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박사님은 모르는 어떤 현실의 육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

by 게으르니스트

육아지침서를 읽다 보면 가장 뒷통수 당기는 말이 바로 '아이를 혼낼 때는 협박하거나 때리거나 소리치지 않되 단호하게 이야기하세요.'다. 세상에,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이건 마치 요리책 레시피에 '설탕 적당량과 소금 적당량을 넣으세요'라고 쓴 것만큼 애매하다.


아니, 요리는 설탕과 소금을 어떻게 잘 맞추어 적당히 넣으면 단짠 조합이라도 나오기나 하지, 훈육은 그런게 아니지 않은가. '부드럽다'와 '단호하다'가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라는 상식이 육아지침서 앞에서 무너지면, 아빠는 언제나 육아 초보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내가 우리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장난꾸러기 만렙인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혼내라는 건가. 육아 전문가라는 분들은 '모순'이라는 단어의 뜻을 잊고 계신건 아닐까.




"동글아, 이제 자야지 !"


저녁 10시 30분.

아빠의 음산하고 낮은 목소리는 짐짓 권위를 앞세웠음에도 이미 수십 번 아들의 한 쪽 귀로 흘러들어가서 다른 쪽 귀로 흘러나왔다. 아기였을 때도 자는 시간이 늦어 아빠 엄마를 힘들게 했던 아들은, 지금도 들은 기척도 대꾸도 없이 거실에서 사방에 흩어진 장난감을 껴안고 데굴데굴 구르며 여전히 대낮인 것처럼 놀고 있다.


이렇게 예쁘게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는 상상 속의 인물이 틀림 없다. Source: Pexels


대여섯살짜리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던가. 이것도 어느 육아지침서에서 읽어 이미 머릿속에 잘 갈무리되어 있는 어드바이스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전혀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부모로써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이가 그 훈육에 반응이 없다면, 부모는 언제까지 아이와의 기싸움과 육아전문가들의 고매한 어드바이스 사이에서 전전긍긍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


'소리를 칠까 ? 아니야, 부드럽지 않잖아. 엉덩이를 때릴까 ? 아니야, 그건 더 나쁜 방법이잖아. 그럼 어깨를 붙잡고 주의를 돌릴까 ? 아니야, 신나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어깨를 붙잡아 돌리는 건 때리는 거나 매한가지로 폭력적인 거 아니야 ?'


아무리 여섯살짜리의 마음이나 행동을 이해해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로 귀결되는 육아 전문가들의 가이드 앞에서 아빠는 수십가지 생각의 변증법으로 혼란하다. 단호함의 극단을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 움직일 것 같지 않은 아들내미에게 부드러움을 가미할 적절한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엔 아들이 받을 심리적 충격(?)을 피할 수 없다면, 가장 신속하고 짧은 방법이라도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동글아 !"


기차를 몰고 기세 좋게 앞으로 달려가던 아들의 앞에 버티고 서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고막을 때리는 아빠의 화난 목소리는 확실히 아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아들은 놀이를 멈추고 약간은 얼은 얼굴로 눈을 꿈뻑이며 아빠의 성난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나는 양손바닥을 쫙 펴서 아들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동글아, 아빠가 지금 자러 가자고 열 번을 넘게 얘기했어. 동글이는 아빠가 한 번이라도 말을 안들어주면 으앙 울잖아. 아빠도 동글이처럼 으앙 울어야 이야기를 들어줄꺼야 ?"


"아니요..."


이번에는 쫙 편 양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탕탕 치면서 아들에게 물었다.


"아니면 이렇게 아빠가 동글이 엉덩이를 찰싹 찰싹 때리면서 무섭게 이야기해야 들어줄꺼야 ?"


"아니요 !"


Source: Pexels


어쨌든 아들의 주의를 끄는데 성공했지만, 마음이 가볍지 않다. 육아 가이드 속 수많은 박사님들이 한사코 만류하던 바로 그 '협박하기'를 저지르고 말다니. 이것이 차라리 죄책감이라면 오히려 견디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자괴감이다. 육아 박사님들이 알려주던 올바른 부모의 길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탈선하고 말았다는 자괴감. 아들이 스스로 장난감을 놓고 아빠의 말에 귀 기울이는 순간을 조금 더 기다려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 종국에는 잠든 아들내미의 천사같은 얼굴을 내려다 보며 화낸 걸 후회할 꺼면서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자괴감.


그렇게 깊이를 모르고 한없이 씁쓸해지는 자괴감의 늪으로 순식간에 가라앉고 있을 때, 아들이 말했다.


"그런데 ~ 나는 자는 게 너무 힘들어요 ~ 잠들면 재미있는 것도 못하고 ~ 깜깜해서 싫기도 하고 ~"


화난 아빠 앞에서 뜬금없이 수면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아들의 말에 갑자기 맥이 탁 풀려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것이 앉은 자리에서 지어낸 변명이던 아니던 간에, 아들은 어쨌든 어서 자러 가자는 아빠의 말을 완전히 흘려듣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가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언제나 함께 뒹굴며 장난치는 재미있는 사람인 아빠의 부드러운 훈육은, 아빠의 다급한 마음을 아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평소 말투와는 다른 나의 '단호한 협박' 덕택에 아들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황이, 앞으로 자라며 계속 맞닥뜨리게 될 '아빠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시점이라는 걸.


아들의 핑계인지 진심인지는 계속되었다.


"쪼 ~ 끔 졸리지만 ~ 그래도 졸리지 않아요 ! 자려고 누워도 잘 수가 없어 ~"


"동글아, 너 침대에 누우면 5분도 안되서 잠드는 거 알아 ? 아빠가 옆에서 토닥토닥 해주면 금방 코오 ~ 잠든다구요 ~"


"음 ~ 그러면 아빠가 옆에 누워서 꼭 안아주세요 ! 그래야 나는 잘 잠들 수 있어요 !"


아들이 토실토실한 볼에 보조개를 띄우고 은근한 제안을 던진다. 아... 아들을 너무 얕본걸까. 아빠의 눈에 자기가 귀엽다는 걸 아는 녀석의 이 제안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리고 그걸 활용하는 아들 녀석의 기지에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알면 어쩌겠는가, 이건 거부할 방법도 도리도 없으니 알고도 당할 수 밖에. 결국 한숨을 푹 쉬며 못이기는 척 들어준다.


"으이구 못살아... 꼭 안아주면 덥다고 바둥바둥거리는 놈이... 알겠어요 ~ 그럼 아빠가 동글이를 꼬옥 안고 토닥토닥 ~ 해줄께요 ~"


"네, 좋아요 ! 야호 ~"


Source: Pexels




육아박사님들은 알까. '부드럽지만 단호한' 훈육을 강조하는 육아 프로그램이나 육아지침서의 조언들은, 아이의 마음이 마치 한 번이라도 놓치면 산산히 깨어지고 마는 유리구슬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는 걸. 그래서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부모에겐, '부드러워야 한다'는 말이 '단호해야 한다'를 압도하고 만다는 걸. 결국 부모는 아이의 방종(?)에도 그 한없이 예쁜 구슬이 깨질까봐 마음 졸이며 엄격해 지기를 주저하고, 모든 훈육의 말들이 '부드러움'이라는 범주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마치 죄 짓는 것처럼 여기고 만다.


하지만, 육아박사님들은 잘 모르실지도 모른다. 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은 의외로 깊고 회복탄력성이 강하다는 걸. 아빠의 화난 마음을 순간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꿰뚫어 본 아들내미는, 자신이 왜 자러 가기 힘든지 어필도 해보고, 아빠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자신의 최대 무기인 '애교'를 해결책으로 내세울 정도로 능숙함을 뽐냈다. 비록 아빠의 무서운 협박에 순간 움츠러들긴 했지만, 마냥 갓난 아기 같았던 아들은 이제 아빠와의 관계를 요리조리 가다듬을 정도로 어느새 자라 있었나 보다.

얄미울 정도로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아들래미와의 극적 협상이 타결된 후, 오래간만에 아들을 번쩍 들어서 침실로 걸어간다. 아빠의 목을 한 팔 가득 안고 얼굴을 부벼대며 마지막 딜을 던져보는 아들.


"음, 그리고요 ~ 아빠가 책 읽어주면 더 잘 잘 수 있어요 !"


"야 이놈아, 자러 들어가서 책을 보려면 일찍 자러 들어가야지 ! 오늘처럼 늦게 들어가면 책 안읽고 그냥 자는거예요, 알겠지요 ?"


"으음... 네, 알. 겠. 습. 니. 다 !"


책을 읽으려면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들은 정색한 얼굴로 '네, 알겠습니다'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대답한다. 대체 어디서 그런 걸 배웠을까. 그 당찬(?) 모습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하릴없이 터지는 걸 보면, 나는 아들을 정말 많이 예뻐하나 보다.



잘 자고 일어나서 뽀얀 뽀시래기 처럼 보송보송 예쁜 아들과의 한 때. 제발 부탁인데 잠 좀 자라 이놈아.


아이들이 말 안들을 때 정말 어떻게 해야 고민이 많으시죠. 저도 이런 저런 육아지침서 찾아보며 참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여러가지 조언들이 있었지만 결국 아이를 훈육하는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써 존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해답은 '스킬'에서 찾으려고 하면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크게 혼을 내더라도 그 말투와 혼내는 분위기, 그런 것들이 부모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에 따라 훈육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을 육아지침서들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큰 소리로 주의를 주는 것에 아이도 익숙해 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큰 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거나 한다는 것처럼요. 그렇지 않으면 정작 위험한 순간에 부모가 큰 소리로 주의를 주는 것에 아이가 반응이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그 안에 부모의 감정을 담는다거나(예를 들면, 악을 쓰며 혼내는 것), 또는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표현을 한다거나(예를 들면, 멍청아, 바보야 같은 표현), 아니면 아이가 변명하려는데 무조건 말문을 막아버린다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의 진짜 의미 아닐까 싶습니다.

동물들도 새끼를 키울 때 위험한 순간이 오면 목덜미를 물어서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듯이, 겉으로는 위협적으로 보여도 속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는다면 아이들의 마음도 그것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부모를 믿고 따르니까요.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부모가 평소에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물들은 새끼들에게 사냥법을 가르칠 때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하지 않고 직접 시범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동물들보단 더 생각 깊은 훈육을 해야한다고 항상 스스로를 다잡고 있습니다.


동글이에게,

동글이가 크면서 아빠한테 많이 혼났지. 아빠는 동글이를 혼낼 때가 제일 힘들었단다. 어떻게 해야 아빠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까, 동글이가 아빠한테 혼나는 것 자체에 겁먹지 않고 아빠가 왜 혼을 내는지를 이해해줄까, 그런 것들이 아빠에겐 쉽지 않았어. 해본 적이 없으니까.

넌 아마 모르겠지만, 아빠도 네가 혼날 때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본단다. 어떻게 혼냈을 때 네가 아빠 말에 잘 귀 귀울여주는 지 보려고. 아빠는 네가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것들을 꼭 가르쳐 주어야 할 의무가 있어. 그래서 혼을 내는거야.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그건 바로 네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는 거란다. 아빠가 혼을 내는 것이 쑥쑥 자라는 네 마음에 제초제가 아니라 좋은 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쓸데없이 혼내지 않을께. 무리하게 고집을 부리지도 않을께. 네 생각도 충분히 들어볼께. 하지만 네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명백할 때는 아빠의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할께. 아빠는 지금, 아빠의 혼내는 방법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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