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그것
그래도 만 네 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말귀도 알아듣는 나이여서 조금 덜하긴 합니다만, 아침 시간 바쁜 와중에 아이까지 어린이집 앞에서 울어대면 정말 난감하기 그지 없지요. 왠지 아이를 곁에 두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것 같구요. 그래서일까요.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것을 스스로 불편해하는 아빠 엄마들도 몇 번 보았습니다.
아이를 늘상 옆에 끼고 있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빠 엄마보다 더 크고 넓은 사람으로 자라기 바란다면, 그리고 이것만큼은 우리 아이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다면, 아이와의 물리적 거리를 두고 다양한 보육자들이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양한 어른들과의 교감 안에서 아이가 생각의 외연을 더 넓일 수 있게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보육 행위를 남에게 맡기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아빠 엄마도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 거리두기와 가까이하기, 그 중간 어딘가의 균형을 찾는게 필요해 보입니다.
아들의 방과후 교실에 수업시간 중 자주 졸려하는 같은 반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그 엄마는 건물 1층의 까페에서 다른 엄마들과 수다를 떨다가, 수업이 끝나면 올라와서 아이 손을 끌고 나가기 바쁩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잘 참여하는지, 어떤게 재미있었는지,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어요. 아이도 끌려 들어왔다가 끌려 나가기 바쁜 것 같아 보였구요.
반면 저희 아들은 그 방과후교실에 가면 신나서 난리가 납니다.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과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수업이 끝나면 학원 안을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놀기도 합니다. 물론 그 가정의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수업시간 만큼은 저희 아들이 더 넓은 세상과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은 그저 수업시간 앞뒤로 오늘은 어떤 걸 배울지, 수업에서 어떤게 재미있었는지 십 분 정도 밀도 있게 이야기 나누는 것 밖에 없는데도 말이죠.
짧고 굵게 아이와 교감한 후 살짝 떨어져 있기. 그리고 그걸 계속 반복하기. 비법이랄 건 없지만, 아이가 앞으로 자라면서 가정과 사회 가운데서 균형있게 서있을 수 있도록 연습해주는 저의 방식입니다.
사실, 아이랑 너무 진득하게 붙어있다 보면 지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하하.
동글이에게,
아빠가 동글이에게 알려주고 싶은게 많아서 여러가지를 준비하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빠가 아빠 스스로 '혼자서도 이만큼이나 준비한 좋은 아빠'가 되었다는 자기 만족을 느끼려고 그랬던 걸지도 몰라. 네가 어떤 것에 더 관심이 많고 어떤 걸 더 좋아하는지 보다는, '이건 꼭 해야 해', '저건 빼놓을 수 없지' 하면서 아빠의 기준으로 모든 걸 준비했거든. 그게 너에게 꼭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는데도 말이야.
너는 '주도자'가 아니라, 네 아이의 가장 면밀한 '관찰자'가 되어야 해. 아빠도 가끔 너를 들여다보기 보단 너에게 아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때가 있어. 항상 너의 표정, 너의 감정, 그런 것들을 더 많이 관찰할 수록 네가 스스로 답을 주는 걸 알면서도, 사십년 넘게 아빠의 생각으로 살다보니 그렇게 되고 만단다.
아빠가 좀 더 동글이를 잘 들여다볼께. 한 발자국 떨어져서, 하지만 네가 필요로 할 때는 같이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렇게 말이야. 만약 그 시간들이 마음에 들었다면, 너도 네 아이에게 그렇게 해준다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