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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19. 2019

[단편소설] 그 노인의 노래 (2)

그 노인의 노래 (2)


강력 5팀 김 경감은 뒤적거리던 진술서 뭉치를 책상 위로 내던졌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켰다.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탓에 훤히 드러난 이마에서 굵은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이건 가욋일이다. 21년 경찰 생활의 직감이 속삭였다. 들소 같은 흉악범들을 쫓는데도 시간이 모자란 판국에 저 혼자 자빠진 늙은 당나귀 같은 노인이라니. 그는 문득 21년간 목격한 인간의 야만성을 떠올렸다. 인간의 야만성은 그에게 새삼스러운 속성이 아니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짓을 끝도 없이 반복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노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짧지 않은 경찰 생활을 통해 똑똑히 배웠다. 성자의 얼굴을 하고도 악마 같은 짓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임을.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해 노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노인은 부엌에 시신 두 구와 함께 마네킹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곁에서 날 길이 21cm의 피 묻은 식칼을 주웠다. 손잡이를 조사해보니 노인의 오른손 지문이 어지럽게, 그러나 선명하게 채취됐다. 노인은 현장 검거 직후 자백했다. 잡아야 할 범인도 밝혀내야 할 사실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사건. 경찰은 별다른 추가 조사 없이 현장에서 철수했다. 김 경감은 노인의 지문을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했다. 음주운전 기록조차 없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은 그 흔한 음주운전 한 번 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두 사람을 한꺼번에 살인할 수 있는 존재니까.


팀장님, 하는 박 순경의 소리에 김 경감은 귀찮은 듯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거 그거죠? 간병살인. 죽은 할머니가 알츠하이머였다고 하니… 일본에서는 매주 한 건꼴, 우리나라도 요샌 한 달에 한 건씩 일어난다던데. 팀 막내인 박 순경은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의욕이 넘쳤다. 박 순경에겐 이번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 조사를 시켰다. 아들과 며느리 중 그나마 아들 쪽이 경황이 있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아버지는 서울의 한 사범대를 졸업하고 수학 교사로 40년 가까이 일했다. 퇴직 후엔 그간 자식과 집을 보살펴 온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위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손주도 돌봤다. 그리고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정확한 단어 대신 이거저거 하는 식의 대명사를 썼다. 평생 대중교통만 타던 사람이 버스나 지하철을 피하고 택시를 선호했다. 다행히 하루의 절반 정도는 정상이었다. 특히 낮 시간대엔 멀쩡했다. 아버지는 아들 내외에게 병간호는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이후 아버지는 밤마다 홀로 어머니를 돌봤다. 가끔 집을 찾으면 늘 세탁기나 청소기와 한창 씨름 중이었다. 퇴직 교사 모임 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했던 아버지는 외부활동도 딱 끊고, 즐기던 술도 뚝 끊었다. 문제는 손주까지 내치려 했다는 데 있었다. 아버지는 자꾸만 간병에 방해되니 손주는 인제 그만 데려오라고 했다. 아들 내외가 사정해도 아버지의 고집은 꽉 잠긴 수도꼭지처럼 완고했다. 그때마다 수도꼭지를 연 건 어머니였다. 정신이 멀쩡한 시간대에 어머니는 왜 애들한테 그러냐며 아버지를 타박하고는 손주를 건네받았다. 비극의 징후는 얼마 전부터 감지됐다. 어머니의 증세가 심상치 않았다. 아들 내외가 밤에 전화할 때면 수화기 건너에서 생전 처음 듣는 여자의 고성이 들리곤 했다. 가끔 욕설도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며느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오열과 혼절을 반복했다. 한 마디. 아들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는 말만 했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사건. 시간을 많이 들일 일이 아니었다. 김 경감은 입맛을 다시며 현장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피가 어지럽게 흩뿌려진 부엌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내의 사인은 왼쪽 손목의 요골동맥 절단. 손목 안쪽을 칼로 거의 내리찍다시피 한 흔적이 두 군데 있었다. 요골동맥은 제대로 절단 시 30초 이내에 의식을 잃게 된다. 사망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압력이 강한 동맥은 그동안 터진 소화전처럼 피를 강하게 뿜어낸다. 문제는 손목 깊은 곳에 있는 요골동맥을 제대로 절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칼로 슬쩍 그어선 어림없는 일. 범행도구로 식칼이 쓰인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흡사 도끼로 찍은 듯한 상처에 남은 깊은 적의와 환멸은 다소 낯설었다. 알몸이었던 갓난아이의 시신은 더욱 참혹했다. 사인은 오른쪽 다리의 대퇴동맥 절단. 다리가 허벅지부터 엉덩이까지 잘려나가다시피 했다. 사인과 별도로 몸 여기저기 작은 도흔(刀痕)이 많았다. 역시 식칼은 쓴 흔적이었다. 간병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보통 목을 조른다. 신체적으로 약한 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살인 사건과 달리 식칼 같은 흉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식칼을 들었다는 건 분노가 표출됐다는 건데… 노인네, 동네에서 유명한 잉꼬부부였다더니 실은 속에 쌓인 게 많았었나. 김 경감은 눈을 감고 노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조사 내내 어떤 질문을 던져도 반복 재생되는 녹음 파일처럼 세 마디 문장만 되풀이하던 목소리를. 제가 죽였습니다.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김 경감은 입감된 노인을 보러 유치장으로 갔다. 담당 경찰이 보관 중이던 노인의 스마트폰부터 건네받았다. 스마트폰 액정을 켜자 사건의 피해자와 피의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결혼 40주년. 사는 내내 잊지 말아요. 나는 항상 당신 편이야. 휴대폰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아 액정이 어두웠다. 사진에 그늘이 드리웠다. 철창 안을 힐끗 보니 노인은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었다. 계속 저러고 있어? 특이사항은 없었고? 담당 경찰은 하품을 간신히 참으며 대답했다. 네, 계속 저러고 있고… 참, 면회 한 번 했습니다. 면회? 네, 친척이라는데 어른들 대신해서 왔대요. 서른 살인가 그랬고 남자였구요. 특별한 얘긴 없었습니다. 녹취록을 요청해 들여다봤다. 또 그 세 마디 문장이었다. 내가 죽였다. 그만하고 싶었다. 기억 안 난다. 뭐야, 이 새끼야. 무슨 하이쿠(俳句) 쓰냐? 왜 이렇게 대충 썼어? 범행동기 관련 발언이나 그런 거 없었어? 담당 경찰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부렸다. 아시잖아요, 팀장님. 직접 심문도 하셨으면서… 수수께끼 같은 녹취록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브리핑을 위한 보도자료도 쓰고 현장검증도 준비해야 하는데 피의자의 직접 진술이 부족했다. 증거와 자백은 확실했지만 범행동기가 모호했다. 별다른 사냥도 필요 없는, 저 혼자 자빠진 늙은 당나귀. 빨리 끌고 가 처리할 요량이었는데 예상외로 다리에 힘을 딱 준 채 버티는 격이었다.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 속 ‘23:17’이란 숫자가 시한폭탄에 부착된 타이머처럼 붉게 일렁였다. 남은 시간은 내일 일요일 하루. 김 경감은 일단 있는 내용으로 보도자료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유치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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