으로 착륙했다. 아등바등 살다 보니 지금은 분에 넘치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소심한 사람이 경쟁에 약한 건 아니다. 다만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의 내가 경쟁이 없이 나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나는 소심한 성격의 나는 감추고 대범하고 용감한 전사가 되기로 했다. 그게 평가받는 사람으로서 자세였다. 그래서 나는 걱정이 많고 자주 불안해하는 사람이 됐다. 이러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이러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남의 눈치만 보고 나의 마음은 돌아보지 않는 빈 껍데기가 돼버렸다.
그건 아마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이 나 같은 심약한 사람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나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너무 중요한데 그게 서울에서는 힘들었다. 뭔가를 이루려면 나로는 안될 것 같았으니까. 잘 되는 사람의 이것저것을 따라 해 조합하면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됐다. 그걸로 면접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그게 나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삶에 대한 만족감은 떨어졌다. 항상 허공에 떠있는 느낌. 일상을 살아도 내가 정말 기뻐서 슬퍼서 그런 걸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최선을 다해서 살지만 나로서 온전히 사는 건 아니니까. 그게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건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치열해서였다.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뭔가를 이룰 수 있었다. 대충 하면 아무것도 안됐다. 주변 모두가 다 같은 걸 원하는데 그중에 내가 더 잘나야 됐다. 적당히 살 수가 없었다. 그런 치열함 속에 나는 나로 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경쟁하며 싸우며 삶을 살아왔다.
여수에 와서 정말 어느 때보다 대충 살았다. 피 튀기게 살았던 서울의 삶에 적응돼서인지 대충 사는 것 같은 지금이 싫은 것도 있었다. 너무 치열하진 않았을 게 사실이니까. 올백 안 맞아도 지역에 잇는 대학 나와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가정을 이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대 나와도 대기업에 있어도 청약이 아니면 아파트도 사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가정을 이룰 생각을 할까. 내 몸 하나 편하게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근데 지역에서는 웬만하면 먹고살 수 있다. 단순하지만 복잡하지 않게 인생을 이뤄갈 수 있다. 자식 구실도 하고 부모 노릇하고 그게 가능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치열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살아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인정도 받을 수 있다. 여기는 사람이 귀한 곳이니까. 그러니까 여기선 나로 존재해도 된다. 버림받을까 봐 쓸모없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로 사는 게 이렇게 충만한 느낌인지 몰랐다.
지역에 산 지 3년이 지났다. 1년은 지역이 서울에 비해 부족한 것들만 눈에 들어왔다. 서울은 이래서 좋고 지역은 이래서 안돼. 2년이 되자 지역의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역에 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구나.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기였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알게 됐다. 부족한 것 많은 지역이라는 공간을 누군가 채워주길 기다렸지만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바에 차라리 내가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빈 공간을 보며 상상을 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걸 자주 그리게 됐다. 어딘가에 속해 누군가가 만든 시스템에서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라 내가 창조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마 서울에서라면 평생 월급쟁이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도저히 나의 힘으로는 무언가를 해내기 어려운, 그 틈바구니 없는 단단한 완성체에서는 나의 역량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겨우 치킨집 정도 생각해볼 수 있었겠지. 지역에서 나는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빈틈 많고 부족한 것 투성이인 곳이라 내가 가진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졌다.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 수도권에 산다. 면적으로는 겨우 10%에 불과한 곳에 인구의 50%가 살고 있다. 수도권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다. 지역의 존재가 위태로워지고 서울은 모든 것이 너무 넘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 지방으로 권력과 사람을 분산시키려고 정부에서 노력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국가의 미래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걱정해야 할 것은 서울이라는 과도하게 밀집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피곤한 출퇴근 시간, 밀리는 차들, 빡빡한 경쟁, 그리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자본 앞에 나약한 사람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누리지만 동시에 기본적인 것도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여유 있는 주거 공간, 충분한 수면, 여유로운 여가 시간. 이런 모든 것들은 예술의 전당 같은 문화 시설이나 롯데월드 같은 놀이 공간 이전에 충족돼야 할 기초적인 욕구다.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질문,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살아온 서울은 이 질문을 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겨우 살아내기도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모두 ‘척’을 하며 지내는 곳에서 나 역시 잘 사는 ‘척’을 해야만 했다. 가면 뒤에 진짜 나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메가시티 서울은 거대한 가면무도회 같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에너지를 분산하는 것은 그래서 한국에 사는 사람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있던 사람들이 지방으로 가면 서울은 더 여유 있어진다. 지방은 부족했던 사람들이 오면서 더 생기 있는 공간이 된다. 그동안 경쟁이 너무 심하고 사람 간의 거리가 가까웠던 서울에 경쟁은 느슨하게 하고 거리는 멀어진다. 그러면서 서울은 사람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지방으로 간 사람들은 또 그곳에서 ‘나’를 찾으면서 지방에서의 가능성을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살기 적당한 중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서울을 떠나보니, 지방에 살아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