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나 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하려고 마음먹고 미리 연습도 했건만 결국 엄마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요즘 역세권보다 더 중요한 게 친세권이라더니 친정이 가깝지 않았다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원래는 8시에 맡기고 출근을 하려고 했는데 적응을 위해 8시 반쯤에 어린이집에 갔더니 3명 정도는 있다는 원장 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신발장이 텅텅 비어있었다.
선생님 손을 잡고 빈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친구들이 올 때까지 혼자서 텅 빈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을 아이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엄마손을 빌리기로 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우리 엄마는 아침잠이 많아 내 도시락도 싸주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손자 등원을 위해 그 아침에 우리 집까지 온다니 내리사랑이 이런 것인가 새삼 놀라고 있다.
오랜만에 출근한 회사 책상은 너무나도 낯설고 깔아야 하는 프로그램은 어찌나 꼬릴 무는지 처음 일주일 내내 업무를 위한 컴퓨터 세팅에만 시간을 보냈다.
전화를 받는 것도 컴퓨터 입력을 하는 것도 2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서 다시 하다 보니 영 어설프고 어렵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밥을 먹을 때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과 그래도 나름은 꾸미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육아휴직 기간 얼마나 대충하고 다녔는지 옆집 아주머니도 단골 튀김집 아저씨도 화장한 내 모습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아이의 엄마라는 내 모습도 직급으로 불리는 회사의 나도 너무나 소중하다.
아직은 근무가 어설픈 시기라 스스로가 답답하지만 소위 워라벨이 균형을 맞추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 믿는다. 결혼하기 전에 보던 워킹맘 선배들이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보내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집으로 출근하는 것이 살짝 버겁지만 이 삶도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