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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26. 2019

[단편소설] 그 노인의 사정 (5)

그 노인의 사정 (5)


내가 똑똑히 봤다니께! 배뿐만이 아녀. 팔뚝이랑 등짝, 심지어 손등에도 칼자국이 있더라고. 김 영감은 초선의 몸에서 봤다는 도흔(刀痕)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놨다. 어머... 정말요? 또 뭐 특별한 건 없었어요? 복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김 영감은 이마에 굵은 주름을 잡고는 신이 나 이야기를 풀어갔다. 듣고 보니 초선은 여러모로 수상한 여자였다. 옷 속에 감춰져 있는 칼자국뿐만이 아니었다. 압권은 초선이 관계 중 하혈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김 영감은 관계 중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눈을 감고 그 느낌을 즐기다가 어디선가 비릿한 피 냄새가 나 눈을 떴는데, 몸과 침대 일부를 적신 피가 보여 놀라 자빠질 뻔했다고 했다. 어머, 멘스 아니에요? 김 영감이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여, 나도 물어봤지. 그런데 멘스할 때는 아니라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하던데... 


흥이 다 깨지셨겠어요. 김 영감은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선의 정성과 서비스에 그녀가 하혈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을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요? 순간 주름이 골골이 팬 김 영감의 얼굴에 생기가 붉게 돋아났다. 그것이... 말을 잇지 못하는 김 영감을 재촉했다. 그것이 참 말하기 민망헌디... 2만원만 더 얹어주면 두 번을 해주겠다고 하더라구. 첫 번째엔 입으로, 그것도 삼켜주겠다면서... 복희는 귀를 씻고 싶었다. 그게 내 단골을 하나둘 빼앗아 포섭한 비결이었나. 질려버릴 정도의 가격 후려치기였다. 영감님, 근데 그 연세에 두 번이 되세요? 그게 되더라니께! 세상에 초선이가 어떻게 그걸 세우냐면... 복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김 영감의 이야기를 억지로 귓가에 주워 담았다.


김 영감의 말에 따르면 초선은 51세의 중국동포로 6년 전 중국 지린성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대림동에 살고 한국인 남편도 있단다. 원래 직업은 모텔 청소부. 최근엔 돈이 급한 사정이 생겨 종로3가 거리에 나왔다고 하는데, 그 주장의 진위야 알 수 없는 법. 칼자국에, 하혈에, 신들린 듯한 기술... 도대체 정체가 뭘까 싶었다. 그 외에 또 뭐 특별한 건 없었어요? 김 영감은 팔짱을 낀 채 한참 끙 하는 신음을 내다가 갑자기 깜빡했던 약속이 떠오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게 말여, 최근 초선을 가장 자주 만났던 영감 둘 중 하나는 풍이 오고 하나는 죽었더라고. 복희는 귀가 번쩍 뜨였다. 두 명이나요? 김 영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복희는 튼튼한 실에 구슬 여러 개가 또르르 꿰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영감님, 우리나라 들어온 조선족 중이 장기밀매나 인육 거래 하는 사람들 많다는 소리 들어보셨죠? 김 영감이 대답 없이 눈을 끔뻑거렸다. 초선... 걔 혹시 그런 범죄조직 사람 아니에요? 


설마 그러겠냐고 펄쩍 뛰면서도 김 영감의 얼굴은 서서히 퍼렇게 질려갔다. 김 영감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런데 그 칼자국은 한 번 물어볼 걸 그랬구먼. 생각해보니 좀 섬뜩하긴 하네그려... 그러게요. 왜 안 물어보셨어요? 김 영감은 상처가 대단히 크거나 하지 않았고 대부분 다 아문 흉터라 그저 사연이 있겠거니 했다고 했다. 칼자국이 생긴 이유야 상관없었다. 복희는 아까부터 머릿속에 떠돌던 단어들을 김 영감의 머릿속에 주입했다. 영감님, 들어보세요. 칼자국, 하혈, 신들린 기술, 풍 오거나 돌아가신 친구분들… 귀를 기울이는 김 영감에게 잘 꿰어낸 구슬 꾸러미를 건네듯 말했다. 분명 범죄조직이에요. 주변 친구분들에게 초선이 조선족 범죄조직의 일원 같다고, 위험한 여자라고 소문 좀 내주세요. 까딱 잘못 건드렸다간 황천 가는 날 빨라진다고. 네? 김 영감의 시선이 요동치며 복희의 얼굴을 더듬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영감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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