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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Apr 26. 2024

1학년 아이에게 휴대폰이 생겼다.

제주도에 왔더니 스마트폰을 주네?

1학년 첫째에게 휴대폰이 생겼다. 휴대폰을 선물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다.

안전한 등하교 대책 중 하나로, 초등학생 1학년 신입생과 특수교육 대상자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단말기에 월사용료까지 부담해 준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위치 정보 조회가 가능하다는 것이 솔깃했다. 아이가 혼자 등하교하는 횟수를 점점 늘려가고 있는데 학교 근처에 아이들을 태우러 왔다 갔다 하는 차들이 많은 터라 늘 마음이 불안해 몰래 뒤쫓아 가곤 했으니까.

또 비가 오면 여기저기 생긴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리며 노느라,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강아지 봉자에게 달려가 쓰다듬느라, 길가에 떨어진 꽃으로 반지를 만드느라 금방 한눈을 파는 것을 알기에 시간에 맞게 잘 도착하는지도 늘 걱정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학교 콜렉트 콜로 전화를 걸어 곧 오겠다고 하고는 한참 오지 않아 결국 학교까지 가본 적도 여러 번이었다.

위치 조회가 되면 학교까지 따라가지 않아도 아이가 제시간에 안전히 도착한 것을 보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 터였다. 남편과 상의해 혹시라도 아이가 휴대폰에 집착하거나 중독 증세가 보일 것 같으면 바로 반납하자고 이야기하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2주쯤 지나고 아이가 학교에서 휴대폰을 받아왔다. 그 옛날 우리 아버지들이 사용하던 피쳐폰이 생각나는 투박하고 큼지막한 검은색 폴더폰이었다. 못생긴 외관에도 아이는 실망하지 않았다. 방으로 달려가 혼자 사부작 대더니 포스트잇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여 휴대폰에 붙이고, 같이 들어있는 투명 케이스를 끼워 세상에 하나뿐인 깜찍한 핸드폰을 완성했다.


이런 휴대폰은 처음이야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다르다. 처음 보는 홈 화면에 잠시 우왕좌왕하더니, 곧 익숙한 앱아이콘을 발견하고는 금방 탭, 드래그, 줌 인/아웃을 해가며 조작한다.

제일 먼저 연 것은 카메라 앱이었다. 다 같이 가족셀카를 찍자고 한다. 학교에서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머리가 다 흐트러진 첫째, 그 옆엔 똥머리를 틀어 올린 채 둘째의 분유를 먹이고 있는 맨 얼굴의 나, 분유병에 얼굴이 다 가려진 둘째, 자다 일어난 것처럼 눌린 머리의 남편. 이렇게 넷이 둘째의 바운서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었다.

엄마! 나 이 사진 핸드폰 화면에 나오게 해 줘


누가 볼까 두려운 처참한 몰골들의 사진이지만 주문대로 방금 찍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주었다. 시계가 내 얼굴을 반 이상 가리지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는 가족들의 연락처를 저장하고 싶다기에 나와 남편, 양가 부모님들의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고, 이름은 하임이가 직접 키패드를 입력해 저장했다.

나와 남편의 휴대폰으로도 전화를 걸어 화면에 뜬 낯선 번호를 저장한다. 어떤 이름으로 저장할까 고민하다가 [내사랑 하임]으로 저장했다.


하임이가 잠든 후, 안내문대로 안심 앱을 설치하고 부모 휴대폰과 연결을 하고 나니 사용할 수 있는 앱은 전화, 연락처, 메시지, 카메라, 갤러리 이렇게 다섯 개 밖에 되지 않는다. 등하교 시간 전후로는 사용할 수 없게 사용 가능 시간도 설정하고,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간도 하루 10분으로 제한해 뒀다. 아이가 어떤 앱을 얼마나 사용했는지도 알려주고 휴대폰 조작이 오랫동안 없으면 알림을 보내준다니 안심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리고 하임이가 드디어 처음으로 휴대폰을 가지고 학교에 간 날. 학교수업이 끝나고 전화가 왔다.

[내사랑 하임]에게 진짜 전화가 오다니 기분이 묘하다.


- 응 하임아~ 끝났어?

- 우웅 엄마,

- 오늘은 방과 후 수업 교실로 바로 간다고 했지?

- 응 맞아. 근데~~ 그냥 집에 가고 싶어.

- 그럼 집에 와서 쉬다가 갈래?

- 끄~랭~ 엄~마 근데 오늘 엄마의 일과는 뭐였어?

- 엄마? ㅎㅎ 아침에는 테니스 수업 다녀왔고, 방금은 점심 먹었어.

- 그래애~? 엄마는~ 그럼 지금 어디야~?


영락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궁금한 게 많아서 질문을 쏟아내는 것 같은 모습의 아이. 대화내용은 나름 어른스러운데 전화 너머 들려오는 까랑까랑 귀여운 목소리에 웃음이 절로 난다.


어느 날은 하임이 휴대폰이 아닌 콜렉트콜로 전화가 왔다.

- 엄마! 나 핸드폰 사용이 10분이 넘어서 사용할 수 없대. 그래서 학교 전화로 전화 걸었어.


남편이 사용내역을 확인해 보더니 웃으며 나에게도 화면을 보여준다.

갤러리: 5분 / 카메라: 3분 / 메시지: 2분

정말 심플한 사용 내역. 그런데 갤러리 사용시간이 5분? 도대체 갤러리로 뭘 했을까? 하고 열어보니 같이 놀던 친구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고, 그 사진을 함께 본 모양이다.

하임이의 갤러리에는 혼자 찍은 귀여운 셀카 몇 장, 두발을 가지런히 모은 발 사진, 아주 가까이에서 찍은 친구의 얼굴 사진, 우유 먹는 동생 사진, 보리와 콩이의 흔들린 사진, 또 집에서 엄청 초췌한 나와 남편의 사진이 있다. 내 휴대폰에서는 모두 삭제감인 사진들이지만 차마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휴대폰을 닫는다. 아마도 자기가 아끼는 것들을 모두 찍었으리라. 하루 사용시간을 15분으로 늘려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하임이와 하교해서 집에 걸어오는 길.


-엄마, 아빠한테 문자 하나 보내도 돼?

- 그래. 그럼 여기 길에 멈춰서 보내고 가자

- 웅!  

 

타... 닥. 타. 닥. 타.... 닥.. [와퐈 뭐햇?!] (아빠 뭐해?)

자기가 만든 장난식의 말투가 재밌는지 혼자 큭큭 웃기도 하고, 물음표도 넣고 느낌표도 넣고 하니 고작 네 글자 입력 하는데 한참이 걸린다. 알파 세대의 독수리 타법.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래서 메시지 앱이 2분이나 걸렸구나' 이해가 된다.

하임이와 남편의 문자내역


한 달여 동안 옆에서 지켜본 결과, 휴대폰은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첫째는 하교할 때와 학원 끝났을 때 내게 전화하는 용도 외에는 대부분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 부모의 제한(+ 선의의 거짓말)이 충분히 먹히는 시기이기도 하고, 자신이 전화하고 싶을 때 손쉽게 전화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만으로도 욕구충족이 되는 듯하다.


혼자 집에 충분히 올 수 있지만 늘 끝나면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어떻게 할까? 데리러 올 거야? 혼자 갈까~?" 하고 전화를 거는 하임이. 혼자 오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후 금세 다시 전화를 걸어 "엄~마~ 그냥 데리러 와~죠~"하고 이야기하는 귀여운 변덕쟁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울리는 내 벨소리, 그리고 하임이의 통화내용을 들으며 남편이 옆에서 웃는다.

남편 역시 연애시절부터 결혼 이후에도 하도 전화를 많이 해서 내 주변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이 모두 알 정도였다. 웃는 남편을 보며 한마디 한다.

니 딸 맞네. 전화 진짜 많이 하는 걸 보면ㅎㅎ



나의 최근 통화내역...남편은 대부분 같이 있는데도 전화를 참 많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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