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의 시간들을 건너는 마음가짐
육아휴직을 들어가는 타이밍과 그 시간을 보내는 태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흔히 '기관에 보낸다'라고 하는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시절에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것은 여러모로 인생에서의 의미가 크다.
갓난 아기 때의 부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닦아주는 '생육' 활동으로 바쁘다. 당연히 그 모든 시중은 육아휴직 중인 아빠 혹은 엄마의 몫이다. 아무리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해도 자신의 인생이랄 게 별로 없는 한 해를 보낸다. 수시로 울어대고 기어다니는 아이 뒤를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매일 매일 숨이 턱 밑에 차오르니까.
반면 아이가 보육시설에 등원할 수 있게 된다면 모든 것이 바뀐다. 특히나 맞벌이 가정에서 육아휴직을 선택했다면 아이가 등원한 그 시간 만큼은 오롯이 휴직자의 몫으로 주어진다.
육아휴직 첫 날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마주한 그 고요함의 여운을 꽤 한참 동안 잊기 어려웠다. 휴일을 보낸 집 안은 아들의 장난감과 옷가지, 설겆이 거리로 난장판이었지만, 나는 홍차를 끓일 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린 후 소파에 가만히 앉아 오감을 곧추세워 그 고요함을 한참 동안 느꼈다. 아내도 아들도 없는 집 안의 공간과 시간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었다.
티백 위에 찻물을 따랐다. 집 안이 조용해서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쪼르르 흐르는 물줄기는 티백을 적시며 홍차를 우러내었다. 우러난 홍차는 어지러운 모양새로 맑은 물 속에 섞여 들어 이내 찻잔 속을 주홍빛으로 물들여 갔다.
강물이나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는 걸 '물멍'이라고 한다더라. 마흔이 넘게 산 지난 시간은 어찌보면 삶의 모든 중요한 순간을 물 위에 흘려보내듯 '물멍'하는 인생이었다. 순간의 필요에 맞춰 행동하니 시간의 흐름을 타고 어쩌다 여기쯤 다다랐다. 부족한 것은 없지만 걱정없이 넉넉하지도 않다. 같은 나이의 누구 누구가 뭐가 됐다더라는 뉴스를 보며 부러워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나의 자리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애매하게 흘러왔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인생이었다.
아빠가 되는 것도 그랬다.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매일 자정을 넘겨 퇴근했고 아내는 과로로 인한 안면마비로 신경과 약을 먹던 때였다.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이 하나를 갖기 위해 병원을 들락거리는 부부들처럼 많은 공을 들인 것도 아니었다. 조금 있으면 아이는 잘 태어나겠거니 하는 근거 없는 믿음 속에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았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아무 노력 없이 멍하니 기다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흐르는 시간에 조바심이 생겨 어떻게 하면 '아빠가 되는 것'인지 아등바등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갔다. 그렇지만 그것을 깨달은 후에도, 손을 뻗어 시간의 뒷머리채를 잡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제는 어제의 기억 속에 닫아 넣었고 그날은 그 하루를 살아야 했고 내일은 내일 다시 맞이해야 했다.
육아휴직의 그 첫 날 아침, 찻잔을 앞에 두고 식탁에 앉았다. 한 모금 마시려니, 그렇게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이 마치 홍차 우러나듯 머릿속에서 빠져나와 찻잔 속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찻잔 속은 이미 농후한 갈빛이었다. 만약 인생이 잎이 돋아나서 녹음을 피우다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나'라는 마흔 세살 남자의 그 날 아침은 홍차 같은 갈빛으로 물든 낙엽의 시각인 것만 같았다. 흠칫 깨닫고 보니 그 모든 시간은 뭉텅이로 저만치 멀어져 있다. 그러는 동안 아들은 자랐고 나는 아이에게 저절로 아빠가 되어 있었다.
그 시간들이 아쉬운 마음도, 어찌 해보려는 마음도 아니었다.
다만 그저 '나'라는 낙엽이 파리해져 떨어질 겨울이 이제 곧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겨울은 지금 이대로 맞이해도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절로 아빠가 됐으니 이제 저절로 학부모가 되고, 다시 저절로 노인이 되어 인생의 낙엽을 떨구어도 괜찮은걸까. 겨울이 지나고 솟을 새순인 아들에게 '네 아빠는 저절로 이렇게 낙엽이 되어 이제 떨어지려는 찰나란다'라고 얘기해도 괜찮은걸까.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래 우린 탓인지 끝맛이 떫었다.
출산의 처음 몇 해는 '육아 기술자'로 트레이닝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먹고, 자고, 씻을 수 없는 아기를 돌보는 일들은 충분히 어려웠다. 하지만 만약 돈이 충분했다면 나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아들은 미숙하나마 스스로의 생활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아들의 시간을 어떻게 함께 해야 하는걸까. 그 고민을 하지 못한 채 나는 여기까지 왔다.
부모의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를 잘 먹이고 잘 가르치는 것일까. 아이를 내버려 두어 손가락질 받는 부모가 잊을만 하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먹이고 가르치는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일은 결단코 보통의 일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책임을 다하셨다. IMF니 뭐니 하던 어려운 시절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책임감으로 별 탈 없이 건너왔다. 어려운 살림살이였지만 자식이 살림 걱정 하지 않도록, 먹고 배우는 것에 소홀하지 않도록 해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굳건한 책임감 덕택에 스스로의 치열함 없이도 여기까지 저절로 왔다. 세상 풍파로부터 지켜준 방파제 같은 부모님의 '책임감'이라는 그 소중한 유산 위에 나는 상처없이 서 있다.
이제 아빠가 된 나는 아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어야 할까. 아들이 아빠가 되었을 때 어디에 발 딛고 서 있어야 부모로써의 나의 시간이 의미있었다 할 수 있을까. 책임감이라는 부모님의 유산을 아들에게 그대로 내려줄 수도 있다. 아마 그것조차, 제대로, 잘 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절로 여기까지 온 내게 그것은 여전히 무임승차 같은 일이었다. 다시 저절로, 흘러가는 대로 아빠가 되는 일은 가당치 않았다. 몸은 가벼울지 몰라도 마음은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성경의 어느 구절에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뒤 한참동안 불리지 않고 있다가 다시 그대로 원금을 갖다 바치는 하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받은 돈을 불리지 않은 하인은 시간과 노력을 방기한 죄로 벌을 받는다. 아버지 어머니가 긴 시간을 통해 전해준 소중한 유산을, 불리지 못한 채 아들에게 그대로 건네는 것은 나에게 그런 의미 같았다.
찻잔에 데운 물을 조금 더 부었다. 갈빛으로 진했던 찻잔 안에 작은 맴돌이가 일었다. 홍차의 빛깔은 주홍빛으로 옅어져 갔다.
저절로 살았던 지난 시간을 엎고,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살아내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잎자루를 튼튼히 해주셨고 그 덕에 나는 시든 잎이 되지 않았다. 그 소중한 유산 위에 새로 돋아날 아들에게 '네가 지금 보는 아빠는 저절로 낙엽이 되지 않았단다'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저 이파리 하나였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하늘을 향해 한껏 몸을 펴며 가을을 맞이했단다 - 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어제보다 새로운 오늘을 사는 일이라면 뭐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학이던 놀이던 아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책을 읽던 운동을 하던 새로운 나를 찾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아빠가 세상 살아내는 모범을 보이는 일이 될 것이었다. 새로운 가지가 될지, 꽃봉우리가 될지, 열매가 될지는 아들의 나름이겠지만,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찾아 계속 움직거리는 나의 그 모습이 아들에게 '아빠됨'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싶었다.
무얼 하든 시간은 흐르겠지만, 그저 시간의 흐름에 가만히 올라타 '물멍'하지는 않기로 했다. 학교나 회사처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시간 통제 없이, 그리고 거기에 더해 시험이나 취직처럼 인생을 짓누르는 부담감 넘치는 목표 없이 일상을 스스로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몇 번이나 찾아올까 ? 적어도 내 인생에서 그런 시간은 수능 끝나고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4개월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먹고 사는 걱정 탓에 앞으로도 은퇴 이전에 그런 시간은 이 육아휴직 기간이 유일하리라. 이 아침의 고요는 그토록 은혜로운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9개월의 하루 하루를 소중히 살기로, 그리고 바쁘게 살기로, 육아휴직의 그 첫 날 홍차 한 잔과 함께 조용히 마음 먹었다. 사십 대라는 인생의 가을 초입, 그냥 물빠진 갈빛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 보다는 '아빠됨'이 빨갛고 노랗게 익어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