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남편이자 아빠인 건 처음이라

그 날 이후, 아내와의 관계

by 게으르니스트

아들이 태어난 것으로 아내와의 꽃길 로맨스가 막을 내리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 수많은 다른 부부들이 모두 육아와 가사 문제로 '사랑과 전쟁' 실사판을 찍고 있더라도, 우리 부부만큼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금슬이 좋은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나는 적어도 애정이 충만하다 못해 주워 담기 힘들만큼 흘러 넘치는 부부'였다'. 남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도 기름이 뚝뚝 흐르는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질 않나, 메신저 창에는 애교 넘치는 이모티콘이 끊일 날이 없었으며, 아들이 태어나기 직전까지도 태교 여행이니 부부 동반 요가니 하는 그럴 듯 해보이는 모든 걸 앞장 서서 챙기는 그런 부부'였다'. 아들이 태어나면 맨날 부둥켜 안고 있는 아빠 엄마 사이에 자기도 끼고 싶어서 낑낑대지 않을까 라는 농짓거리도 서슴치 않는 희대의 닭살 부부'였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고 정확히 2년 만에 그 모든 좋았던 날들은, '좋았던'이라는 단어 그대로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사십 살 이전의 출산은 노산도 아니라고 한다지만, 어쨌든 아내는 삼십 대 후반이라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출산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야 했다. 지금도 머리가 앞, 뒤, 좌우 모두 짱구인 동그란 아들 녀석은 새벽 다섯 시부터 엄마를 괴롭히다가 저녁 다섯 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세상으로 나왔다. 처음부터 자연분만을 염두에 둔 아내였기에 하루 종일 고생하다가 중간에 제왕절개 수술로 바꿀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튼튼하 잘 태어났고 창 밖에는 아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해 주듯 함박눈이 보슬보슬 내리는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아, 그런가 보다, 눈이 내리는가 보다, 하는 수 밖에 없는 그런 날이었다.


아들은 아름다운 날에 우리에게로 왔다. 함박눈이 내리고 일주일 남은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듯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반짝이던 그런 날. 다만 좁은 창 너머로 그저 바라 보아야만 했지만


출산의 경험은, 아내의 말을 빌자면 '세상이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했다. 물론 안좋은 방향으로. 열 두시간 넘게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지쳐서 졸음이 쏟아질 정도였으니 아내는 오죽했을까. 아내는 평소에도 자기 아쉬운 소리를 별로 하지 않고 속으로 담아두는 성격이어서 산후조리원에서도 조용하고 편안하게 지냈지만, 안팎으로 많이 곯아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들은 갓난 아기 때에도 잠드는 걸 많이 힘들어 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온 아내와 나는 밤이고 낮이고 계속 울어제끼는 아들 녀석을 달래느라 말 그대로 정말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나도 갓난 아기 때 정말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아들은 '악'을 쓰면서 울어대는 타입이었다. 그 상황이 버거웠던 아내는 체력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응애 응애 하며 예쁘게 우는 아기도 있던데 아들은 그야말로 목이 찢어져라 울었다. 두 시간을 잠들고 나서 한 시간을 울었다. 도대체 왜 우는가 싶어 분유도 바꿔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아들은 정해진 규칙이라도 있는 듯 꼭 한 시간을 울어야 두 시간을 잤다. 휴직한 아내가 낮에 아들을 돌보다가 밤에 내가 퇴근하면 새벽 두 시까지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고, 새벽 두 시에 다시 나와 교대했다. 그러나 잠 좀 잤냐는 나의 물음에, 아내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 시간 동안 잠들기 어렵다고 했다.


바닥난 아내의 정신과 체력을 어떻게든 회복하고자, 아들이 이른바 '통잠'을 자기 시작한 백일 즈음까지 출퇴근 도우미, 입주 도우미부터 시작해서 어머니, 장모님까지 빌릴 수 있는 손은 모두 빌렸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없을 땐 내가 밤잠을 줄이며 아내의 식사며 집안일을 해치웠다. 하지만 백일이 지나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아내 혼자 낮 시간을 지키게 되자 아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출산 전 녹내장으로 한쪽 눈의 시력이 좋지 않았는데, 나의 만류에도 끝끝내 아들에게 모유수유를 하겠다며 녹내장 약을 쓰지 않은 바람에 백일이 지나는 동안 안압이 올라 버렸다. (높은 안압으로 시신경이 손상되는 녹내장 환자에겐 안압 상승이 치명적이다.) 부족한 잠에 나빠지는 시력까지, 아내의 출산 첫 일 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내가 그 고통을 오롯이 나에게 모두 분출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시비를 걸었고 모든 일에 불만이었다. 아내가 아들을 보는 것 외에는 신경쓰지 않게 하려고 낮 시간 중에 아내가 먹을 식사를 꼬박 챙기고, 청소며 빨래며 젖병 닦는 것까지 모두 내가 도맡아 했고 그것을 힘들어 한 적이 없었다. 필요하다는 물건은 모두 들였고 하고 싶다는 일들은 모두 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점점 나에게 '적대적'으로 변해갔다.


Source: Unsplash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는 그 때 가벼운 출산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 그나마 내가 그 노력을 했기에 더 심한 우울증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외출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아내는 옹알거리는 게 전부인 아들과 하루 종일 집에 갇혀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서로의 애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출산 후 안락한 휴식을 도모할 것을 기대했던 아내와 나는 '조리원 동기'가 생기지 않는 휴식형 산후조리원을 선택했는데, 결국 그것을 후회했다. 하다못해 그 조리원 동기라도 있었다면 아내가 수다라도 떨며 스트레스를 풀었을텐데.




아내가 복직하면 거칠어진 성정이 자연스레 원래대로 회복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변덕스러워진 아내의 성격을 일 년 동안 아무 불평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내는 일 년이 지나 회사에 복직한 후에도 계속 만사에 불편감을 드러냈다. 뭐라고 말을 할라치면 중간에 말을 끊고, 뭐를 하려고 하면 자기 생각을 갑자기 들이밀며 참견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 ?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 화난 게 있으면 말을 해야 알지, 그렇게 틱틱 대기만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


"화난 거 없어."


"아니, 화난 게 없으면 그럼 도대체 왜 그러는데 ?"


"..."


나의 계속된 물음에도 아내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답답해 속이 터져 죽을 노릇이었다. 나의 답답함은 이내 울화통으로 바뀌었고,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는 단단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명확한 이유라도 있으면 크게 싸우던지 아니면 대화를 하던지 할텐데 그런 류의 해법이 무효한 상황.


그렇게 2년이 지나갔다. 거칠게 분출하는 화산은 당장은 주변을 초토화시켜도 시간이 지나면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비옥한 산야가 되지만, 서서히 얼어붙어 가는 빙산은 초록이 움트기 어려운 혹한의 불모지가 되는 법이다. 아들이 태어난지 2년, 세상 없던 알콩달콩한 한 부부는 사라지고 차갑게 식은 시선조차 집안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아하는 두 남녀가 남았다.




그 뒤로 2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위아래로의 관계의 부침이 있었고, 나도 아내도 예전의 애정을 회복하기 위한 몇 가지의 시도를 해보았다. 몇 차례 손편지를 주고 받거나, 가족여행을 다녀오거나, 기념일에 세심히 고른 선물을 준다거나.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대한 것만큼 성공적이지 못했고, 관계의 그래프는 우상향하기 보다는 주로 바닥을 찢고 내려간 적이 더 많았다. 아들의 보는 눈 듣는 귀가 우리의 표면적인 충돌은 간신히 틀어막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들은 아빠와 엄마 사이의 전쟁 상황을 눈치채고 있는 듯 우리가 일상적인 문답만 나누어도 '아빠 엄마 그만 !'이라며 대화를 막아버렸다. 자식에의 무안함과 상대에의 원망이 반반씩 섞인 그 잠깐의 침묵의 순간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게 육아에의 악영향은 물론이거니와, 감정적 소모로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같은 집 안에 있어도 카카오톡의 단답식 메시지가 대화를 대신했다. 하던 일이 틀어지면 집에서 나를 괴롭히는 아내의 탓으로 돌렸고, 아내의 미숙한 집안일 마무리를 볼 때마다 속에서는 천불이 일었다. (아마 아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결국 더 이상의 감정적 대치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 마침 시작한 육아휴직을 이용해 부부 상담 클리닉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Source: Unsplash


상담 기간 동안 아내와 나는 마치 상담실 안이 대나무숲인양 가슴 속 바닥에 늘어붙은 감정의 응어리를 박박 긁어댔다. 더 이상은 못 산다, 이대로는 힘들다, 이번 생은 망했다, 부부의 연은 잊고 부모로써만 살겠다 등등. 서로 욕만 하지 않았지 이쯤되면 막장에 다다른 셈이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바닥에 바닥까지 치고 들어가도 서로의 마지막 인계철선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나 보다. 상담을 시작한 뒤 두 달 정도 지나자 결국, 어떻게든 서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 아닌 노력을 시작했다. 상담사의 설득으로 아내는 자신의 지난 감정과 생각들을 차근히 돌이켜 써 보기로 하였고, 나는 그런 아내의 노력을 일단 인정하고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솔직해지자면 다른 것보다도 아들에게 화목한 가정, 따뜻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못난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절벽 끝까지 가고 나니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생각을 돌이켜 봤달까. '애 때문에 산다'는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아들 덕분에 그 절벽을 뛰어내릴 마음을 돌이키는 것을 두고 고민하지는 않았다. 늘어붙은 악감정을 긁어대던 수세미 같던 거친 말들도, 어쩌면 그 밑에 코팅처럼 버티고 선 부모로써의 책임감을 벗겨내지는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육아를 위한 나의 노력들을 가벼이 여기던 경박한 말투와 경솔함을 사과하는 아내의 편지와 함께 부부 상담은 막을 내렸다. 아내는 편지 속에서, 출산 첫 해 자신은 소진된 체력과 정신으로 홀로 아이를 돌보았고, 그 시간을 건너며 거칠어진 마음으로 나를 대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서로 상처 입었던 그 시간들을 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버티며 가족으로써 있을 수 있게 한 나의 노력에 고맙다는 말로 편지를 끝맺었다.




허무했다. 긴 시간 거칠게 감정을 부딫히며 끝끝내 듣길 원했던 아내의 사과를 결국 받아내었지만, 그 후로 몇 날 몇 주가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사과편지 한 장으로 어제까지 소 닭 보듯 했던 서로가 갑자기 사랑이 샘솟는 사이로 돌아갈 리 없었다. 아내는, 그리고 나는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엇을 기대하고 서로를 미워했던 걸까. 나는 꺾이지 않는 아내의 성정을 무너뜨린 점령군의 고양감을 바랬던 걸까. 아내는 어떤 감정을 쏟아내도 받아 줄 스펀지 같은 무한한 남편의 사랑을 원했던 걸까. 어떤 것이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시간과 감정을 들이부은 관계의 항아리 속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밑 빠진 독처럼.


지난 시간을 가만히 돌이켜 보았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만사에 꼼꼼하고 살림에 익숙한 나는 집 안팎을 세심히 챙겼고, 털털하고 물에 술탄 듯한 성격인 아내는 나에게 의견을 맞추며 따라왔다. 결혼 전 그런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살 결심을 했기에, 서로 부딫힐 일도 어긋날 일도 없는 잘 만든 시계 속 한 쌍의 톱니처럼 부드럽게 맞물려 돌아갔던 신혼 생활이었다.


아들을 우리 가족으로 맞이하는 것은 그 완벽한 무브먼트 안에 아주 작은 톱니바퀴를 새로 들이는 일이었다. 출산과 육아는 서로 처음이었지만 연습이나 사전조율이 불가능했고, 새로 들어온 그 작은 톱니바퀴는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부부의 톱니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 세 개의 톱니바퀴가 다시 예전처럼 부드럽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나도 아내도 많은 것들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주인공인 작은 톱니바퀴까지 모두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연습, 서로 다시 맞춰질 때까지 계속 덜컹거릴 어긋난 톱니를 견뎌내는 시간, 그런 것들 말이다. 어느 누가 가사와 육아를 조금 더 분담하거나 하는 일은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 결국 아내와 나는 결혼하기 전 서로를 알아가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었다는 걸, 그 긴 전쟁의 끝에 깨달았다.


아들의 50일 기념 가족 사진.


아내와 나는 그 이후로도 아직 예전과 같은 사이를 회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예전과 완벽하게 똑같은 상태로는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관계는 깃발처럼 단숨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블록처럼 공들여 쌓는 것이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블록쌓기의 결과물이 예전과 같은 모습이던, 혹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던 간에. 얼마 전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나도 그 말을 주워섬기며 그 블록쌓기의 시간들을 건너는 수 밖에 없으리라.


'나도 남편이자 아빠인 건 처음이야. 당신이 그런 것처럼. 이제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 모든 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