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 아니 양치기 임신부!
참 입덧이라는 게 뭔지. 임신부를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린다. 아기가 찾아오고 난 후 내 몸 구석구석 참 많이 바뀌고 있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듯 엄마의 탄생을 위한 이 시간, 내 몸은 참 바쁘게도 변해가고 있다.
못 먹겠다고 징징대다가 배고픈 건 또 못 참아서 뭐라도 먹고, 좀 잘 먹는다 싶다가 갑자기 변기 끌어안고 울게 하고, 다음 날엔 아무렇지 않게 먹기도 하고, 한참 먹고 싶다고 하다가도 '어머, 나 이거 못 먹겠어!' 등등.
지난주 다시 시작되었던 입덧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지난 금요일 마지막 구토를 끝으로 오래간만에 편안한 주말을 보냈다. 주말 아침엔 토스트 든든히 먹고, 처음 간 한인 식당에서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 뚝딱하고 (신랑이 놀래서 진짜 다 먹은 거냐고 확인했다. 임신 전에도 한 공기를 다 먹는 일은 드물었는데..!), 그동안 못 마셨던 물도 벌컥벌컥. 진짜 매번 입만 적시는 수준이었는데.. 무엇보다 반가웠던 물.
오락가락하는 몸 상태가 나 스스로도 좀 당황스럽고 진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기분이지만...
매번 먹는 얘기만 하는+오직 먹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지만...
어쨌든,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좋다.
두근두근 한국으로
지난 주말 시댁과의 통화. 아버님이 정색을 하시고는 거기서 왜 고생하고 있냐고 하신다. 본인 아들 혼자 둬도 되니 한국 들어와서 맛있는 거 먹고 친구 좀 만나고 가라며, 당장 들어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저도 가고 싶지요. 먹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사람도 많은 데 가고 싶지요...
그렇지만 입덧 중에 바닥인 체력으로 혼자 비행기 타는 게 걱정되고, 그 상태로 한국 가봐야 잘 먹지도 못할 것 같았다.
신랑이 고생하고 있는 거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신랑 혼자 두고 나 혼자 가서 편히 있다 온다는 게 좀 맘에 걸렸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거 보니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내 몸만 챙겨도 될 것 같은 이 시간에도 참 쉽지 않은 게 많다.
'나 진짜 한국 잠깐 갔다 와도 돼?'라고 신랑에게 물으니 그런 생각할 시간에 얼른 좀 다녀오라고.
그래서 진짜 간다! 추석 이후에 가기로 했던 일정을 보름 정도 당기기로 했다. 다음 한 달은 한국에서 있을 예정.
가서 먹고 싶은 거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못 들고 온 물건들 마저 챙기고, 컨디션 회복한 만큼 소중히 잘 보내고 와야겠다.
13주 내 마음
입덧은 확실히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소화불량, 목에 무언가 걸린 기분, 양치할 때의 구역질은 여전하다.
지난주쯤부터는 밤에 잠이 안 온다. 새벽 6시까지 깨어있기도 하고, 어제도 새벽 4시까지 말똥말똥. 게다가 어제는 눈 뜨고 가위눌린 기분이랄까. 무서웠다. 책 한 권 들고 밑줄도 그어가며 입으로 따라 읽어가며 어찌어찌 정신은 차렸다.
임신부한테 임신이란 참 복잡 미묘한 일이라서 정신적&신체적인 변화를 감당하기가 벅찰 때가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한꺼번에 다가오며, 아직은 태동이나 태아와의 교감이 없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버텨내야만 하는 이 시간이 참 얄미울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잠을 철치고, 자꾸 쫓기고 도망가고 탈출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익숙해지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겠지 :)
행복아.
지금은 얼마나 더 컸으려나.
가끔 다리가 저리고 머리가 띵-해질 때마다 그만큼 너가 잘 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너와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엄마인데 너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으니 너무 궁금하네.
빨리 너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되길 :)
힘이 없던 몇 주 전과는 다르게 요즘엔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서, 움직이는 힘도 생각하는 힘도 점점 살아나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그동안 조금 소홀했던 태교를 해볼까 해.
올바른 생각을 하고 올바른 태도로 예쁜 것을 보며 좋은 음악을 듣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하면서 지내볼게. 너도 좋아할 거라 믿으며.
늘 같은 마음이지만 건강하게 남은 시간 잘 커 주렴.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게.
/201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