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언젠가 올 그 날은.

아이에게 '죽음'을 알려주기

by 게으르니스트

어느 날, 아들과 둘이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중, 우연히 자선단체의 광고 영상을 함께 보게 되었다. 충분히 먹지 못해 가엽게도 엄마 품에서 축 늘어져 있는 아프리카의 한 어린아이를 배경으로 유명 배우가 기부를 호소하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있는 장난 없는 장난 다 쳐가며 밥을 느릿느릿 먹는 아들 때문에 항상 복장이 터지던 차에, 좋은 가르침을 줄 타이밍이다 싶어 아들에게 말했다.


"동글아. 저 아기는 왜 저렇게 힘이 없는 거 같아? 저 동네는 너무 더워서 곡식이랑 과일이 자라기 어려워요. 그래서 먹을 게 충분치 않아서 저렇게 힘이 없는 거야."


아들은 손에 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들은 체 만 체다. 아빠의 설명은 계속된다.


"동글이 네가 매일 먹는 맛있는 밥을 저 아기는 먹을 수가 없어요. 저 아기가 우리 집에서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동글이를 부러워했겠어요? 아, 나도 맛있는 밥 먹고 싶은데 ~ 그러지 않았겠어? 그러니까 동글이는 매일 먹는 밥을 감사하게, 맛있게, 신나게, 빨리, 잘! 먹어야 하는 거예요. 알겠니?"


Source: Pexels


실제로는 정말 슬픈 영상임에도 교육적 목적을 고려하여 혼신을 담아 순한 맛 설명을 했건만, 아들에겐 소 귀에 경 읽기인가 보다. 돌아오는 것은 "네에 ~" 하는 영혼 없는 대답뿐. 도대체 이 녀석이 어디서 소울리스 스킬을 배웠는가 싶어 다시 한번 복장이 터지려던 찰나, 갑자기 아들이 대뜸 묻는다.


"근데 아빠, 저 아가는 계속 밥을 못 먹으면 어떻게 해요?"


의외의 질문은 아빠의 허를 찔렀다. 아들의 돌발 질문에 알파고 아빠는 순한 맛 대답을 준비하지 못해 버벅거렸다.


"어... 음, 아가들은 자랄 때 엄청 밥을 잘 먹어야 해. 뼈도 자라고 근육도 자라려면 여러 가지 영양분이 많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저 아가는 아마 잘 자라지 못할 거야."


"그럼 앞으로 계속 조그만 아기로 사는 건가?"


뭔가 기발하지만 약간 한심스러운 궁금증에 아빠는 뒷골이 약간 당기며 한숨이 나왔다.


"어이구 이놈아, 계속 어떻게 아기로 사니. 잘 자라지 못하다간 몸 이곳저곳이 아프게 되어서 어쩌면 꼴까닥 할지도 모른다고."


아들은 아직 '죽는다'라는 단어가 익숙치 않았다. 영양실조로 숨지는 것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표현할 단어가 마땅치 않았다. 영상 속 상황과는 좀 괴리된 바가 있었지만, 결국 '아빠 괴물 놀이'를 하며 죽는시늉을 할 때 사용하는 '꼴까닥'을 쓰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들은 능글능글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럼 뽀뽀를 쪽 ~ 해주면 다시 일어날 거잖아요 ~"


13-3.jpg Source: Pexels


일단 '꼴까닥' 한 아빠 괴물은 아들이 다가와 볼에 뽀뽀를 해주면 다시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빠 괴물 놀이'의 암묵적 규칙이었다. 아빠가 '꼴까닥'이라는 단어를 쓰니 아들은 당연히 볼에 뽀뽀를 해주면 다시 일어날 줄 안거다. 그러나 만약 텔레비전 영상 속 그 아이에게 충분한 영양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아빠 괴물 놀이처럼 로맨틱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전달이 필요했다. 만 네 살인 아이에게 죽음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언젠가 한 번은 넘어야 할 개념의 산이었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의 무게와, 어떤 자세로 그것을 대해야 하는 것까지는 알려주는 것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동글아. 꼴까닥 한다는 건, 이제 죽어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거야. 지난번에 땅바닥에서 본 안 움직이는 벌레들 기억나요? 그 벌레들도 원래는 막 움직였겠죠 ? 그런데 죽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아까 그 아기도 지금은 조금씩이라도 움직이지만, 계속 밥을 못 먹으면 영양소가 점점 모자라서 결국에는 죽게 될꺼예요. 그러면 아기 엄마가 뽀뽀를 해줘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거야."


지금껏 자기가 알던 것과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자, 아들이 심각한 얼굴로 되묻는다.


"아니야 ~ 아빠 괴물은 동글이가 뽀뽀해주면 벌떡 일어나잖아요 ~"


"아빠 괴물은 지금은 튼튼해서 동글이가 뽀뽀 에너지를 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하지만 동글이가 점점 더 크고 아빠는 점점 더 나이를 먹으면 아빠는 키도 점점 작아지고 힘도 없어지고..."


그리고 '아빠도 언젠가는 죽게 될꺼야'라는 말을 하려 했는데, 그 다음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난 후 바쁘게 살기만 했지, 언젠가 이 아이가 자라고, 어른이 되고, 그리고 그 즈음 나는 늙어서 아들 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아직 나조차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아들의 토실토실하고 생기 넘치는 얼굴은 먼 훗날 아빠의 죽음 같은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세상의 것처럼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아들의 인생과, 이제 반환점을 돈 아빠의 인생. 우리는, 아마도 서로 마주보고 뛰는 그 코스 어느 중간에서 잠깐 지나칠 것이고, 아마도 그 순간부터 아들은 아빠의 인생을 조금씩 이해해 주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아들은 바쁜 자신의 인생길을 뛰면서 아빠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것이고, 아마도 아빠는 인생의 마라톤 마지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생의 종착점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 둘의 여정이 삽시간에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자, 살짝 목이 메이기도, 눈가가 시큰해지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 만감을 무릅쓰고라도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편이 좋아보였다.


"... 그래서, 음, 아빠도, 음, 그러다가 언젠가는 많이 아파지고, 그래서... 언젠가는 죽게 될꺼예요."


"..."


아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아빠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나보다. 하기사 입만 열면 아빠 엄마부터 불러대는 녀석에게, 아빠가 없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이리라. 눈시울이 촉촉해진 마흔 세살 아빠와 영문도 모른 채 철학 교육을 받는 네 살 아들래미 사이의 잠깐의 침묵. 계속 이 침묵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멜랑꼴리함의 격동에 휩싸인 내가 먼저 훌쩍일 것 같아, 부드러운 아들래미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컥이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일부러 들띄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아빠는 안아프고 동글이랑 오래 오래 같이 살려고 ~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도 먹을꺼예요 ~ 동글이도 맘마 맛있게 먹고 신나게 잘 놀아야 해요. 알았죠 ?"


아빠의 격앙(?)된 목소리 탓일까. 아들은 눈을 부릅뜨며 다짐하듯 큰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응 ! 동글이는 아빠가 아프면 호 ~ 해줄께요 ! 그리고 아빠는 내가 잘 때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 그러면 아빠랑 동글이는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어요 !"


자기 딴에는 엄청 결연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신신당부하는 아들의 예쁜 마음이 애닳파, 결국 콧등을 쳐들고 꿀꺽 침을 삼키며 아들내미의 말썽을 애꿏게 타박해 본다.


"그래그래. 근데 요즘처럼 동글이가 자꾸 말썽부리면 아빠는 속상해서 병이 나는데 어떻게 하지 ?"


"걱정마세요 ! 아빠 말 엄청 잘 들을께요 !"


요 예쁜 놈. 만겹의 장난꾸러기 속에 요렇게 예쁜 마음이 숨어 있어서 아빠는 행복해. 그리고 사십 살이 넘은 이 아빠도 아직 생각 안해본 걸 갑자기 들이밀어서 아빠가 미안해. 몸에 좋은 것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우리 오래 오래, 행복하게 같이 살자. 사랑하는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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