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도 기부할 수 있어요
엄마, 나 이제 머리 자를까?
어머, 그럴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하임이가 2년을 길러온 긴머리를 드디어 자르겠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워낙 머리숱이 없어 3살까지도 '씩씩한 왕자님' 소리를 들었던 하임이는 5살쯤 되니 공주풍의 옷과 머리스타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민들레 홀씨 같은 머리에 레이스 치마를 입고 신이 나서 이리저리 씰룩이며 춤을 추는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2년 여의 공주시기를 지나는 딸을 키우다 보니 연한 핑크, 장밋빛 핑크, 진한 핑크.. 하늘 아래 같은 핑크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시크릿 쥬쥬부터 겨울 왕국, 캐치 티니핑을 지나며 머리스타일 역시 하나로 묶었다가 리본으로 묶었다가 양갈래로 땋았다 하며 많은 변천사를 거쳐왔다.
7살에 유치원에 가면서 치마에 대한 집착은 끝나가나 싶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하나는 긴 생머리였다. 어느 날 아이 친구 한 명이 단발머리를 하고 왔는데, 자른 머리카락을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5cm 이상의 머리카락을 기부하면 어린 암환자들에게 가발을 만들어 제공한다고 했다.
- 엄마, 나도 머리 길러서 기부할래~!
- 그래? 그럼 미용실 갈까?
- 머리 얼마나 잘라야 기부할 수 있어?
- 엄마가 찾아보니까 25cm 이상 길러야 한대. 지금 자르면 OO이 머리 길이 정도 되겠다.
- 그럼 난 더 기른 다음에 자를래. 자른 다음에도 긴 머리 할 거야.
하임이의 머리 기르는 명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고, 그렇게 머리를 길러오는 동안 수고스러움은 내 차지가 되었다. 아침에는 긴 머리를 빗어 묶어주고 땋아주느라, 저녁에는 긴 머리를 감기고, 말리느라 시간이 꽤나 걸렸다.
머리도 계속 헝클어지고, 말리는 것도 수고스러우니 이제는 머리를 자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렇게 아이의 키와 함께 머리카락도 열심히 자랐고, 어느새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가 되어 있었다.
마침 곧 제주 집에 시부모님이 놀러 오시기로 했는데 어머님이 젊을 때 미용실을 하셨기에 하임이 머리를 좀 잘라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기로 한날, 의자에 앉아 있는 하임이의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놓고 보니 허리까지 올 만큼 길었다.
나도 여태 살면서 이렇게 긴 생머리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오랫동안 기른 고운 머리를 자른다고 생각하니 이제와 내심 기분이 섭섭하기도 했다.
자르려는 지점보다 조금 위, 그리고 조금 아래를 2개의 고무줄로 묶었다.
- 얼마나 자르면 되니? 좀 봐줄래?
- 어머니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몇번이나 30센티 자로 이미 재두었지만 나도 어머니도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묶은 머리 뭉텅이를 열 번쯤 잘게 가위질을 하고 나자 잘린 머리카락들이 두 덩이로 나뉜다. 방금까지 몸에 붙어있던 머리카락 뭉치가 손에 들려 있으니 새삼 신기하다.
- 하임아! 이거 봐봐. 우와 많이 길렀네.
- 우와! 우와...
아이가 머리카락 뭉치를 손에 들더니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만지작 거리며 싱글벙글한다.
그사이 어머니가 머리의 고무줄을 풀어 짧은 머리가 스르륵 얼굴로 흘러내린다.
- 어머. 어머나. 예뻐라. 새롭다!
- 그러게 하임아 완전 다른 느낌이네. 잘 어울린다!
나도 남편도 오랜만에 보는 하임이의 단발머리에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의 단발머리를 보고 있으니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단발머리를 했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그 해부터 두발자유화가 되어 더 이상 단발머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생기던 때, 머리를 마음껏 길러도 된다는 소식이 어찌나 기뻤는지.
가늘고 갈색이었던 내 머리는 손질하기 아주 좋았다. 올림머리를 자연스럽게 잘 묶는 것이 그시절 나이에는 특기라면 특기였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의 머리를 묶어주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날, 파마를 하러 미용실을 가던 엄마에게 '학생은 단정하게 단발을 해야 한다'며 반 강제로 미용실에 끌려가 입이 댓발 나온 채로 미용실 의자에 앉혀졌다. 울컥하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혹시라도 내게 잘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품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거울 속 단발머리가 된 내 모습은 처참 그 자체였다. 게다가 다시 기르려면 한참이나 걸릴 만큼 귀 아래까지 오는 짧은 단발이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아무 말도 못 하고 먼저 나와 집으로 향하던 길,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가는 남동생을 만났고, “머리 잘랐어?” 하고 묻기에 "내가 자르기 싫댔는데 엄마 때문에 억지로 잘랐어!!" 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집에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4학년이었던 남동생은 미용실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는 누나 머리 자르기 싫다는데 왜 억지로 자르고 그래!! 누나 울잖아!"하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 엄마와 미용실 선생님을 난감하게 했다고 한다.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발머리다.
그래서 하임이도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머리스타일을 바꾸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본인이 먼저 자르겠다고 하긴 했지만 혹시나 자른 머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했다.
다행히 8살 하임이는 14살의 나보다 단발머리가 훨씬 잘 어울렸다. 사실 머리스타일 자체가 썩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기부를 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찰랑이는 단발머리와 깨끗한 피부. 동그란 볼, 빛나는 눈동자까지 무엇하나 새것이 아닌 것이 없다. 얕은 주름, 아주 작은 티끌 하나 없이 빛이 나는데 어떻게 예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새삼 그 옆에 있는 내 모습과 더욱 비교되어 보인다. 특히나 둘째를 낳고 100일쯤부터 머리가 너무 빠져 정말 이러다가 골룸스타일이 되는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났던 내 정수리를 들여다본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자며 사 먹은 모발관리영양제가 힘을 좀 써준 모양인지 200일이 된 지금은 잔머리가 까맣게 많이 올라왔다.)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은 소아암 환자의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무렴 더이상 중학교 1학년도 아닌 나도 이렇게 머리카락 몇 올에도 신경이 쓰이는데, 어린 환자들, 그리고 지켜보는 부모들은 얼마나 더 속상하고 마음이 탈까.
하임이의 머리로 만든 가발을 전해받을 어린 친구에게도 반짝반짝한 예쁜 머리가 자라나길, 건강해지길.
하임이의 열심히 기른 머리카락에 함께 숟가락을 얹어정말 간절히 빌어본다.
아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영상이 올라와 있어요.
-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