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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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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쑤 Jul 25. 2017

고사리: 석탄을 위한 리마인더

장마철인 요즈음의 우중충한 일요일, 저녁을 준비하는 남편 옆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틀어놓고는 건성으로 듣던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의심, 근심, 욕심 이렇게 3가지 심이 사람을 힘들고 병들게 한다고 하면서, 의심은 호기심으로, 근심은 관심으로, 욕심은 동심으로 바꿔보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은 이 짧은 멘트가 그 새 기억에서 사라져서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 주철환의 <다시 쓰는 청춘예찬>이라는 책에 나온 글귀라고 한다.


그러게 사람들이 말야, 뭘 그렇게 걱정하고 탐을 내는 거야, 라고 하려다가 불현듯, 어머 나도? 하는 생각이 이불킥처럼 차고 들어온다. 음... 그러고보니 나도 그렇네.


예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였는지 신문 기사에서였는지, 중산층의 기준에 대해 본 기억이 난다. 한국과 서구의 다른 나라들을 비교한 내용이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이란 부채 없는 30평 아파트와 2000cc 이상의 자동차, 월500만원 이상의 급여, 1억 이상의 금융자산, 연 1회 이상의 해외여행 등등이었다. 반면, 서구나라 사람들이 보는 중산층의 기준은 참 달랐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보는 중산층이란 식탁 위에 놓인 시사평론지, 외국어 구사, 스포츠 활동과 악기 연주, 즐기는 요리, 사회적 공감, 약자를 돌보는 봉사활동 등이었다. 무턱대고 서구나라들을 높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고할까, 참 인상적이었고, 이런 부분에서는 그네들이 조금 더 성숙하고 풍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주철환이 말한 앞부분의 3형제는 한국에 가깝고, 뒷부분의 3형제는 서구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멍 때리는 일요일 저녁에 의도치 않게 이렇게 나를 까발리는 듯한 텁텁한 생각들을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부엌 창틀에 놓인 고사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집에는 고사리과의 식물이 4가지가 있는데, 부엌 창틀의 북향 햇살로 사는 3형제는 후마타고사리, 더피고사리, 보스톤고사리이고,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에 가려지기 일쑤인 안방 창가의 남향 햇살로 사는 것은 아비스이다.

고사리 중에서 우리집에 제일 처음 온 후마타고사리는, 사실 내가 예전에 자주 식물을 사던 이수역 근처의 노점상 아저씨가 ‘써비스’라며 그냥 준 것이다. 제대로 된 것이어도 삼천원 정도 했을 저렴한 식물이었지만 아저씨가 준 후마타는 그때 내게 주지 않았으면 며칠 못 가 쓰레기통에 던져지지 않았을까 싶게 시들시들한 아이였다. 그랬던 것이 부엌 창틀에서 이년째 이렇게 탱탱하게 잘 살고 있다. 주먹 한덩어리가 될까 싶은 크기에 싱싱한 이파리가 몇 개 없던 아이가 서서히 생기를 찾고 성장하면서 몸집을 부풀려가기 시작하고 고양이가 털복숭이 발을 내밀 듯 뿌리줄기를 스물스물 내어놓는 모습이 기특하고 예쁘다.


저 쬐그만 고사리들이, 저 먼 옛날 공룡 살던 시절에는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하고 지금 우리가 쓰는 석탄이 그 고사리들의 화석이라고 하니 잘 연결이 안 되긴 한다. 우리가 보통 보는 지도가 실제 거리를 아주 많이 축척해 놓은 일종의 미니어처인 것처럼, 지금 내가 보는 고사리가 멀고 먼 옛날에 살던 거대한 고사리의 백만분의 일 정도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싶다. 지금 나의 고사리가 집에서 키우는 귀여운 마르티즈 새끼강아지 같다면, 옛날에 있었다는 거대한 고사리는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무지막지하게 큰 공룡 같달까.

고사리를 보면서 조금은 생뚱맞게도 석탄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최근에 읽은 멋진 책의 영향일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의 편집국장 앨런 러스브리저가 쓴 <다시, 피아노>라는 책인데, 600페이지에달하는 빽빽한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술술 재미있게 탐독했다. 그 중, 한 부분을 인용한다.




언젠가 읽었던 카를 융의 글 한토막이 내 안에 꿈틀대고 있던 이물감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다. 그의 설명을 대강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사회적’ 성공을 경험한다. 즉 아이들을 낳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을 획득하며, 어쩌면 명망을 얻기도 하고 각자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그럭저럭 유명세를 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각자가 가진 개성을 억눌러야만 사회생활에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간과’한다. ‘이미 경험했어야 할 인생의 수많은 면들이 흐릿한 기억과 함께 뒤섞여 헛간에 방치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희망을 접긴 이르다. 때로는 이러한 기억들이 ‘회색 잿더미 아래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는 석탄 조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융은 이러한 '타오르는 석탄 조각’을 끄집어내서 뭔가를 해볼 수있는 기회가 허락되는 것이 바로 중년 이후의 세월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장수가 그들 종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라면 과연 사람이 태어나서 일흔, 여든까지 사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생의 오후에 해당하는 시기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시기여야 한다. 그저 인생의 오전에 들러붙은 처량한 부속물 정도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며, 자식을 생산하고 돌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오전을 보낸다. 이것이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 삶의 오후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오전을 지배했던 자연의 법칙이 각자의 영혼에 일정 정도 피해를 입혔음을 깨닫는다. 사회에 나가 돈을 벌고 가족을 꾸려 자녀를 기르는 일은 오직 자연법칙에 따른 일이며, 그것 자체를 문화라고부를 순 없다. 문화는 자연의 섭리를 넘어 존재한다. 어쩌면 문화는 인생의 하반기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앨런 러스브리저 <다시, 피아노>, 15페이지



아, 인생의 오후라.


나야말로 인생의 오후를 “그저 인생의 오전에 들러붙은 처량한 부속물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인생의 오후를 별 탈 없이 버티다가 잘 죽으려면 최소한 얼마얼마를 벌어놓아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100세 시대라고들 하니, 늙어서 잘 먹고 잘 살려면 얼른 전세자금 대출을 다 갚고 나서 집을 장만해야 하고 연금도 넉넉히 들어놔야 하고 현금도 얼마 정도는 모아놓아야 하겠고 기타등등 늘그막을 버틸 수 있게 할 ‘돈’만 생각하고 있었다. 얼추 인생의 중반을 찍고 후반부로 진입하려는 정확히 이 지점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나쁜 마음 3형제에 둘러싸이고 한국의 중산층 기준이라는 박스 안에 갇혀 있었나보다. 그런데 인생의 오후를 이런 각도에서, 이런 의미로 생각하다니…!


묵묵히 부엌 창틀을 지켜준 고사리의 덕분인지, 내 귀에 들린 라디오진행자의 멘트 덕분인지, 우연히 눈에 들어 읽게 된 책의 덕분인지, 새삼 내 생활을 돌아다보게 되었다. 내게 성큼 다가오고 있는 인생의 오후를 노려보면서 앞으로 얼마를 더 벌고 얼마를 더 모아놔야 노후를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할 게 아니라, 앨런 러스브리저가 카를 융의 말을 빌어얘기한 것처럼 인생의 오후에라야만이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가까이할 궁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잖는가. 며칠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내 주변의 잿더미를 좀 걷어내고 들쑤셔보니 그래도 내게 아직 숨쉬고 있는 석탄조각들이 좀 있는 것 같다.


당장 비올라부터 꺼냈다. 지난 연말 이후 벌써 여덟 달 정도는 벽장 속에 방치해놨었던 것을 다시 꺼냈다. 오, 내 비올라 소리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곡을 연주한 것도 아니고 그냥 도레미파솔라시도만 했는데도 좋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인지라 이웃집에서 민원이 들어올까봐 더 오래 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이웃은 진저리칠 소리일지언정 나는 좋았다. 내가 프로 연주자가 아니라참 다행이고 또 참 감사하기도 한 일이다. 나는 평가받기 위해 혹은 완벽하기 위해 악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나 좋자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또, 한동안 물주기에만 급급했던 집안의 식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렸다. 율마가 그새 얼마나 자랐나 키도 재보고, 봄여름을지나면서 무성해진 로즈마리에 코도 쳐박아보고, 이 베이비들을 다 어찌할꼬 싶게 개체수가 엄청 늘어난 필레아도 살펴보고, 살아는 있는데 얼음땡한 것 같은 블루애로우와 문그로우가 그래도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매의 눈으로 훑어보고, 봄에 삽목한 후 연착륙한 것 같은 코로키아에게 잘 자라라, 한 마디 해주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베란다로 한번 들어서면 즐겁게 분주하고 시간도 후딱 가버린다. 베란다에서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안방으로 들어와 안방창가를 지키는 또다른고사리과 식물 아비스를 보았다. 나의 시들해진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비스는 여전히 꼬물대는 아기 주먹같은 새끼잎파리가 꼼지락대면서 솟아나고 있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때는 펼쳐진 잎의 너비가 내 손바닥 정도였던것 같은데, 이제는 두 팔로 둥그렇게 원을 만들면 나오는 너비 정도가 되었다. 아름다운 무용가가 펼친 팔이나 다리 같다. 그리고 부엌 창틀의 고사리 3형제. 한쪽의 후마타고사리는 우리가 보통 먹는 고사리 나물 같은 갈색 새끼잎이 파마한 것처럼 나왔다가 이내 짙은 청록색으로 탱탱하니 잎이 펼쳐지고 잎파리 아래 흙 부근에서는 고양이 발 같은 뿌리줄기들이 스물스물 뻗치고 있다. 또다른 한쪽의 보스톤고사리와 더피고사리는 연두색 잎이 하늘거리는 듯 힘있는 듯 앞서거니뒷서거니 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식물을 보살피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의 공통점은 어쩌면 참으로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 식물에게는 물과 바람과 햇빛이 꾸준히 필요하고, 악기 연주에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단순한 반복이 지속되어야 아름다운 수형도 나오고 아름다운 음악도 나오는데, 그런 지향점에만 가치를 둔다면 식물가꾸기나 악기연주는 지루한 노동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향점을 향해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을 즐긴다면 식물가꾸기와 악기연주는 아주 커다란 즐거움이 된다. 역시 두 가지 모두 스스로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부엌창틀에 고사리 3형제를 계속 두고 가꾸면서, 앞으로도 내 안의 석탄조각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어리석은 인간이 다시금 나쁜 마음 3형제에 둘러싸이고 잿더미를 뒤집어쓸 때, 나의 고사리들은 내게 잊혀질랑말랑한,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즐거움들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고사리를 볼 때마다 내 안의 살아있는 석탄불씨들을 잊지 않고 잘 보듬는다면, 인생의 오후야 어서 와라, 싶어질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리하여 식물은 역시 행복 리마인더인 것이다.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 프로필:

(후마타고사리에 대해서 쓰지만 다른 고사리 종류 식물들도 대체로 비슷할것이라는 생각임)


국내 유통명: 후마타고사리 혹은 넉줄고사리

학명: Davallia mariesii

영명: Squirrel's foot fern

생물학적 분류: 양치식물문 양치식물강 고사리목 넉줄고사리과의 여러해살이풀

원산지:  한국·일본·타이완·중국 등지


햇빛:

우리집 부엌 창은 북향으로 나 있어서 햇빛이 그냥 대낮이면 조금 훤한 수준이다.그러나 고사리는 이런 감질나는 햇빛에도 잘 살아가는 것 같으니, 집 안에서 식물을 가꾸고자하는 도시인들에게는 얼마나 감사한 생명력인지 모른다.


바람:

햇빛 타령을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 타령도 그리 하지 않는 것 같다. 베란다의경우, 베란다에 사는 식물들 생각에 사시사철 창문을 열어놓는 반면, 부엌창문은 대체로 닫아두고 사는데 고사리가 살아가는 데에 별 탈 없는 것 같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생명력인지.


물주기:

고사리는 흙은 건조한 듯, 잎파리는 촉촉한 듯 키우라는 글을 본 적이있다. 그래서 분무기로 잎파리를 적셔주면 좋다고 한다. 그런데나는 일부러 분무질을 하지는 않고 흙색깔이 말라보인다 싶으면 물을 주고, 물을 주면서 잎파리도 샤워시킨다. 부엌 개수대 위의 창틀에 고사리가 사는 고로 물을 개수대에서 주고, 개수대의수도꼭지가 샤워기인 고로 고사리 잎파리도 샤워를 한다. 햇빛이며 바람이며 물이며를 생각할 때, 부엌에 창문이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고사리 자리라고 생각한다.


내한성/월동:

추위에 약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 실내에 식물을 두고 싶어도 햇빛 여건 상 못 그러는 경우가 많은데 고사리는 실내에서 키워도 적당한 식물이니굳이 내한성을 걱정할 필요 없이 그냥 쭉 집안에 두고 키우면 어떨까 한다.


성장:

쑥쑥 자라나는 편은 아니지만, 어느새 들여다보면 한결 풍성해져 있는편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고사리는 대체로 고만고만한 키를 유지하면서 옆으로 몸집을 불리는 것 같다. 다음에 분갈이를 하게 되면 좀 넓은 화분으로 옮겨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번식:

포자로 번식한다는 글을 봤는데, 그 의미를 잘 모르겠어서 이 부분은통과하는 것으로.


매력포인트:

징그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처음부터 애정이 솟구치진 않았지만, 스물스물기어나오는 솜털 송송한 뿌리줄기가 매력포인트라고 하겠다. 얌체고양이가 슬쩍 발을 내밀 듯 줄기가 기어나오고그 솜털 속에서 꼬물꼬물 새끼잎파리가 파마머리를 하고 솟아난다.


유의사항:

고사리는 독성이 있어서 날 것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초식동물들은그래서 고사리풀은 뜯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고사리를 날 것으로 뜯어먹을 일은 없겠지만, 고사리 잎파리를 만지작거리고 나면 손을 씻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다. 일전에 시든 잎파리를 좀 떼어낸다고 고사리를 만진 후에 그 손으로 다리를 긁었는데, 풀독이 오른 듯 벌겋게 달아오른 적이 있어서 엄청 긁어대고 물파스를 바르고 하다가 뜨거운 물로 박박 씻어낸후에야 가라앉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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