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전업 주부 아빠의 지친 마음 다잡기
그날따라 유독 온 몸의 관절이 모래라도 뿌린 듯 덜그럭거렸고, 밤새 잠을 푹 잤는데도 어깨고 허리고 뭉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육아휴직 중인 아빠의 일요일은 월요일이나 수요일, 금요일과 딱히 다른 게 없다. 아니, 오히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아들과, 휴일이라고 축 쳐져있는 아내, 두 명의 뒤치닥거리를 생각하면 출근할 때의 월요병이 일요일에 생기는 거 같다.
아들이 토요일에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거실을 아침부터 마주하니, 어디서부터 손을 댈까를 고민하는 것조차 지겹다는 생각이 일순 해일처럼 몰려들어 왔다. 만사에 연결된 정신줄이 툭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눈꺼풀에 힘이 풀리고 소파에 그냥 몸을 파묻고 싶어졌다.
지난 7월 중순을 기점으로, 이제 어느새 육아휴직도 절반이 더 지나갔다. 처음 시작할 때 넉넉해 보였던 9개월의 육아휴직이 어느 새 중간 반환점을 돌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육아휴직을 활기차게 시작할 때는 감히 품을 생각조차 못했던, 마음의 아주 작은 구석 한 곳이 깊게 가라앉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육아휴직 초반 살뜰하게 스케쥴에 맞춰 살아갔던 하루 일과가, 5개월이 지난 지금에서는 많이 어그러져 있었다. 어느 한 주는 아들이 갑자기 장염에 걸려 모든 스케쥴을 접고 집에서 아들의 간호에 매달렸고, 어느 한 주는 심심해 하는 아들을 위해 어린이집 등원 대신 박물관이다 놀이터다 현장학습 일정을 잡아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아들에게 좋은 아빠이고 싶어 마음에 내키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나를 위해 하고 싶었던 일들은 하루 하루 뒤로 미뤄야 했고, 가족을 위해 해야할 일은 하루가 지나면 새롭게 하나가 생겨났다.
그랬다. 그 일요일에는 그렇게 약간 지친 채로 안개속에 파묻힌 채 수십갈래로 나뉜 갈림길 초입에 선 기분이었다. 어디로 움직이긴 움직여야 하는데 의욕도 의무감도 반토막 난 느낌.
부엌에서 다음 주 아들의 저녁반찬 거리를 준비하는 내내, 아내는 오전 내내 소파에 반쯤 누워 스마트폰에 열중이었다. 아침 열 시쯤 되어 간신히 일어난 아들은 다리 근처에서 알짱거리며 연신 '심심해 !'를 외쳤다. 몇일일째 이어지던 집중호우가 그쳐 파랗게 개인 날씨가 좋아 창문을 활짝 열었더니, 이내 길 건너편 공사장에서 건너온 굉음이 집안을 휩쓸고 돌아다닌다. 귓전을 때리는 공사 소음, 소파에 누워 뒹굴대는 아내에 대한 불만, 아빠 속도 모르고 징징대는 아들의 칭얼거림. 그 모든 것들의 세례는 그 일요일 낮동안 계속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평불만이 머릿속을 쉼없이 헤집고 다녔다.
"동글아, 여기 거실에 장난감 좀 치워줄래 ? 네가 어제 가지고 논 거니까 네가 치워야지."
지금 아내와 말다툼을 개시하면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에, 눈을 돌리니 만만한게 아들래미였나보다. 혼돈의 거실을 마주한 아빠의 불편한 심기는 애꿏은 아들에게 괜한 불똥을 튀겼고, 그날 하루 종일 심심해를 입에 달고 있던 아들은 나름의 분통을 터뜨린다.
"으아아 ~ ! 이걸 내가 다 해야 되냐 ~ !!! 아빠는 왜 안치우고 나만 시켜 ~ !!!"
"네가 가지고 논 거를 왜 아빠가 치워줘 ? 이제 동글이도 다 컸으니 자기가 어지른 건 자기가 치워야 한다고 아빠가 여러 번 얘기했잖아."
"아빠는 매일 쉬운 것만 하려고 하고 !!"
"아빠가 쉬운 것만 하려고 한다고 ?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이내 누군가 툭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어찌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아들래미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결국 아빠 머릿속 인계철선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정신적 여유가 바닥까지 소진된 탓일까. 이전 같았으면 끝까지 아빠의 훈육을 관철시켰을텐데, 오늘은 아들의 투정을 정면으로 받는 대신 모든 걸 내려놓고 만다. 그냥 저절로 물이 새듯, 스르륵 흘러 나오는 진심.
"... 알았어. 아빠도 장난감 치우기는 어려워서 하기 싫으니까, 동글이가 치우던지 말던지 알아서 해. 알았지 ? 그리고 아빠가 하는 요리랑 청소는 모두 쉬운 일이니까 내일부턴 동글이가 해. 이제 아빠도 정말 힘들어서 못하겠어."
아빠의 냉랭한 말투에 아들은 잔뜩 흘겨보는 '미운 눈'을 시전하지만, 오늘은 그런 거 모르겠다. 휙 등을 돌려 마저 남은 요리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요구 사이에서 방황하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나'라는 의식과 '아빠'라는 이름 사이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집 안의 이방인'이 되어 그렇게 일요일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이후, 집안일과의 모든 실갱이를 내려놓고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뿜어내며 하루 종일 '될대로 되라, 난 안할란다'를 연발했다. 그렇게 미묘한 긴장감이 집안에 가득차니, 소파에서 뒹굴대던 아내도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며 일어나 뭔가 사부작대며 집안일을 거들려 했다. 하지만 예로부터 집안 일 하는 사람은 바깥 일 하는 사람의 집안 일 솜씨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게 국룰 아니겠는가. 찬바람 일으키며 '내가 할테니 그냥 내버려 둬'라고 일갈하자, 손 둘 곳 없어진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 인상을 팍 쓰며 방으로 휙 들어가버렸다.
결국 아들은 아빠와 단 둘이 거실에 남겨지고 말았다.
아침부터 심심함이 머리 끝까지 차 있던 아들은 냉랭한 아빠를 피해 거실 이곳 저곳을 서성대며 놀거리를 찾아 헤메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전문인 만들기나 그리기를 할 때면, 근처를 서성이며 눈치를 보다가 결국 슬쩍 내 다리에 들러붙었다. 아빠는 마지못해 그런 아들의 요구에 응해 주다가도, 한 번이라도 순순히 따라주지 않으면 여지없이 '이제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자리를 떠버렸다. 아들은 몇 번 그렇게 아빠로부터 퇴짜를 맞더니 종내는 오후 나절 내내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찌어찌 저녁을 해치우고, 이제 잘 준비를 해야할 시간.
아내는 여전히 뒹굴대며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고, 아들은 거실에서 뒹굴대며 종이접기며 그리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거실은 여전히 장난감 폭탄을 맞아 발 딛을 곳이 없었고, 싱크대에는 저녁을 먹고난 뒤 그대로 넣어둔 설겆이감이 가득했다. 아침 나절의 모습과 저녁 나절의 모습이 같았다. 식탁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내심 아내와 아들의 행동 변화를 바라며 하루 종일 스산한 분위기를 뿜어댄 게 되려 무안할 지경이다.
그래, 화를 내서 무엇하나. 사랑하는 마음도 상대방에 가서 닿기 어려운 것을 화내는 마음은 오죽하랴. 이젠 끊어졌던 정신줄이 그렇게 푹푹 삶아져 서로 녹아 다시 붙을 지경에 이르렀나보다. 이런게 득도라는 지경일까. 하도 어이가 없어 허탈한 마음을 옛 성인들이 그냥 '깨달음'이나 '득도'로 불렀던 게 아닐까.
넋놓고 그 살풍경(?)을 바라보다 혹시 뭔가 잊은 느낌이 있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월요일 등원 전 아들의 손톱 발톱 정리를 깜빡하였다. 이 신산한 와중에 해야할 살림 거리를 생각해 내는 내 스스로가 대견했다. 한 주 동안 길어진 아들의 손톱 발톱을 정리해 주려고, 한 손으로는 손톱깎기, 한 손으로는 아들을 번쩍 들어 무릎에 앉혔다.
"자, 아빠가 후딱 손톱 발톱 잘라줄 테니까 얌전히 아빠 도와주세요 ?"
"..."
아들은 대답 없이 늘 하던대로 손을 쭉 내민다. 살짝 말아진 손가락을 펼쳐 내 손 위에 올려 놓으니, 아들의 손은 아직도 조막만하다. 그동안 많이 컸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의 손바닥이며 손마디는 아직도 토실토실하고 조그만 아기 손 그대로였다. 손톱은 또 어찌나 그렇게 여리고 부드러운지. 이제 자기 주장도 할 줄 알고, 이리 저리 쏜살같이 뛰어다니니 어쩌면 은연 중에 이제 다 큰 아이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들은 아직도 그냥 예쁜 아기였다.
그 보송보송한 손가락의 힘은 대단했다. 보들보들한 감촉과 모양새 앞에 하루 종일 만년설처럼 얼어붙었던 아빠의 마음은 하릴 없이 무장 해제 되어버리고, 입에서는 그 티 없는 귀여움을 찬양하듯 절로 아들에의 사랑 고백인지 혼잣말인지가 흘러나왔다.
"우리 동글이 손이 아직도 이렇게 작고 예쁘구나. 토실토실하고 말랑말랑하고, 앞으로 더 크면 이 예쁜 손 아쉬워서 어떻게 하지 ~ ?"
아들은 대꾸 없이 '미운 눈'으로 아빠를 휙 올려다본다. 그래, 오늘 하루 종일 그렇게 홀대하구선 이제 와서 사랑 고백을 하니 아빠가 얼마나 밉겠니. 육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일관성이라는데, 아빠는 아직 일관적이지 못한 걸 보니 아직도 초보 아빠인가봐. 그런데 어쩌겠니. 불 같이 화가 나다가도 네 예쁜 얼굴이며 손발을 보면 금새 넉다운이 되어 버리는걸.
또각 또각 손톱 발톱을 자르는 동안 아들은 계속 미운 눈으로 아빠를 흘겨볼 따름이다. 스스로도 민망해서 별 말 없이 손톱깎기에 열중하니 금새 손톱 소제가 끝났다. 그렇게 깔끔해진 아들의 손매에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어 아들을 품에 꼭 안고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 주는데, 갑자기 아들이 목둘레를 꼭 끌어안으며 으앙 하고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갑작스런 아들의 울음에 당황한 아빠는 혹시 실수로 아들의 손톱 밑살이라도 찝었나 싶어 물었다.
"동글아 ! 갑자기 왜 울어 ? 아빠가 손톱 깎다가 피났어 ? 아파 ?"
"...."
아들은 말 없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고는 다시 아빠 품 안으로 파고들며 대성통곡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들의 눈물에 아빠는 당황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아들은 모두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동글아, 그럼 왜 우는거야 ? 아빠는 동글이 속마음을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까 속마음을 알려주세요 ~"
"나는, 나는... 그냥 계속 아기 할꺼야 !"
"뭐어 ???"
아들은 그 말만 내뱉듯 던지고는 다시 품 안에 안겨온다. 상상도 못했던 이유에 아빠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가 아이들의 정통파 희망사항일 줄만 알았는데, 반대로 그저 아기이고 싶다는 아들. 그 마음이 생경해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순간 오늘 하루의 회상이 머릿속으로 필름 감기듯 빠르게 스쳐갔다.
다 컸으니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하라는 아빠의 말, 힘드니까 이제 네가 알아서 다 하라는 아빠의 말, 같이 놀자는 손짓을 냉랭히 뿌리치던 아빠의 말, 아빠의 그런 말들로 점철된 아들의 오늘 하루는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서러웠을까. 그런 하루의 끝에 만난 아빠의 따뜻한 품과 엉덩이를 투덕이는 큼직한 손아귀에 아들은 그 모든 설움이 일순에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 아닐까.
아들은 그냥 아빠와 계속 함께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아빠를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할 날이 오겠지만, 그 날은 아들에겐 아직 상상조차 닿지 않는 형체 없는 미래일 뿐. 지금은 그냥 아빠가 한없이 사랑해주는, 아빠랑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아빠와 함께 신기한 것들을 만나는, 아빠가 번쩍 들어 품에 안아주는 예쁘고 귀여운 아기로 지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훌쩍이는 아들의 어깨를 살포시 안아주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빠의 이런 생각과 미안함을 사과의 말에 담아 들이밀어도 아들은 아마 모두 이해하긴 어려울테니까. 그 대신, 아빠의 마음을 가득 담아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 있지.
"음... 동글아, 그럼 오늘은 아빠가 꼭 안아서 침대까지 데려다 줄까 ?"
"... 네 ! 그리고 오늘은 아빠가 꼭 안아서 재워주세요 !"
"그래, 우리 예쁜 아기. 아빠도 우리 동글이랑 꼭 껴안고 자는게 너무 좋아 !"
"근데 아빠가 먼저 자면 안돼요 !"
"알았어. 대신 잠 안들려고 계속 쫑알쫑알 이상한 얘기 하는 것 금지다."
"네 ~ 알겠다구요 ~"
그래. 아빠는 우리 아들이 쑥쑥 자라는 것만 보였던 걸지도 몰라. 일년이 다르고 어제와 또 다른 너의 자람에 오늘의 네가 얼마나 예쁜지 종종 잊곤 해. 언젠가 다 커서 아빠 곁을 떠나는 날이 조금은 늦게 왔으면 내심 바라기도 하는 주제에 말이야.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찾아 올 그 날, 절대로 후회하지 않도록, 너와의 하루 하루를 보물처럼 아끼고 소중히 보낼께. 물론 아빠도 가끔 힘이 들어서 오늘처럼 그 맹세를 잊고 투정 부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땐 아빠에게 너의 고운 손을 내밀어줘. 그러면 아빠는 금새 너의 가장 든든한 받침대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