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푸르고 화창한 미래의 어떤 하루

그리고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평범한 회사원 아빠의 오늘

by 게으르니스트

요즘의 부모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명언들이 있는데, 그 중에 정말 촌철살인과 같은 한 마디가 있었으니 바로 '육아는 템빨'이다.


그렇다. 작금의 육아는 진정 템빨이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이 한탄을 터뜨리는 순간을 노리고 만든 그럴 듯한 상품들이 시장에 진을 치고 있다. 그들의 마케팅은 또 어찌나 달콤한지. 상품 안내 속 그림 같은 모델들은 이게 바로 당신이 찾던 바로 그 상품이라고 속삭인다. 이걸 쓰면 세상 트렌디하고 스마트한 부모가 될 것 같다는 상상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혹자는 저출산으로 인해 육아 산업이 사양일로에 접어들 것이라 예상할지도 모르지만, 실질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반면, 육아 관련 산업의 규모는 2015년 2조 4천억원에서 2020년 4조원으로 매년 무려 11% 이상 성장했다.


매년 10% 넘게 성장하는 산업은 흔치 않다. 정부가 매번 '미래 먹거리'로 선정하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이 매년 10%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산업이니,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이 창출하는 돈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https://blog.opensurvey.co.kr/article/baby-2020-2/


육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소비 뒤에 숨겨진 부모들의 마음을 낮잡아 보곤 한다. 하나 (혹은 둘 정도) 뿐인 아이에겐 돈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투자하고 싶다는 부모들의 '허영심' 때문이라 넘겨짚으면서, 혹은 그런 거 없이도 예전엔 애들 다 잘키웠다면서. 하지만 직접 육아용품을 구매하는 어떤 부모의 마음 한 켠엔 그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이 숨어있다.


바로, 어떻게 하면 다만 조금이라도 집안일을 처리할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을까에 대한 치열한 고민 말이다.




물론 개중에는 '내 아이가 쓰는 물건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고 무조건 최고로 !' 라는 부모도 분명 있으리라. 하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들과는 분명 동떨어져 있다.


오래 전 대가족 안에서는 내가 밭일하러 나가면 가족 중의 누군가 집안일이며 내 아이의 돌봄까지 맡아 주었을 것이다. 혹은 부모 중 하나가 전업 주부의 역할을 맡았다면 그가 집안일과 육아를 맡았을 것이고. 반면 우리 같은 맞벌이 가정 안에는 가사, 육아, 근로자로써의 일이 모두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오롯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


서둘러 퇴근했다고 하지만 집에 도착하면 어느 새 일곱 시, 집안은 장난감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고, 싱크대에는 설겆이 거리가, 빨래통에는 빨랫감이 가득하다. 다만 십여 분이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안아주고 함께 놀고 싶지만, 집안일을 대충이라도 끝내고 뒤돌아보면 어느 새 아홉 시가 훌쩍 넘겨있다. 아이와의 이닦기 전쟁은 최소 이십 여분이 필요하니, 부모가 잘 준비까지 끝마치면 어느 새 열 시가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만 십여 분이라도 가사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혹은 역으로 아이와 대신 놀아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동앗줄이던 간에 덥석 잡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며, 또 지금껏 여러 번 잡아왔다. '그래, 우리 집은 한 사람 더 벌고 있으니까 조금 더 써도 괜찮아'라는 자기면책적 변명에 힘입어, 지난 사년 여간 그렇게 수많은 육아템들이 집안에 발을 들였다.


Source: Unsplash


그 중에 어떤 것은 유용했고, 어떤 것은 딱 들인 돈 만큼의 가치가 있었고, 또 어떤 것은 값어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육아템 덕택에 약간이라도 아낄 수 있었던 효용의 총합을 들인 돈과 비교한다면, 적어도 제로섬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지난 사년 간 아이를 키워왔다.




그랬던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팬더믹을 지나오면서부터다.


최근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지구 온난화와 환경 오염의 심각성이 팬더믹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고 느낀다. 미디어의 포커스가 그 쪽으로 맞춰졌기 때문에 이제서야 눈에 띄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의외로 길었던 삼 년여의 팬더믹 기간 동안 일어난 환경 재난, 고도의 사회 경제적인 문제들 - 극단주의의 충돌, 경제적 양극화 등 - 이 모두 팬더믹과 결부되어 있는 것 같은 인식의 착시 효과가 나에게 일종의 비관적 세계관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던, 비교적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감각 또는 인식이 나만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슈로더에서 2021년 10월 발표한, 세계 23,000명 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팬더믹 이전보다 환경문제가 더 중요해졌다는 인식이 과반을 넘는다.


기후와 환경의 위기는 실제적이다. 바로 얼마 전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호우와 역대급 태풍이라는 힌남노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소식은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자연 재해의 실체감을 안겨주었다. 거기에 지난 몇 년간 꼬리를 물었던 세계 전역의 산불이며 가뭄, 폭설, 녹아내리는 빙하와 만년설에 대한 뉴스들이 그 실체감에 얽혀들며, 환경 문제가 이제는 과학자들의 책상 위가 아닌 나의 앞마당에 놓인 문제임을 확실하게 각인해 주었다.


그것은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논리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에서 비롯된 온도와 강우의 변화가 식량과 자원 생산에 악영향을 주어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리며,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재난으로 일상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가 살았던 시절과는 다른 세상이, 머지 않은 미래에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충분히 납득 가능한 예측이다. 그리고 그 머지 않은 미래는 곧 내 아이가 마주할 현실이다. 코로나 팬더믹이라는 어두운 시절을 지나며 마주한 지금 이 기후와 환경의 위기가, 한 아이의 아빠로써 내 아이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어린이였던 내가 바라본, 미래라고 했던 오늘을 돌이켜 본다. 1980년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 준 미래는 비행원반을 탄 원더키디가 하늘을 날고, 드로리안 타임머신이 불꽃을 뿜으며 미래로 달려가는가 하면, 변신로봇들이 광선검을 맞부딪치는 모습이었다. 허황되지만 희망이 가득했다.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멋지고 힘이 넘쳤다.


2020년대 어른들이 지금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미래는 그에 비하면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먹먹하다. 이젠 기후위기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유빙에 갇힌 북극곰과, 다 녹아 얼마 남지 않은 얼음 위에 살기 위해 빽빽히 모여있는 바다코끼리의 모습은 현재의 영상이면서 동시에 희망이 사라진 미래 인류의 반영이므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살 곳이 사라진 바다코끼리들이 좁은 얼음 위로 모여든 모습. CG가 아닌 실제다. Source: Netflix 'Our Planet'




탄소 발자국, 물 발자국의 개념이 있다. 본래는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으로부터 폐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나, 소비되는 물의 양의 총량을 계산하여 그것의 친환경성을 측정하는 개념이다.


집안 곳곳에 들어찬 육아용품이며, 쌓여있는 아들의 장난감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오늘, 어제, 그 어제의 어제의 생활을 되돌아 본다. 어떤 것은 정말 그 순간 그 물건이 없이는 고단한 육아의 시간을 견딜 수 없어 'Buy' 버튼을 눌렀을 테고, 어떤 것은 아이의 조름에 못이겨 큰 고민 없이 신용카드를 내밀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살림의 피곤에 쩔어 한 끼 후딱 때우고자 음식을 굳이 배달시켜 먹었던 기억이 있고, 또 어떤 날은 아들과 함께 산책하듯 툴레툴레 걸어갔던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보석같은 맛을 발견했던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겠다고 더 많은 물건을 산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일말의 환경 의식을 갖고 꼭 필요한 양만큼만 구매하고자 한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내 아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자 무심히 고른 선택지들이었다. 그 발자국들은 아들의 어떤 미래로 이어져 있는 발자국일까. 어떤 선택은 나름 환경적 소비라고 자위했는데, 탄소와 물 발자국을 어림해 보면 오히려 그 반대였을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명백히 '반' 환경적임에도 육아와 살림에 찌든 삶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소비도 있을 것이다. 그 중 어떤 것은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환경에의 발자국도 줄이면서 나와 아이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환경에의 기여에 비해 나의 희생을 과하게 요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최대한 친환경적인 선택을 하고 싶지만, 그것이 나와 우리 가족의 시간과 행복을 적잖이 요구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선택일까 ? 나의 생활 속에서 친환경적인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육아와 살림에의 노력을 줄이는 것의 파레토 균형점이 어딘가에는 존재할텐데, 지금껏 환경이라는 잣대로 저울질하며 소비하고 생활하지는 않았다. 과연 어느 지점으로 가야 아들에게 내 뒤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그대로 따라와도 된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과학자만큼 정확한 지식으로 가늠하였으면 하지만, 문과로 평생을 살아온 평범한 회사원 아빠에겐 벅찬 물음이다. 그렇다면 결국, 고민조차 할 필요 없는 지구와 아들의 미래에 빚지지 않는 길, 내가 쉽게 채택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친환경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길, 그 길들을 낱낱이 찾아내어 결연히 걷는 것. 그것이 아빠로써 선택해야 할 유일하고도 당연한 길로 내 앞에 남겨진다.


아마 나비의 날갯짓조차 되지 못하는 작은 발버둥이리라. 그럼에도, 내가 내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의 아들과 딸을 사랑하는 아빠들이 여기저기에 있어서 나와 같은 고민을 시작했기를 마음 깊이 바래본다. 그 가만가만한 날갯짓들이 수없이 모인다면, 미래의 어떤 날에 파랗고 화창한 날씨를 아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 테니까.



17-5.jpg 비닐은 깨끗이 버리면 재활용이 잘 된다고 하여, 설겆이 후 남은 거품으로 음식 포장비닐을 세척한다. 우리 시의 생활하수 처리 자료를 찾아보고 수질 쪽으로는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17-6.jpg 휴직 중 없는 살림이지만 자전거를 마련했다. 혼자 이동할 때는 자전거를 애용 중이다. 복직 후에는 부분 자출에 도전해 볼 예정이다. 탄탄한 허벅지가 기대된다.


요즘 아들과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BBC의 'Frozen Planet'입니다. 놀라운 영상미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환경문제에 대한 큰 경각심을 함께 불러 일으킵니다. 영상을 본 후 아들은 집 안을 돌아다니며 쓸데없이 켜져있는 전등을 끕니다. 그냥 버렸던 페트병으로 장난감을 만들겠다며 우주탐사선을 만들기도 하구요. (이건 친환경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자원 재활용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아들의 그런 순수하기 그지 없는 모습에, 아빠로써 이 예쁜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과연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까요. 아마 지구적 규모로 보면 티끌 처럼 작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빠로써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의 영향력이 실제로는 한없이 작더라도 말이죠.

육아와 가사는 피곤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조금이라도 일손을 덜어준다면 큰 고민 없이 소비했던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육아휴직 덕택에 늘어난 시간 덕택일까요. 생각 없이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한 번 더 고민해 보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이거 정말 필요한 걸까. 이것이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만약 정말 필요하다면, 사용하는 횟수를 줄여 전기나 석유, 물, 기타 자원들을 소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정말 써야 한다면, 더 긴 시간 사용함으로써 자원의 소비량을 줄일 수 있을까.

그렇게 피곤한 일상과 그것을 해소해 줄 편의 사이의 어딘가를 찾아가는, 어렵지만 중요한 기준을 세워가는 중입니다. 아직 소비라는 습관에 흠뻑 젖어 쉽지는 않지만, 조금씩 '이 정도면 괜찮은 삶'으로 잘 말리고 있는 중입니다. 뭐, '미니멀리즘'으로 포장하면 더 힙해 보일꺼 같기도 하네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아빠 엄마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래봅니다.


동글이에게,

네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구는 아빠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지구랑 다를지도 몰라. 그래서 아빠는 가끔 두렵기도 하단다. 아빠가 어찌할 수 없는 곳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날 지도 모르니까.

너가 아빠가 될 때쯤엔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빠는 너에게 어두운 미래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조금이라도 지구에 부담이 덜 되는 길을 찾아 열심히 걸어가려고 해. 그 때가 적어도 우리 가족이 사는 지금의 지구 정도만 된다면, 너희 세대가 더 나은 방향으로 한 발 더 걸어갈 수 있을테니까.

너도 너의 아이를 위해, 그런 발걸음을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1)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블로그 (https://blog.naver.com/mocienews/221436213752)

2) 출처: 그린포스트코리아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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