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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Apr 19. 2024

[한 달 리뷰] 제주 타운하우스에서 살기 (2)

타운하우스 한 달 후기(나도 마당이 있다!)


지난 글 : 제주 타운하우스에서 살기(1)



오늘은 제주 타운하우스에서 살기 (2) 주택살기(타운하우스) 편이다.


처음에는 관리가 잘된 양옥집이나 제주느낌이 물씬 나는 구옥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첫째가 같이 뛰어놀 또래 형제자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처럼 놀이터도 없으니 동네에 또래 친구들이라도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고민 끝에 타운하우스로 결정했다.


그러면 한 달 반 동안의 주택살이는 어땠을까?



2. 주택 살기(타운하우스)



1) 이사할 때 고려할 점  

제주의 집들은 가전, 가구가 포함되어 있는 풀옵션 집이 많은데, 우리는 짐을 가져가고 싶어 일부러 노옵션인 집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제주까지 짐을 모두 옮기는 이사를 했고, 신경 써야 하는 점이 많았다.


단층 타운하우스는 거의 없고 대부분 2층, 우리 집은 다락방까지 3층집이다. 그러다 보니 가구를 한번 배치하면 층간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각 방과 거실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결정하고, 그에 따라 [각 층에 어떤 가구를 놓을지] 미리 정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집을 보러 가는 날 줄자를 가져가서 모든 방과 거실크기를 쟀고, 그걸 바탕으로 도면도를 그려 가구 배치를 미리 짜두었다. 덕분에 이사하던 날 이삿짐 업체에서 "이건 몇 층이에요?" 할 때마다 막힘없이 안내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작업을 해두지 않았다면 당황과 멘붕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거실의 라탄 의자 하나를 2층으로 옮기려고 시도했으나 계단 폭보다 의자가 커서 포기해야 했다. 소가구나 분리가 가능한 경우 아니고서는 사실 불가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1층과 2층 도면도와 가구 배치도(중간본)
잔 짐들은 몇 층으로 갈지 적어서 따로 포장해 두었다.

또, 마당 혹은 집 뒤쪽으로 차량 진입이 가능한지에 따라 사다리차 사용여부가 달라진다. 우리 같은 경우 마당 크기가 꽤 큰데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구조라 사다리차 사용이 불가능했다. 대신 ‘스카이차'라는 것을 불렀는데, 시간당 금액이 상당하고 미리 예약이 필요할 수 있으니 사다리차 이용여부를 꼭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트랜스포머가 생각나는 스카이차



2) 3층 집에 산다는 것

매트 없이는 다니지 못하는 콩이를 위해 매트를 거실 전체에 깔고, 이제 막 뒤집기와 되집기가 한창인 6개월 둘째의 바운서, 쏘서, 기저귀 갈이대, 범보 의자 등 부피가 큰 아기용품이 거실바닥에 있다 보니 우선순위 중 하나가 큰 거실이었다. 하지만 타운하우스는 집을 가로로 넓게 짓는 것이 아니라 위로 짓다 보니 거실이 넓은 곳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거실이 크면 방이 너무 작고, 방이 넉넉하면 거실이 너무 작았다.


지금 집이 그나마 거실이 큰 편이지만 매트와 아기용품으로 아무래도 좁고 답답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곧 아기 울타리도 설치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수납공간도 많지 않은데 다행히 우리 집은 3층 다락이 매우 넓어서 한쪽에는 잔짐들을 쌓아두고, 나머지 한쪽은 첫째의 놀이방처럼 쓰고 있다. 첫째의 친구들이 놀러 오면 넓은 다락에서 마음껏 장난감을 펼치고 놀 수 있어서 좋다. (매일 치우지 않음ㅎㅎ)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아이들 깨울 때, 재울 때, 청소할 때, 환기시킬 때, 물건 가지러 왔다 갔다 할 때 등등.

원래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터라 계단 오르내리는 일 역시 운동하는 기분으로 뛰어오르고 내린다. 둘째를 재울 때에도 아기띠를 한 채 1층부터 3층까지 왔다 갔다 하며 아기를 재우면 금방 몸에 열이 오르고 다리가 당긴다.

계단을 오르내려야 잠이 드는 둘째. 엄마 운동시키는 효녀구나.

계단 때문에라도 1)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방의 용도를 구분할 때 동선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1층에 있는 방 하나를 책장 +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외출 전/후 옷 갈아입기도 용이하고, 빨래 후 옷 정리하기도 편리한 동선이다.



3) 내게는 마당이 있다. 마당이 있어.

이사 후 가장 높은 만족도는 단연 마당이다. 내게는 마당이 있고, 개와 애가 있다. 최고의 조합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콩이가 중문 앞에 코를 박고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고 있다. 현관문을 열어주면 바로 뛰어나가 쉬와 응가를 해결한다. 배변이 1분 컷이라니 감동의 시간 단축이다.

서울에서 늘 출근과 등원 준비로 동동 거리느라 아침에 개들 산책은 꿈도 못 꾸고, 저녁에도 둘 중 한 명이 야근을 하면 산책하기를 기다리는 개들에게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해를 좋아하는 콩이는 내가 첫째의 등하교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기회를 틈타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 나가 일광욕을 하고, 용변을 누고 기쁨의 발차기를 한다. 산책을 20분, 30분씩 해도 대변을 누기 힘들어하던 보리는 이제 마당에서 용변을 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너무.. 몇 번을 말해도 모자랄 만큼 만족스럽고, 개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있다는 뿌듯함이 든다.

응가 후 파워 발차기 하는 콩이 / 응가중인 보리

하임이는 집에 돌아오면 마당에서 갑자기 나 잡아봐라를 하기도 하고, 캐치볼을 하고, 호스를 뽑아다 식물에 물을 뿌리고, 모래놀이 장난감을 헹구고, 잔디에 마구 드러눕기도 한다. 해질녘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은 동남아 휴양지 부럽지 않다.


『공간의 미래』의 저자 유현준 교수는 마당이 가진 장점을 말한다. 집 실내의 공간이 작아도 마당이 있으면 환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마당의 풍경은 사철 변하기 때문이다. 맑고 흐리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창문 밖 펼쳐진 도화지는 계절마다 아니 엄밀한 의미에서는 매 순간 다른 그림을 그려낸다. 그런데 고층 건물에 사는 현대인들은 그 마당 풍경을 잃어버렸고 단조로운 실내 풍경에 갇히다 보니 자꾸 실내 인테리어를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4) 우리 집에 누군가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집에 아주 작은 거미나 지네 비슷한 벌레가 한 번씩 발견된다. 벌레를 정말 싫어하는 하임이가 식겁하긴 하지만 주택에 사는 만큼 감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인 듯하다.

조경 업체에서 주기적으로 살충제를 뿌리신다고 하니 아마 곧 좀 덜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얼마 전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여느 때처럼 개들 배변을 위해 잠깐 마당에 나가서 대변을 누고 있는 콩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한마당 가운데에 전에 보지 못한 뭔가 희끄무리한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여보..!! 마당에 저게 뭐야..?!


콩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가보니 세상에. 새끼쥐가 대자로 드러누워 죽어있었다. ㅠㅠ

정말 얼마 만에 보는 쥐인지. 아마 동네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잡은 모양이었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신나게 뛰어놀려고 하는 개들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급히 다이소에 가서 집게 등을 사 왔고, 둘째를 재우며 마당을 내다보니 남편이 택배 박스에 들어있던 완충재로 쥐를 덮고 엉거주춤한 포즈로 그 위를 집게로 집으려 몇 번을 시도했다 실패했다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서도 물컹한 느낌과 울고 싶은 남편의 심경이 느껴지는 것 같아 으으 소리가 절로 났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 와중에 구경 중인 콩이와 목꺾인 모빌이 웃음 포인트 )

이웃분들과 이야기해 보니 밭이나 풀 숲 근처의 집에는 가끔 실뱀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유난히 제비들이 많이 날아다니고 있는데, 천적을 피하기 위해 똑똑하게도 꼭 사람이 사는 집에만 둥지를 짓는다고 한다. 서울에 살 때에도 매년 비둘기가 실외기 뒤에 둥지를 틀던 집이었던 우리는 제비집이 생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5) + 잔디 관리 비용

제주에서 마당 있는 집을 계약할 때에는 마당 관리가 조건으로 들어가 있는 집이 많다. 우리 역시 마당관리를 계약서 항목에 포함했고, 이사 왔을 때엔 아직 날이 추워 잔디가 노랗게 되어 있는 상태였다.

3월이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어느새 마당이 조금씩 초록색으로 변하더니 잡초가 무섭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마당에 나와 잡초를 뽑고 계신 이웃 분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집에 잔디깎이 기계를 하나씩 가지고 계셨다. 아예 1년 단위로 조경업체와 계약을 해서 관리하는 집도 많다고 한다.


제주살이 카페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잔디는 정말 자주 깎아줘야 하고, 부지런하게 관리를 잘해야 한다. 잔디 관리가 어려워서 전원주택 살이가 힘들었다."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 부부는 이미 육아로 에너지를 충분히 쓰고 있기에 직접 관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조경관리업체를 검색해 보았다.

마침 우리 단지 대부분을 관리하고 있다는 조경업체에서 명함을 주고 갔는데 비용이 1년에 150만원이었다. 150만원이면 한 명의 한 달치 육아휴직 급여다. 이렇게 비싸면 우리가 직접 관리해야 하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근마켓에서 검색한 업체에 연락을 했다. 4일 전 무료방문 상담을 신청했고,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을 했다. 옆집에도 소개해주고 10% 할인까지!

돈 쓰고도 돈 번 느낌이 바로 이런 거지. 당근 마켓 최고다.



6) 난방비 폭탄이 우리 집에도 터지려나

주택살이를 검색하면 많이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가 난방비 폭탄이었다.


제주도는 도시가스가 공급되는 곳이 적고, 대부분 LPG가스를 사용해 상대적으로 가스비가 더 비싸다. LPG가스는 루베*당 가스비로 측정을 하는데 루베당 가스비가 5000원이 조금 넘는다. (같은 제주라 하더라도 지역마다 사용량과 공급처에 따라 금액이 다르다고 하고, 검색해 보니 우리 집이 조금 비싼 편인 듯)

*루베: ㎥(1세제곱미터) 부피만큼의 가스


난방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거실에서는 추위를 많이 타는 개들이 자고, 아이도 둘이 있다 보니 3월 내내 집 전체 난방을 했다. (1층은 20~22도, 2층은 20~24도 정도, 3층 다락은 난방 안됨) 그렇게 한 달간 난방을 한 결과, 46루베를 사용했고, 19만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



7) 문 하나만 열면 다른 세상

현관문만 열면 바로 해가 쬐고 바람이 부는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경험도 새삼 새롭다. 늘 집 현관을 열고 아파트 복도나 계단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이나 지하주차장에서 한번 더 나가야 했는데 이젠 문 하나만 열면 된다.

집에서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아기를 안고 햇볕을 쐬러 나와 마당에 앉아있기도 하고, 개들과 창가에 나란히 앉아서 바깥구경을 하기도 한다.

개들은 하루종일 바깥을 내다보며 구경하고, 정말 많이 짖는다..ㅎㅎ

주차장까지 가지 않고 바로 차를 탈 수 있는 것도, 늘 아기짐을 잔뜩 챙기고 빼먹은 게 있으면 주차장까지 오르락내리락했었는데 이제 부담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옮긴다.


특히 첫째에게는 최적의 환경이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있는 동네 친구들이 지나가고, 그 모습을 본 첫째는 금방 신발을 신고 달려 나간다. 갑작스럽게 킥보드 경주가 시작되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들어가서 놀다 온다.


대신 바깥에서 집이 훤히 들여다보이기에 가끔 집이 너무 지저분하거나 보기 흉한 운동을 할 때에는 커튼을 닫아둔다. 특히 밤에는 집안이 너무 잘 보여 창문마다 커튼과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8)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내요.

다들 1층과 마당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집에 들어가고 나가는 모습이 보이니 서로의 얼굴을 볼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등하굣길이 같으니 어느 집에 어느 아이와 가족들이 사는지 다 안다.


어느 날은 한 집에서 무를 많이 뽑아 왔다며 무를 나눔 하고, 받아간 집에서는 장아찌를 담가 다시 나눠 준다. 얼마 전 초대받은 하임이 친구네 집에서는 엄마들이 둘째를 서로 안아줘서 2시간 동안 편히 푹 쉬고 왔고, 곧 다가올 어린이날에는 각 집을 돌며 놀이하는 작은 어린이날 행사를 하기로 했다. 얼마나 재밌어하고 신나 할지, 하임이와 친구들의 반응을 상상하니 내가 더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주에 친구 집에 초대받은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저녁 해가 어스름히 지는 마당에 비친 아이들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답던지! 분필로 땅에 사방치기를 그리고, 잡초를 뽑는 것도 놀이가 되어 신나게 바구니를 나르고 잡초를 뽑고 역할놀이를 한다.

(여름에 수영장을 만들어 두면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들어온다고 한다. ㅎㅎ)





어릴 적 군인인 아빠를 따라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다.

아파트에 살던 때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관사에 살았던 때에는 더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장면처럼 많은 순간들이 기억난다. 집 앞 커다란 나무의 길게 늘어진 가지에 매달려 놀고, 큰 개집에 들어가서 개와 역할놀이를 했던 기억, 개밥그릇을 들고뛰다가 넘어져 바닥에 쏟아진 잔반들과 무릎을 감싸고 울던 내 모습, 옆집 오빠의 두 발 자전거를 빌려 며칠 동안 혼자 연습했던 수많은 날들까지.


그때의 날씨나 해가 지고 있던 풍경, 무궁화꽃 안에 녹색빛이 나던 귀여운 풍뎅이들, 지글지글 더웠던 공기, 아카시아꽃 냄새 등 세세한 것들까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어린이에게도 자연의 풍경이 강렬하게 오감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가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다시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하는 먹먹한 마음도 들고, 내 어린 시절에 그런 따뜻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우리 가족의 인생에 이번 제주 살이가 그렇게 빛나는 기억으로 남아

여보, 우리 그때 정말 애들 어릴 때 제주살이 참 잘했다.


"엄마 아빠, 우리 제주 살 때 정말 좋았잖아. 나 아직도 기억나."


어른이 된 하임이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날이 오겠지?


ps. 우리 아기 하루는 아마 기억 못 하겠지만 사진 많이 찍어서 남겨줘야지.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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