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놈의 '돈' 문제만 아니었다면 이 땅의 아빠들은 더 쉽게 육아휴직을 선택했으리라. 외벌이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맞벌이 가정 또한 남편의 일년 치 수입을 포기하는 것은 육아휴직의 심적인 만족도와는 다른 별개의 문제다. 거기에 만약 주택담보 / 전세 대출이라도 끼어 있다면 빠듯한 상환 일정 탓에 육아휴직은 더더욱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고.
수입이 반으로 줄어드니 지출도 반으로 줄여야 하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다. 세상에는 수많은 '올라가긴 쉬워도 내려오긴 어렵다'가 있는데 '소비와 지출'도 명백히 그 중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수많은 재테크 서적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부자 되는 지름길'이라고 쓴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육아휴직 초반 가계부를 쓰며 온갖 지출 항목을 낱낱이 훑어보았지만, 어떤 지출 하나를 콕 찝어서 뭉텅이로 떼내듯 절약할 방법은 없었다. 지출항목의 리스트를 보며, 돈을 아끼는 일은 그야말로 몸에 배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중에는 이미 습관이 되어버려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라며 허용해 버리는 자잘한 지출들이 모여 매달 카드회사에 뭉칫돈을 갖다 바치고 있었다. 자잘한 소비 습관은 '나는 그래도 절약하며 쓰는 편이야'라는 인지부조화까지 부작용으로 안겨주는 나쁜 습관이었다. 가상화폐니 어쩌니 하면서 부의 축적마저 첨단화되는 이 시절에, 무척이나 낡은 단어처럼 되어버린 '근검절약'이 실은 '위대한 습관'임을 육아휴직의 시작과 함께 절실히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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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육아휴직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늦은 출산 덕분이었다. 출산이 늦었기에 그나마 집이며 노후준비를 조금이라도 더 해놓을 수 있었고, 그 덕택에 일년 동안의 수입을 포기하더라도 아끼며 살자는 마음으로 버텨볼 엄두라도 낼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면 나 또한 육아휴직은 그저 그림 속 못먹는 감 처지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했다. 국가적 문제가 된 고령출산이 어느 한 쪽에서는 육아휴직의 지렛대가 될 줄이야. 도대체 이 나라의 어느 구석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돌보는 '평범한' 일들을 이렇게 비틀고 꼬아놓은 것인지, 잠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라 사정을 씁쓸해 할 처지는 아니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우리 집 가계부. 지출항목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컴퓨터 화면 속에 답은 없었다. 돈을 안쓰고 살 순 없으니 휴직 기간 동안의 지출 관리 원칙을 명확히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위대한 '근검절약'의 습관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육아휴직 초반의 어느 날씨 좋은 날 오후, 아내도 출근하고 아들도 어린이집에 가고 혼자 남은 집에 앉아 진중한 마음가짐으로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던 영화 속 대사를 가슴 깊이 뇌까렸다. 지금 나는 돈도 없는데다가 잘못하다간 가오도 없을 처지에 놓였다. 대 위기였다.
모든 것의 대원칙은 기존에 모아두었던 예금이며 투자에 손을 대지 않고, 만약 그것에 손을 뻗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뒤돌아 볼 것 없이 조기복직하는 것이었다. 억만금을 모아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들의 앞날과 그 앞날에 '나이 든 아빠'라는 부담을 지우지 않을 작지만 동시에 소중한 재산이었다. 아무리 현실지향적으로 산다지만 미래를 갉아서 현재의 시간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기세 좋게, 보무도 당당하게 회사에 육아휴직 신청서를 던지고 나온 터다. 모양 빠지게 중간에 돈이 없어 조기 복직하는 희극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 마음과 함께 시작한 8개월이 어느 새 물처럼 흐르고 복직을 한 달 앞둔 10월. 지난 시간들을 되훑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육아휴직의 손익계산서를 두드려 보았다. 물론 육아휴직에 있어 돈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알뜰하게 살았는지를 배제하고 성공적인 육아휴직이었는지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남들이 밖에서 돈을 버는 동안 집안을 지킨다는 것을 '알뜰'이라는 평범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최저의 지출로 최대의 효율을 내어 풍족한 살림을 가꾸어 내는 것은 작은 가정부터 거대한 기업, 국가까지 모두가 희망하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므로.
일단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예금과 투자를 깨지 말자는 대원칙은 지켜냈다. 눈물의 복직 대신 손에 들고 있는 현금 만으로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견뎌내었으니 일단 실패하지는 않은 재정 관리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묘한 호승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a.k.a 소비 욕구)와의 싸움에서, 과연 어떤 성적표를 거뒀을까 하는.
지난 일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려고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치졸해 보일 법한 절약은 하지 않았다. 아들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한 이런저런 가족여행도 두 번 다녀왔고, 아들의 교육을 위한 지출도 줄이지 않았다. 3년 된 낡은 휴대폰도 최신기종으로 바꿨고, 지인들에게 '왜 이렇게 열심히 사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나를 위한 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름 자존감 있는 한 해 살림살이였으니, 이제 그 뚜껑을 열어 계산서와 영수증들을 살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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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손익계산서
통장 입출금내역을 기준으로 한 8개월 간 육아휴직의 손익계산서는 아래와 같았다.
기초잔액(①): 12,150,000원
연중수입(②): 28,566,000원 - 회사의 성과급, 육아휴직 수당, 주식 투자 수익 등
현재잔액(③): 17,892,000원
총 지출(①+②-③): 22,824,000원
월 평균 280만원 정도를 쓴 셈이니, 휴직 마지막 달도 비슷한 금액을 쓴다고 가정하면 9개월 간 총 2,600여만원을 지출한 셈이었다. 이 금액에 포함된 지출 항목들은 아래와 같았다. (아내와 나는 신혼 때부터 모든 생활비를 정확히 반분하여 지출하고 있으므로, 공동 지출분과 개인 지출분으로 나누어 보았다.)
아내와 반분하는 지출: 월 152만원
모든 생활비(세금 및 공과금, 유류비, 아파트 관리비 포함): 아들의 방과후 교실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아들은 현재 세 가지의 방과후 교실을 다니고 있으며 모두 합하면 월 42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아내와 반분하므로 나의 지출에서 아들의 교육비가 차지하는 금액은 월 21만원이다.
이모님(베이비 시터)께 드리는 급여(약 110여만원/월): 아들이 만 두 살 무렵부터 어린이집 하원과 저녁식사를 챙겨주신 이모님은 워낙 밝은 성격에, 아들을 친자식처럼 잘 돌봐주시는 분이셔서 복직 후에도 함께 하기 위해 휴직기간 동안 계속 일을 부탁드렸다. 대신 그렇게 얻는 시간은 개인 학습, 독서, 아들의 교육을 위한 정보 수집, 봉사활동 등으로 더 알차게 활용하였다. 아내와 함께 약 110만원 정도를 드리고 있으므로, 내가 분담하는 금액은 월 55만원이다.
스스로 지불하는 지출: 월 평균 128만원
통신비, 대중교통비 등
개인 약속이나 외출 시 지출하는 비용
영어회화 수업 수강료(월 18만원)
각종 보험료(월 33만원): 10년 이상 납입한 종신보험, 연금보험, 실비보험이므로 해약하지 않기로 하였다.
어머니 생활비(월 50만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전업주부이신 어머니에게 드리는 생활비이다. 요금 물가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국민연금을 수령하고 계셔서 감안하여 드리는 중이다.
만약 아들의 어린이집 하원과 방과후 케어(월 55만원)를 스스로 했다면 월 평균 지출 수준은 225만원이 될 것이고 아마 대리 보육자가 없는 일반적인 육아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지출 수준이 되었으리라. 모든 사회생활을 끊고 가정에만 올인했다면 개인 지출도 보험료와 어머니 생활비를 포함하여 100만원 이하로 줄일 수 있었겠지만, 대신 아들에게 고립감으로 어두워진 아빠가 등장했을 것이므로 아쉬움을 접기로 했다.
만약 우리 집이 외벌이 가정이라고 가정했을 때, 나의 지출 성적표를 기준으로 육아휴직 1년을 결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은행 잔고를 역으로 계산해 보면 어떨까?
(주요 가정: 경기권 자가 주택 - 대출 없음, 중형차량 1대, 대리 보육자 없이 자가 보육하며 그 외 모든 지출은 현재 우리 집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출, 육아휴직 외의 별도 수입은 없다고 가정)
현재는 맞벌이하는 아내와 생활비를 정확히 반분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내가 내는 공동지출 152만원에서 이모님 급여 55만원을 제외하고, 남은 97만원의 두 배인 194만원이 공동 지출 생활비가 된다.
여기에 개인 지출을 더해야 총 예상 지출 총액이 될 것이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아내의 보험료나 개인 지출이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가정하였다. 나의 개인 지출에서 특이 지출인 영어회화 수강료와 어머니 생활비를 제외하면 60만원이 순수 개인 지출인데, 이의 두 배인 120만원이 부부 두 명의 예상 개인 지출이 된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공동 지출 생활비(194만원)와 개인 지출(120만원)을 더한 총 314만원이 1개월 생활비로 예상된다. 물론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기회비용도 지출로 포함해야 하지만, 기회비용이 아깝다면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제외하였다.
나의 휴직 전 급여를 기준으로 고용보험 홈페이지에서 계산한 육아휴직 수당은 연간 1,466만원이므로, 순수하게 금전적 관점에서만 육아휴직을 결심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이 약 2,300만원 정도의 여유자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상 지출(①): 314만원 * 12개월 = 3,768만원
육아휴직 수당(②): 1,466만원
필요 은행 잔고(③): 2,302만원
2,300만원은 작은 돈이 아니지만 요즘 물가나 집값 같은 것에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돈도 아니었다. 2023년 최저 시급(9,620원 / 주 5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계산한 연봉이 약 2,400만원 정도라고 하니, 만 네 살 아이가 딸린 사십대 초반 부모의 가정이 아이 사교육까지 챙기며 일년 간 지출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낭비하지 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돈에는 나와 아내의 핸드폰 최신기종 변경, 식기세척기 구매비용, 1박 2일 캠핑카 대여를 포함한 두 차례의 국내여행, 각종 경조사 비용 등 대형 지출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아예 문 닫아 걸고 절약에만 몰입한 결과물도 아니다.
그래도 없는 살림에 아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 보겠다고 캠핑카를 빌려 여행도 다녀왔다. 태생적 도시남자인 아들이 첫 캠핑을 노지로 시작할 순 없어서... @ 양평 유명산
물론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그나마 노후준비, 대출이자 등의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해준 노령출산의 덕이 컸다. 내가 주 5일 40시간 근무하며 최저시급을 받는 20대 초반의 아빠라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는 이 년 동안 수입의 50%를 저축할 경우 육아휴직에 필요한 은행잔고 2,300만원이 모인다. 만약 그렇다면 육아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 최저시급을 받는 근로자는 대부분 비숙련 노동일 가능성이 높고, 그런 경우 고용안정성이 취약하다. 설사 그에게 육아휴직을 용인하는 고용주가 있다 하더라도 근로자 스스로가 육아휴직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숙련 노동의 경우 재취업이 좀 더 용이할 수도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구직난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육아휴직에 따른 실직이 도리어 가정의 경제 기반을 흔들 수도 있다.
쉽사리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경제 논리로만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는 육아휴직이라는 제도는 어찌 보면 '아동의 기본권'이라는 관점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아이가 미래'라는 말을 사회 곳곳에서 스스럼 없이 쓰곤 한다. 하지만 그 미래가 자라기 위한 최고이자 필수의 자양분인 아빠, 엄마와의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에 경제 논리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아직 꽃 피지 않은 미래를 금전 몇 푼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쩌면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의 어떤 배려, 혹은 합의가 조금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은행 계좌를 들춰보고 계산기를 두드린 탓에 어깨가 찌뿌둥했다. 나 자신(a.k.a 소비 욕구)와의 일년 여의 대결은 일단 승리 쪽에 약간 가까운 무승부로 결론내리기로 했다. 계산 마지막 줄에 남은 숫자를 보며 기지개를 크게 켰다. 스스로 잘했다고 자랑할 일도, 아내한테 이 정도로 아끼며 살았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심했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더 지출을 줄이며 살 수 있었겠지만, 아들과 함께 이런 저런 추억을 만들며 더불어 큰 낭비도 하지 않았으니 결국 시간을 헛으로 보낸 것은 아닌 셈이니까.
연극이며 마술쇼며 그래도 챙길 건 다 챙기며 산 한 해였다. 물론 안간힘을 들여 저렴하게 즐길 방법을 찾아다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