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매거진 12월 기고
https://www.youtube.com/watch?v=9G9rIzN9E6w
매쉬업(Mashup)은 ‘두 가지 이상의 노래를 합쳐 만든 하나의 노래’를 의미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매쉬업을 통해 히트한 곡은 2008년 DJ 늅의 ‘빠삐놈 병神 디스코 믹스’일 것이다. 영화 놈놈놈 OST에 수록된 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와 삼강 빠삐코 광고 음악을 중심으로, DJ Koo의 ‘왜’, 전진의 ‘와’, 엄정화의 ‘Disco’, 이효리의 ‘U-Go-Girl’ 등을 뒤섞은 이 노래는 디씨인사이드에서 크게 히트하며 ‘합성필수갤러리’에 올랐다. 서브컬쳐의 부산물인 이 노래의 위력은 당시 빠삐코의 판매량을 40% 이상 늘렸으며 한동안 방영되지 않던 원조 빠삐코 CF가 다시 방영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곡의 가장 큰 영향은 대중에게 ‘매쉬업’이라는 생소하던 작업을 당시 유행하던 코드인 ‘병맛’을 통해 보다 가깝게 전달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매쉬업의 원조를 찾으려면 1970년대 자메이카로 넘어가야 한다. 당시 자메이카에서 만들어지던 곡의 리듬은 자메이카식 이름 ‘리딤’이라 불리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저작권법이 제대로 없던 자메이카의 독특한 문화는 하나의 곡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며 자신만의 버전(Version)을 만들었다. 엔지니어 또는 프로듀서가 곡의 리딤에 딜레이나 에코 이펙트를 입혀 좀 더 몽환적인 덥 버전(Dub Version)을 만들기도 했고 하나의 리딤을 갖고 수십 명의 엠씨가 각자 자기 방식대로 노래 또는 랩을 하기도 했다. 나비가 꽃가루를 다른 꽃들에 퍼트리 듯 하나의 리딤은 다양한 버전을 통해 살아남았다. 어떻게 보면 이야 말로 최초의 매쉬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리딤 중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Sleng Teng’ 리딤일 것이다. 자마이카 최초로 카시오 홈 키모드를 통해 만들어진 이 리딤은 1984년 킹 재미(King Jammy)와 (Wayne Smith)의 ‘Under Mi Sleng Teng”에 쓰인 후 M.I.A. 부터 데이빗 보위(David Bowie)까지 다양한 이가 사용한 이 리딤은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때 자메이카의 ‘버전’ 문화는 매쉬업은 물론이고 리믹스까지 현대 음악 기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매쉬업이 지금처럼 활발해진 건 음악 제작과 소비의 상당수가 디지털로 넘어온 후의 일이다. 디제이늅이 “빠삐놈 병神 디스코 믹스”를 발표했던 때는 케이팝이 인터넷을 타고 해외 음악 팬들에도 조금씩 사랑받던 때다. 멕시코의 프로듀서 Masa는 그해부터 그해 유행한 케이팝을 모아 매쉬업 트랙을 발표했다. 2008년 발표한 ‘ADIOS 2008’에는 빅뱅의 ‘하루하루’부터 은지원의 ‘Adios’, 2pm의 ‘10점 만점에 10점’, 원더걸스의 ‘Nobody’, 아이유의 ‘미아’,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 등 19곡의 히트곡을 매쉬업에 한 곡으로 당시 유행한 케이팝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시리즈는 80곡을 모은 ‘HOT K-POP 2013’까지만 이어졌다. 유튜브에서 저작권 관리가 강화되던 시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ftsmKHvlvY
https://www.youtube.com/watch?v=lTx3G6h2xyA
음반 시장이 줄어들고 음원 시장과 함께 공연 시장이 커지며 일렉트로닉 음악가들 역시 자신의 무대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 많아졌다. 대형 EDM 페스티벌의 경우 무대장치나 화려한 비주얼의 VJ로 연주를 채울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일렉트로닉 음악가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에 맞춰 일렉트로닉 음악 공연 때 연주하는 미디 콘트롤러들이 연주할 때 보다 화려한 비주얼을 보여주게 됐다. 노베이션(Novation)의 런치패드(Launchpad)는 시퀀서에 미리 녹음된 클립을 연주할 수 있는 콘트롤러다. 8x8 64 개 + 8x2 16개 총 80개의 led가 내장된 패드는 곡에 맞춰 다양한 색으로 빛나며 일렉트로닉 음악 라이브를 돋보이게 한다. 이를 이용해 매쉬업 역시 라이브로 연주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서태지의 “christmalo.win” 리믹스 콘테스트 우승자인 TAK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2013년부터 “K-Pop Culture”라는 케이팝 매쉬업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이의 원조는 마데온(Madeon)의 “Pop Culture”다. 콜드플레이(Coldplay)의 “Viva La Vida”,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Around The world”, 마돈나(Madonna)의 “Hung up”,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 등 38개의 곡을 매쉬업한 “Pop Culture”는 마데온이 세계적인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더불어 해당 곡의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제공해 원곡의 관심도 함께 모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Y0xMbCp8t4s
https://www.youtube.com/watch?v=YkUVQ3pwIq8
전보다 이름 앞에 DJ를 붙인 이가 늘었다. 직접 머릿속으로 마디를 세고 모니터한 후 비트 매칭을 해야 하는 턴테이블 믹스에 비해 비트에 맞춰 곡을 분석하고 그리드를 맞춰 주는 최근 디제잉 장비의 발달은 많은 이가 디제잉을 시작할 수 있는 이유가 됐다. 장비의 발달도 발달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디제잉 할 때 쓸 음원을 구하기 쉬워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디제이들의 변별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디제잉은 장비가 알아서 해주고, 음원은 구하기 쉬우니 변별력을 찾으려면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J.E.B)는 매쉬업을 통해 한국에서 독보적인 디제이가 됐다. 본래 매쉬업이나 샘플링을 통해 곡을 만들던 요한 일렉트릭 바흐는 최근 파티에서 자신이 매쉬업한 곡을 플레이하는 디제잉으로 여러 SNS에 공유되며 화제를 모았다. 그가 만든 유튜브 채널은 지금도 매쉬업 트랙이 꾸준히 업데이트 되고 있는다. 피츠 & 더 탠트럼스의 히트곡 “Handclap”에 전국노래자랑에서 송해의 멘트와 주제곡을 매쉬업한 “전국 Handclap 자랑 (feat. Casino) (J.E.B Edit)”은 현재 재생수 190만을 넘기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누군가 1시간 반복버전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자이언 T의 ‘양화대교’와 디플로(Diplo)의 “Revolution”을 매쉬업하고 지드래곤의 “Crayon”과 “쿠데타”의 랩을 얹은 “화대교 Revolution (feat. G-Dragon) (J.E.B Sad Decent Mashup)”은 원곡을 떠나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 매쉬업도 하나의 예술 장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쉬운 건 여기서 소개한 곡 모두 저작권 문제로 지니에서는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유튜브에서 커버 곡을 불러 히트한 후 이를 바탕으로 커버 앨범을 발표한 제이플라(J.Fla)의 경우처럼 위 곡들도 많은 사랑을 받아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어 지니에서 들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