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긍정을 넘어선 초월적 태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많은 걸 배웠고 그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잃고 헤매고 있는 시대이다.
방향감각의 상실, 이것은 모든 세대가 앓고 있는 병명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니체가, 아니 모든 철학자가 처했던 상황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철학이라는 사유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무엇인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면, 니체에게 있어서 그 불편함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 불편함 뿐만 아니라 불편함을 담고 있던 세상 자체가 사라졌을 때, 바로 여기서 그의 위대한 사유가 시작된 것이다.
기존의 삶을 이끌던 이정표가 사라졌다는 것은 사실상 절망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제 이정표를 따라오던 모든 인간들은 목표가 사라진 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목적의식 없이 그저 걷기만 하다 그렇게 인간은 더욱더 나락으로 빠질 것이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이는 위기이자 또 다른 기회였다. 여태껏 인간들이 의지하고 믿어왔던 그 이정표는 우리에게 거짓된 방향만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실을 벗어난 새로운 이상향을 향한 도정, 그리고 그러한 길을 이끄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지는 결코 인간을 강하게 만들 수 없다. 즉, 세계는 그저 생성 소멸하는 하나의 세계뿐이라는 것을 부정하던 기존의 철학과 종교는 인간이 진정으로 강인해지기 위해서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절망과 좌절에 빠진 인간들을 지탱하던 종교와 철학은 이제 그 의미를 바랬다. 그렇게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더욱더 나약하게 묶어오던 기존의 사슬을 끊어버린 것이며, 나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것을 외치는 인간의 투쟁적인 선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인간이 감정뿐만 아니라 이성을 지닌 존재라고 배워왔다. 동물과는 구분되는 이러한 특징이 지금까지 인간을 발전하게 해온 근원이었다. 냉철한 사고력, 합리적인 판단을 근거로 인간은 끊임없이 지식을 확장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충동에 이끌리는 존재이다. 니체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위대함을 드려내려는 그 근본적인 힘, 바로 이 '힘에의 의지'가 우리의 '이성'보다도 더 근원적으로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다.
"강한 자는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지상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사랑하는 자이다."
(p. 60)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은, 자신의 발로 기꺼이 걸을 수 있다.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한 이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그 어느 것도 아닌 오직 자신에게 의지하는 고독한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이 세계는 아름다운으로 충만한 곳으로 보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긍정할 수 있을까? 이 현실을, 때론 고통만이 가득한 것 같은 이 빌어먹을 삶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가 다시 한 번, 아니 내 삶에서 영원히 반복된다 할지라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니체가 묻는 것은 단순한 긍정이 아닌 긍정을 넘어선 삶에 대한 초월이다. 고통과 기쁨, 그 경계를 넘어서 이를 수반하는 삶 자체를 사랑할 수 있는지를 니체는 묻고 있다.
당신은 가능합니까?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1. 본글은 책 "니체를 읽는다"(박찬국 지음, 아카넷 출판사)를 읽고 쓰여진 글 입니다.
2. 또한 아카넷 '필담' 서포터즈 활동의 일부로써 쓰여진 글이며 아래의 주소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phildam.net/codeigniter/board/view/139
3.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riedrich_Nietz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