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경제교육이 중요하다고 다들 난리다. 하지만 만 네 살짜리에게 어떻게 경제교육을 해야하냐고 하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물론 그게 그렇게 쉬우면 그 수많은 정치인들과 금융인들, 경제학자들이 갑론을박 세계 경제를 들썩이진 않겠지만.
하지만 평범한 회사원 아빠인 나에게, 자식의 경제 교육은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가정교육의 마지막 보루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생 문돌이로 살아온 내가 아들에게 물리 법칙을 가르치면 얼마나 가르치겠으며, 화학 공식을 가르치면 얼마나 가르치겠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는, 그것이 물론 어려운 학문이긴 하지만,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평범한 아빠도 아들에게 전수할 꺼리가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물론 내가 경제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거대한 부를 이뤄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 = 부'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부는 돈의 흐름이지만, 결국 돈은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곳으로는 잘 흐르지 않는다는 점은 경제학 교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세상 사는 법은, 고급 스킬이 아닌 사회에서 굴러온 짬밥으로 깨닫는 법이니까.
사실 아들이 갓난아기 때부터 자녀의 경제 교육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인터넷을 뒤져 보곤 했다. 하지만 왜인지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모두 '돈'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많은 컨텐츠들이 '독일 부모들은 용돈을 주고선 스스로 써보게 한다더라', '유대인들은 저축하는 습관부터 가르친다'처럼 다른 나라 부모들이 어떻게 돈을 쓰고 모으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나왔다. 블로거들의 글을 보면 대부분 '은행에 데리고 가서 저금을 시킨다'라는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500명 넘게 어린이 경제교육을 했다는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는 제일 처음 들고 나온 토픽이 '돈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야 된다'였다.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경제 교육이 왜 모두 '돈'에서 시작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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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만 네 살 되던 겨울, 그동안 받았던 세뱃돈을 들고 은행에 가서 직접 예금을 하게 해보고 이것 저것 이야기 해 주었지만 그것도 그 때뿐. 아들이 저축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되려 아들은 자기 이름으로 처음 생긴 현금카드에 신나하며 마트에 가서 그 카드로 장난감을 사고 싶어했다. 커다란 장터에 가서 아들에게 만 원을 주고 네가 살 수 있는 걸 잘 비교해서 사보라고 기회도 주어 보았지만, 아들은 비교는 커녕 대뜸 젤리 판매대로 달려가서 젤리 만 원 어치를 들고 왔다.
그런 몇 번의 어설픈 시도 후에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훗날 더 큰 소비를 위해 돈을 모으라거나, 어떤 돈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뭔가 기본을 건너 뛴 것 같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사는 어린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해 돈을 저축하라거나 돈의 가치를 가늠해 보라는 시도가 얼마나 마음 깊이 와 닿을 수 있을까 ?
돈은 그것이 교환수단이던 저장수단이던 간에, 결국 어찌됐던 모두 '수단'이다. 수단은 바뀔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수단'으로부터 자라난 경제 교육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 아닐까. 그 많은 경제 교육들이 왜 '수단'을 들여다 볼 뿐 그 밑에 깔려 있는 '목적'이나 '원리'를 건드리지 않는걸까.
갓난아기는 엄마의 체취만 맡고도 저절로 엄마젖을 찾아 먹는다고 했다. 온라인에 있는 유아 대상의 경제 교육 컨텐츠는 나에게 세상 이치의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나와 아들에겐 엄마의 체취처럼 아주 당연한, 그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로 우리를 인도해 줄 '근본적 원리(Principle)'가 필요했다.
평화로운 육아휴직 중의 어느 날.
"아빠, 기차 장난감 사주세요 !"
한참 잠잠하던 아들의 장난감 리뉴얼 요구가 새 시즌을 맞이했나보다. 수입이 끊긴 올해는 새로 장난감을 들이지 않고 버티기로 한 터. 조금 매정하지만, 바늘로 뚫어도 피 한 방울 안날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동글아, 너 장난감 엄청 많은데 장난감을 또 사달라구 ? 게다가 기차 장난감은 장난감 중에 제일 비싸단 말이야. 기차 장난감 벌써 몇 개나 있는데 더 사달라는 거야."
"비싸면 아빠가 돈 더 주면 되잖아요. 헤헤헤."
"뭐 ? 돈을 더 주면 된다고 ?"
어디서 듣고 온걸까. 기차 장난감이 비싸다는 아빠의 말에 돈을 더 주면 된다며 배죽 웃는 아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이제 만 네 살인 내 머릿속 아들은 아직 절약이니 지출 같은 경제 개념을 익히기엔 이른 나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만 네 살 아들은 달랐다. 비싼 물건에는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육아예능에서 꼬맹이가 '아빠 돈 더 벌어와' 했다더니 남의 일이 아니었다.
제일 처음 뱉은 단어가 '아빠', '엄마'가 아니라 '기차'일 정도로 아들은 기차 찐러버다.
여기서 아빠의 권위를 앞세워 아들의 요구를 앞뒤없이 자르면 아들은 분명 떼쟁이가 될 것이고, 오냐오냐 우쭈쭈 하며 아들의 희망사항을 모두 들어 주었다간 남는 건 '텅장'일 것이 분명했다. 어딘가의 중간 지점에 절충안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마땅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실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아들의 장난감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아들이 신나하는 그 얼굴 잠깐 보자고 하나, 둘 사주다 보니 어느새 작은 산을 이룬 장난감들. 물론 그 장난감들 하나 하나 마다 아들과의 추억이 어려있긴 했지만, 이제는 아들의 관심사가 변해감에 따라 모두들 상자 안에 덩그러니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걸 어찌 처리하나 싶어 아련한 마음과 함께 살짝 골치가 아프려는 그 순간.
"캐럿 !"
옆에 놓여있던 핸드폰에서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바로 그 앱이었다.
"아빠, 핸드폰에 뭐가 왔는데 ?"
아들이 핸드폰을 가리키며 불렀지만, 아들의 목소리는 한 귀로 들어와서 한 귀로 흘러나갔다. 대신 머릿속에서는 그 알림 메시지 소리와 비슷한 알림 종소리가 딩동댕 울리고 있었다. 신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들려오는 내면의 종소리.
그래, 구석에 처박혀 있는 아들내미의 철 지난 장난감을 중고로 팔면 되겠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들이 직접'.
희소성(Scarcity). 인간의 물질적 욕구에 비하여 그 충족 수단이 질적,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거나 부족한 상태.
모든 경제활동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 경제학 서적에서 수많은 개념들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내가 찾는 바로 그 '경제의 근본 원리'가 될 것인데, 내가 찾아낸 답은 바로 '희소성'이었다. 경제학자는 커녕 대학시절 경제학원론에서 간신히 낙제를 면한 수준이라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이 희소성의 법칙에서 시작된다.
혹자는 '인간의 욕구'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자원이 무한히 있어 인간의 욕구를 모두 충족해 줄 수 있었다면 경제활동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또는 너무 많이 쓰여서 이제 경제학 용어 같지도 않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개념이 답으로 제시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물건이 희소하지 않고 지천에 널려있다면 그에 대한 수요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러면 그것을 굳이 공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른 것보다 어떤 것이 더 흔치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의 가치는 오르고, 흔하다면 가치는 내려간다. 모두가 원하는 물건은 그 사람들의 수보다 양이 적어져 저절로 희소해지면서 가치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적게 원하는 물건은 상대적으로 흔해지면서 가치가 내려간다. 재화의 가치는 이렇게 희소성이 결정한다. 우리의 월급 또한 모두 희소성이 결정한다. 다른 사람보다 흔치 않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월급이 오르고, 익히기 쉬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적은 급료를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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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화폐, 주식부터 가상화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의 축적 수단도 모두 희소성으로부터 그 가치가 기원했거나, 가치를 인정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원화가 화폐로 인정받는 것은 정부가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을 적절한 수준에서 희소하게 조절(통화정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원화를 천정부지로 찍어낸다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 종이조각에 불과하게 되거나(인플레이션), 혹은 다른 희소한 화폐(예를 들어, 달러)가 들어와 공식 화폐의 지위를 암암리에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돈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희소성의 개념은 필수적이다.
이직을 할 때도 나의 스펙이 희소해야 면접관의 눈에 띄이는 것이고, 주식투자를 할 때도 브랜드던 기술이던 다른 회사보다 희소한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주식 가격이 오르게 된다.(워렌 버핏은 그것을 경제적 해자라고 불렀다더라.)
기부행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이유는 희소성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고 이타성을 보여주는 '희소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만약 기부가 누구나 쉽게 하는 일반적인 행위라면 역으로 그 이타심을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고, 결국 언젠가 기부의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모든 경제 개념의 바닥의 바닥까지 뚫고 들어가면 이렇게 어디에나 '희소성의 법칙'이 깔려 있다는 것. 아들에게 경제를 알려주는 시작점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희소성'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아 보였다. 평범한 회사원 아빠는 비록 숫자에도 약하고 경제학 점수도 낙제점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것이 지난 16년의 사회 생활 동안 언제나 정답인 명제라고 깨달은 '세상 사는 이치'였으니까.
장난감 타령을 시작한 아들을 일단 앉혀놓고, 아들 앞에 오래된 장난감들을 몇 가지 골라와서 늘어놓았다.
"동글아. 우리 지금부터 재미있는 가게 놀이를 하자. 어때 ?"
"좋아 ! 어떻게 하는 건데요 ?"
일단 놀이로 시작하면 아들은 뭐든지 프리패스. 좋아. 아들아, 이제부터 네가 펼칠 경제활동을 놀이에 곁들여 설명해 줄테니 잘 듣거라.
"동글아. 이거 봐바. 여기 동글이가 요즘 안가지고 노는 아기 때 장난감들이 많이 있지 ? 이제 동글이는 타요 안 좋아하니까 여기 타요 공구 놀이랑, 그리고 멋진 새 기차가 생겨서 이제 안가지고 노는 유로특급 고속열차."
"네 !"
"그런데 동글이보다 어린 동생들은 이 장난감들 엄청 좋아하겠지 ? 동글이도 아기 때 이거 엄청 가지고 놀았으니까."
"네 !"
"그래서 그 동생들한테 이 장난감을 사가세요 ~ 하고 파는 놀이를 하는거야. 동글이 마트에 가면 물건 사가세요 ~ 하고 많이 놓여있지 ? 그거랑 비슷하게 여기 핸드폰이랑 컴퓨터 안에도 커다란 마트가 있어서, 거기에 물건을 내놓으면 그걸 사고 싶은 사람들이 사가게 될꺼야. 아빠가 지난 번에 핸드폰이랑 컴퓨터 안에 있는 커다란 시장을 뭐라고 했지 ?"
"음, 인터넷 !"
"그래. 인터넷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자기 물건을 팔 수도 있고, 그런 물건을 또 살 수도 있어. 인터넷에다가 '우리가 지금 멋진 물건 팔고 있어요 ~ 어서 사가세요 ~' 하고 올려놓으면 그 장난감이 필요한 사람들이 와서 돈을 주고 사갈꺼야."
자기 장난감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간다는 말에 아들이 갑자기 정색을 한다.
"어, 그럼 내 장난감을 줘야 되잖아요. 싫어 ~."
"동글이 아까 새 기차 장난감 사고 싶다고 했지 ? 새 장난감을 사려면 뭐가 필요하지 ?"
"돈 !"
"그래. 그런데 아빠한테 지금 백 원이 있는데, 이걸로 동글이가 좋아하는 젤리도 사야되고, 갖고싶은 기차도 사야하고, 그러다보면 돈이 모자르게 돼. 동글이는 젤리도 먹고 싶고 새 기차도 갖고 싶지 ?"
"응 ! 둘 다 가지고 싶어요 !"
"그러면 모자라는 돈을 어디선가 가지고 와야겠지 ?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장난감이 엄청 많은데 돈이 가지고 싶고, 다른 사람들은 돈이 엄청 많은데 대신 장난감이 가지고 싶어. 그러면 서로 어떻게 하면 될까 ?"
"음... 장난감이랑 돈을 조금씩 서로 바꾸면 돼요 !"
"그래. 그래서 동글이한테 덜 중요한 장난감을 다른 동생들한테 팔려고 하는거야. 동생들은 그 장난감이 지금 엄청 가지고 싶거든. 그렇게 판 돈으로 동글이는 새로운 기차를 살 수 있고, 아빠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젤리를 살 수 있게 되겠지. 그럼 젤리랑 기차 둘 다 가질 수 있게 되는거야."
"음, 좋아요 ! 그럼 얼른 팔아요 !"
아들이 완전히 넘어왔다. 방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장난감도 처분하고, 아들의 경제 교육도 하면서 동시에 새 기차 장난감도 사줄 수 있는 일석 삼조의 효과다. 나의 놀라운 가정교습 실력에 스스로 놀라워하며 이제 본격적으로 알려줘야 겠다고 팔뚝을 걷을 때...
"그런데 아빠. 우리 돈 없어요 ?"
아들아... 팩트에 순진함을 담아 뼈를 때리면 두 배 이상 아프다는 것도 것도 세상 사는 법칙에 함께 넣어보자꾸나.
단순히 오래된 장난감을 중고 마켓에 파는 것은 핵심이 아니었다. 물건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더 어필해서 잘 팔리게 만들 것인지, 즉 우리 물건을 다른 것보다 '희소'하게 만드는 과정을 아들이 체험해 보는 게 중요했다. 태블릿에 캐럿마켓 앱을 켜고 아들의 장난감과 같은 종류의 장난감을 검색하니 몇 개가 팔리고 있었다. 아들에게 그 화면을 보여주었다.
"동글아. 여기 봐바. 동글이가 가지고 있는 타요 공구놀이랑 똑같은 장난감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 이 친구들도 동글이처럼 타요 공구놀이를 팔아서 다른 장난감을 사고 싶은 건가봐."
아들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들의 이해를 위해 숫자를 쉽게 단순화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타요 공구놀이를 갖고 싶은 동생은 한 명만 있어. 그런데 그걸 파는 사람들은 여러 명이 있지. 타요 공구놀이를 갖고 싶은 동생은 돈을 한 명한테만 줄 수 있는거야. 그러면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보니 아들은 아빠의 모든 설명을 상상으로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때는 좋은 수단이 있다. 바로 스케치북과 색연필.
아들의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들어 '거래'라는 상황을 슥슥 그려 보여주었다.
"여기 이 동생 한 명만 돈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타요 공구놀이를 갖고 있어. 돈은 한 명만 가지고 있는데 파는 사람이 여럿이니까 '내가 팔꺼야 ! 아니야 내가 팔꺼라구 !' 그러고 있겠지. 그러면 동생이 우리한테 와서 타요 공구놀이를 사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
"음... 손을 들어서 크게 부르는 거예요. 여기 우리한테 와 !"
"그래 맞아. 사려는 사람한테 '우리 물건이 제일 좋아요 !' 하면서 우리한테 오라고 크게 이야기해야 해. 마트에 가면 여러가지 알록달록 물건 이름도 써 있고 '맛있어요, 좋아요' 이렇게 써 있지 ? 그게 바로 우리 물건이 좋다고 사는 사람들한테 알리는 거야. 우리도 그렇게 만들면 동생이 얼른 와서 사가겠지 ?"
"네 !"
"좋아, 그럼 우리도 우리 마트를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서 동생이 더 잘 볼 수 있게 만들어 보자. 여기는 인터넷이라 소리로 부를 순 없으니 예쁜 그림들로 동생을 부르는 거야. 마트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
"음... 다른 사람들보다 물건이 좋으니까 '조은 마켓' !"
"좋아. 그럼 이제부터 동글이의 '조은 마켓'를 만들자 ! 그리고 동글이가 이 장난감들이 어디가 좋은지, 어떤 게 제일 재미있었는지 소개를 써보는거야. 시작 !"
아들이 만든 조은 마켓의 온라인 간판과 화폐, 그리고 신용카드용 '스마트 리더기'.
아들은 스케치북에 마트 이름도 알록달록 색칠하고, 상품 소개를 쓰고, 거기에 더해 마트에서 쓸 수 있는 돈이랑 '스마트' 신용카드 리더기까지 색종이로 접어서 만들었다. 돈을 그렇게 만들면 '위조지폐'라는 것까지 알려주기엔 너무 어려울 것 같아 그냥 두었다. 다른 것보다도, 조그만 손으로 꼬물꼬물 만드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으니까. 아들이 마트를 꾸미는 동안, 나는 물수건을 가져다가 우리의 '상품'을 깨끗이 닦았다. 물론 '우리 물건이 더 좋다는 걸 보여주려면 일단 깨끗해야 해'라는 설명을 곁들이면서.
이윽고 아들의 '조은 마켓'와 상품 전단지가 완성되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자, 이제 우리의 조은 마켓에서 이 타요 공구놀이를 팔면 되겠지 ? 그런데 이거 얼마에 팔면 좋을까 ?"
"음... 천 백 십 오백원 !"
아직 백 이상의 숫자를 똑바로 읽는 것을 어려워 하는 아들은 그냥 이런 저런 숫자를 마구 붙여서 '최대한 비싸게 팔고 싶다'를 어필했다.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물론 적절한 가격이 어쩌고 해서 현실의 냉혹함(?)을 직접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가격을 직접 붙이고 그게 적절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아들이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여기 다른 사람들이 팔고 있는 타요 공구놀이가 얼마인지 볼까 ? 보니까 여기 만 오천원에 팔고 있네. 우리는 엄청 좋은 타요 공구놀이를 팔고 있으니까 일단 이거보다 비싸게 팔아보자. 이만 원 어때 ? 앞에 있는 십 오보다 큰 이십을 붙이면 이만 원이 되는거야. 그리고 유로특급 고속열차는 타요 공구놀이보다 조금 싸게 팔리고 있으니 만 오천원에 팔자."
"좋아요 !"
상품 전단지 완성. 상품 소개 문구는 아들이 직접 정했다.
상품 전단지에 가격을 마저 기재한 뒤, 아들과 낑낑대며 상품 사진, 마트 이름, 전단지까지 모두 사진을 찍어 캐럿마켓에 상품 소개글을 올렸다. 그리고 글이 올라간 화면을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동글아, 여기 이제 상품 소개글이 올라갔지 ? 이제 우리 장난감을 사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 글을 보면 연락을 줄꺼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으아 ! 빨리 와서 사갔으면 좋겠다. 언제 와서 사가요 ?"
"음, 글쎄 ? 동글이가 열심히 가게 이름도 꾸미고 상품 소개도 썼으니까 사람들이 열심히 보지 않을까 ? 그걸 기다려보자."
"네 !"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팔짝 팔짝 뛰었다. 아들의 첫 '경제 활동'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캐럿마켓에서 중고 제품은 아무리 좋아도 가격이 비싸면 팔릴 확률이 내려간다. 우리가 글을 올린 후 몇 일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 동안 아들은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연락이 왔는지를 물었고 나는 그 때마다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들은 약간 불만이 쌓였다.
"아빠, 왜 이렇게 연락이 안오지 ?"
"우리가 올린 걸 많은 사람들이 봐야지 연락이 오는거야. 여기에 다른 물건 파는 사람도 엄청 많지 ? 그러니까 타요 공구놀이나 유로특급 고속열차를 사고 싶은 사람이 우리 물건을 보려면 시간이 걸리는거야."
"그럼 몇 명이나 봐야지 돼요 ?"
"글쎄, 한 백 명 ?"
"으아. 빨리 백 명이 보면 좋겠다. 지금 몇 명이나 봤어요 ?"
"팔십 명 정도 ?"
아들이 마음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약간 안달이 나 있는 타이밍이니,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건드릴 차례인 것 같았다. 태블릿에 캐럿 마켓을 켠 후 다시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동글아, 우리가 열심히 가게도 꾸미고 상품 소개도 올렸는데, 아무래도 장난감을 사려는 동생이 엄청 망설이고 있나봐. 왜냐하면 우리 꺼랑 똑같은 물건을 다른 사람도 팔고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엄청 좋은 물건을 팔고 있으니까 우리 꺼를 사야돼요. 마트 이름도 꾸몄는데."
"그래. 그래서 동생도 우리 물건을 엄청 관심있게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우리보다 돈을 조금 덜 줘도 타요 공구놀이를 줄께요 ~ 하고 있는거야. 여기 봐. 우리보다 싼 값에 팔고 있지 ? 그래서 동생이 '아, 어떻게 하지. 조은 마켓은 물건이 좋은데 돈을 더 많이 줘야 하네.' 그러고 있을지도 몰라."
아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제 가장 중요한 개념, '희소성'을 설명해 줄 차례인 것 같다. 스케치북을 펼쳐 아들 앞에 놓았다.
"자, 여기 봐바. 모두 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데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어. 그러면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돈을 조금만 줘도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한테 가려고 하겠지 ?"
"네."
"그러면 물건을 비싸게 팔고 있는 사람이 '어, 나도 팔아야 하는데 ! 안되겠다. 우리 물건도 똑같은 돈에 팔게요 !' 그러면서 물건을 조금 싸게 바꾸면 어떨까 ?"
"음, 그 쪽 마트로 갈 거예요."
"맞아. 그래서 이렇게 물건을 파는 사람이 많고 돈을 가진 사람이 적으면 가격이 점점 내려가게 돼.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나 이제 더는 싸게 못팔아 ! 나도 그 돈 받아서 다른 거 사야된다고 !' 하는 데까지 가격이 내려가면 사람들이 그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 팔기 시작해. 동글이도 이거 팔아서 새 기차 장난감 사야되는데 너무 싸게 팔았다간 새 기차 장난감을 못사게 되잖아. 그렇지 ?"
"네 !"
"반대로,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그 물건을 파는 사람이 적으면 어떻게 될까 ?"
"음... '내가 살래', '아니야, 내가 살꺼야' 하니까 비싸게 팔 거 같아요."
기대도 안했는데 아들은 답을 척 내놓았다. 내가 물어봐 놓고도 깜짝 놀랐다.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를 설명해 주니 아들은 그 반대의 경우도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 역시, 경제 활동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거구나. 학생이 대답을 잘하면 선생도 신나는 법.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맞아 ! 그래서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적으면 값이 올라가고, 반대로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많으면 값이 내려가는 거야."
"그럼 우리도 값을 내리면 어때요 ?"
물론 값을 저렴하게 내놓으면 금새 팔릴 것이다. 하지만 이걸 팔아 새 장난감도 사야 하고, 또 아들이 마트를 꾸미는데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너무 싸게 파는 건 도리어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장난감도 깨끗하게 써서 좋은 물건이니, 적당한 수준에서 가격을 놓는게 좋아 보였다. 팔리고 있는 가격 중에 가장 높은 가격으로 바꾸며 아들에게 말했다.
"그럴까 ? 그럼 우리 물건도 값을 이렇게 조금 내려보자. 그러면 금방 팔릴지도 몰라. 대신 동글이가 엄청 좋은 장난감을 팔고 있는 거니까 너무 싸게 할 필요는 없어. 마트 이름도 예쁘게 꾸몄고 장난감이 왜 좋은지도 잘 설명해 놨으니까."
"네 ! 이제 얼른 팔리면 좋겠다 !"
가격을 내린 후 캐럿마켓에 올라와 있는 우리 상품.
예상대로 가격을 내리자 마자 물건이 팔렸다. 가격을 내린 다음 날, 바로 장난감을 사고 싶다는 메시지가 온 것이다. 단, 인기 캐릭터인 타요 장난감에 한해. 나머지 기차 장난감은 인지도가 낮아 그런지 가격을 낮춘 이후에도 영 반응이 없었다. 타요는 모두가 아는 인기 버스니까 더 많은 사람이 사고 싶어 하는 거라고 이야기하니 아들은 금새 납득한다.
어쨌든 장난감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주말에 가지러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아들은 자기가 꼭 동생에게 장난감을 전달해 주겠다며 흥이 돋았다. 물론 헌 장난감이 팔리면 자기에게 새 장난감이 생기니 그런 것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아들은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대단히 만족하는 눈치다.
다만 아직 팔리지 않은 헌 기차 장난감이 문제로 남았다. 아직도 가끔 몇 명이나 우리 글을 보았냐고 물어보는 걸 봐서는 아들은 계속 아쉬워 하는 눈치다. 자기는 엄청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는데 다른 동생들은 기차를 안 좋아하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기차를 좋아하는 네 취향이 특이한거야'라며 아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으니 어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 때.
"아빠, 그럼 나 저 붕붕카 이제 안타니까, 저것도 같이 팔께 ! 기차가 안팔리면 저걸 팔면 돼 !"
... 이러다가 집안 살림살이 다 팔아 치우는 건가 싶어, 혹시나 기차가 안 팔리면 아빠가 돈을 조금 보태준다는 당근을 주어 아들의 폭발하는 경제적 욕구를 살짝 잠재워 두웠다. 새 기차 장난감이 차츰 손에 들어오는 상상에 아들은 흥얼흥얼 자작 콧노래까지 부른다. 그래도 그 모습조차 나에겐 대단히 기쁘고 설레였다. 갓난 아기 같았던 아들이 세상을 하나 하나 경험하고 마음 속에 새겨가는 그 모습이.
얼마 전, 아들이 좁은 뒷자리에서 불편해 하기에 새 차를 계약했다. 물류대란으로 신차 출고 기간이 1년 넘게 걸리는 요즘, 오매불망 새 차를 기다리는 아들이 차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요즘 자동차를 사고 싶은 사람이 엄청 많대. 그런데 자동차 공장에서 만드는 자동차 숫자는 예전이랑 똑같대. 그럼 어떻게 될까 ?'라고 되물으니 아들은 '값이 비싸져요 !'라고 바로 대답해 낸다.
'조은 마켓' 경제 교육은 효과를 충분히 거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물론 아들이 지금 배운 것이 경제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심화 과정이야 앞으로 아들과 함께 할 수많은 시간 속에 차근 차근 쌓아나가면 될 일이다. 이 정도면 성공적일까 ? 아빠가 즉석에서 만들어 낸 경제 교육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