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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모사 Jan 11. 2019

그 녀석이다!

[독서하는 여인] 마티스 作


   어느 여름날이었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은밀한 시간, 미주는 자신의 방 쇼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즐겨 듣던 바흐의 클래식 선율이 밤공기를 타고 부드럽게 퍼졌다. 하루 중 가장 감상적인 시간대를 만끽하던 그녀의 예민한 청각이 갑자기 미세하게 반응했다. 뭐지? 방금 뭔가 낯선 소리가 들렸는데? 자리에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하던 미주의 눈앞에 갑자기 주먹 만한 괴생물체가 날아와 돌진하더니 왼쪽 뺨에 부딪혔다. 조건반사로 비명을 지르며 일단 방문 밖으로 나간 그녀는 그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오마이가쉬!!!!
바퀴벌레였다!!!!!


   무식하게 커다랗고 혐오스럽게 생긴, 동남아 습지에나 서식할 듯한 압도적인 비쥬얼을 자랑하는 그 녀석이 쉴 새 없이 날개짓하며 온 방 안을 미친 듯이 휘젓고 있었다.


[절규] 뭉크 作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자신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짐승의 포효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삽시간에 식은땀이 온 몸을 뒤덮고 동공은 몇 배로 확장 되었으며 심장은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요동쳤다.  미주는 어릴 때부터 다리가 많은, 혹은 아예 없는 생물체들을 무서워하고 혐오했다. 그 중 가장 자주 조우할 수밖에 없었던 가택신인 바퀴벌레는 특히 질색 팔색하며 치를 떨었다. 차라리 귀신이 덜 무서웠다. 당연히 손수 때려잡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러던 미주의 인생 최대 난관이 닥친 것이다. 주먹만 한, 그것도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내 집에, 내 방에 있다. 하필 같이 자취하는 사촌은 주말을 맞아 자기 집에 내려가고 없다. 바퀴와 미주, 저스트 투오붜스. 안돼~~~~!!!!!!!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다이얼을 눌렀다. 새벽 2시가 넘은 이 시간에 전화를 받아주는 곳은 동네 파출소. 무슨 일이십니까?라는 물음에 미주는 엉엉 울면서 랩을 했다.


[우는 여자] 피카소 作


저희집에완전큰바퀴벌레가갑자기들어와서막날아다니는데너무크고징그러워서못잡겠어요죄송한데와주시면안될까요이런걸로전화드려서정말죄송한데바퀴벌레가진짜징그럽게생겼거든요막날아와서제얼굴에부딪히고계속방안에서날아다니고있어서못들어가겠어요제발와주세요도와주세요무서워요죄송합니다어허어어엉


   수화기 너머로 5초간 침묵이 이어지더니, 네 곧 출동하겠습니다 하고 이내 끊겼다. 바퀴가 날아다니는 방문을 닫고 현관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미주. 얼마간의 시간이, 하지만그녀에게는 영원같이 느껴졌던 시간이 흐른 후 벨이 울리자 득달같이 현관문을 오픈했다. 사람 좋게 생기신 경찰아저씨 두 분이, 마치 마실이라도 나온 것 마냥 여유로운 태도로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벌레가 있다고요?"

  "네에- 저기요, 저기 막 날아다니고 있어요, 완전 빨라요, 어서 잡아주세요!!"


    경찰관 두 분은 용감하게 방문을 열어젖히고 바퀴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빠르고 큰 놈이라 쉽게 잡히진 않았지만 5분간의 사투 끝에 드디어 포획 완료! 한 분이 감상평을 하셨다.


"이야, 이거 진짜 큰 놈이네~ 우리나라에 이렇게 큰 바퀴가 다 있었어??"


   밖에서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미주는 공포감과 혐오감이 다시금 훅 끼쳐와서 엉엉 울었다. 다른 경찰 아저씨가 그런 그녀를 달래주었다. 아니, 뭘 바퀴가지고 그렇게 서럽게 울어요, 그만 울어요 아가씨, 혼자 살아요? 미주는 계속 히끅거리며, 아뇨 사촌이랑 사는데, 훌쩍,걔가 오늘은 집에 안 들어와서, 훌쩍, 저 혼자 있다가 바퀴벌레가 나와서... 어허어어엉-- 두 분은 번갈아가며 나를 진정시키려 애쓰셨다. 이제 괜찮으니까 푹 자라고, 바퀴벌레 시체는 경찰서로 가져가겠다고.(미주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집을 나서는 두 영웅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몇 번이고 허리 숙이며 감사드렸다. 대한민국 경찰 짱!



  이 날 있었던 바퀴벌레 사건은 미주의 지인들에게 암암리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이후 그녀는 ‘바퀴벌레 때문에 새벽에 경찰 부른 미친년’으로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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