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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모사 Jan 12. 2019

거북이를 키웠었다

   지수는 동물들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동물들을 구경하고 쓰담쓰담 아이 예쁘다 해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동물 프로그램을 즐겨봤었고 요즘은 유튜브에서 동물 관련 영상들을 폭풍 검색하며 그들의 미칠듯한 귀여움에 희열을 느낀다.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끼 동물들이 귀여운 이유가 생존 본능이라고 나왔다. 귀엽다는 건 단순히 미적인 요소를 넘어선 궁극의 장점인 것이다.) 며칠 전에는 고양이들과 거북이 한 쌍이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영상을 봤는데,  새끼고양이 중 한 마리가 거북이를 신기해하며 등껍질을 톡톡 건드리는 장면에 잊혀진 기억 하나가 소환됐다.

 

   지수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의 지인분이 청거북이 암수 한 쌍을 선물로 주셨다. 동물을 싫어하는 엄마 빼고는 다들 좋아라 해서 그 아이들은 거실 한 귀퉁이 수조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름을 지을 때 난관에 부딪혔는데, 도저히 누가 수컷이고 누가 암컷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가족들 맘대로 조금 큰 놈을 수컷으로 정하고 나머지 작은 애는 자동으로 암컷 낙찰. 이름은 지수의 의사에 따라 거돌이와 거순이로 지었다. (걔네들이 자식을 낳으면 거식이...로 지을 예정이었다.)


 

  거북이는 다른 반려동물들과는 달리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이삼일에 한번 물을 갈아주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등껍질에 낀 때를 솔로 문질러 씻어주고 매일 4,5회 정도 거북이용 사료를 수면 위에 뿌려주는 게 전부였다. 등껍질 목욕은 주로 지수가 맡았는데, 딱딱해 보이는 껍질에도 감각이 느껴지는지 녀석들은 그녀가 솔질할 때마다 고개를 틀어 손가락을 물려고 야단이었다. (참고로, 얘네는 꼴에 파충류라서 물리면 아프다.)


   대체로 별 일 없던 나날이었다. 자그맣던 거북이들은 잘 먹고 잘 싸며 쑥쑥 커가더니 어느덧 손바닥만 해졌다. 햇볕이 환한 날이면 녀석들은 수조의 바위 위에 느릿느릿 올라가서 목을 쭉 뺀 자세로 한참동안 일광욕을 했다. 그 때 녀석들의 표정, 세상 다 산 할머니 같은 여유로움과 어떤 체념마저 감도는 얼굴들이 신기해서, 지수는 수조에 코를 박고 그 모습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두어 달이 지났을까, 별 탈 없이 지내던 거돌이가 어느 날 아침에 보니 배를 까뒤집고 물에 둥둥 떠서 죽어 있었다. 어떤 조짐도 없이 말 그대로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아빠가 시체를 치우셨고 거순이는 홀로 수조 안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거순이도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먹이를 뿌려놓아도 먹지를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끼잉 끼잉 앓는 소리를 냈다. 처음엔 다른 집의 개나 고양이가 내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나 가까이서 느껴져서 근원지를 추적해 보니, 세상에나, 하나 남은 거북이 거순이가 내는 소리였다.

   엄마의 명으로 지수는 거순이를 큰 통에 넣고 근처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처음에 들렀던 곳에서는 거북이 진료를 하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았다. 통에 갇힌 거순이는 갑갑했는지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써서 지수는 뚜껑을 꽉 닫고 다른 동물병원을 찾아 헤맸다. 두 번째 동물병원도 마찬가지로 진료 거부. 거순이가 이대로 탈출해서 도망쳐 버릴까봐, 그래서 더 아프게 될까봐 무서웠던 지수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필사적으로 그녀가 알고 있는 마지막 병원으로 내달았다. 


  천만다행히도 그곳에서는 이 가련한 파충류를 받아주었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거순이가 안막염, 즉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쩐지 눈 앞의 먹이도 못 먹더니, 안 보여서 였구나. 그 쪼그만 팔에 주사를 놓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슴이 짠했다. 저 말 못하는 게 얼마나 아팠으면 앓는 소리를 다 냈겠냐며 엄마도 안타까워하셨다.


   지금도 지수는 그때가 선하다. 손에 있는 내 거북이를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눈물 글썽이며 동네방네 헤매고 다녔던 열여덟의 소녀. 겨울이라 제법 쌀쌀했는데도 병원에 도착했을 때 땀으로 흥건했던 등. 거북이가 병원을 다 왔네 하며 신기해하던 사람들의 눈빛. 환자 중 하나였던, 다리가 다친 토끼와 우리 거순이를 나란히 놓고 어떻게든 경주를 시켜보려던 초딩 꼬마녀석. 불안해서 등껍질 속으로 한껏 움츠러들었던 거순이.

   지수가 대학에 입학한 후 거순이는 결국 한강에 방생해주었다. 넓은 물에 살아야 할 짐승을 좁은 곳에 가둬놓고 키우는 건 할 짓이 못된다는 외할머니의 강한 의사 때문이었다. 탁한 강물에 띄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멀어지는 거북이의 단단한 등껍질과 작은 머리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더랬다. 의리 없는 년 같으니. 한 번을 안 돌아보냐. 그 비련의 순간을 함께 했던 친구가, 쟤는 생태계를 열심히 교란시키면서 잘 살 테니 걱정마, 라며 위로했었다. 그래. 오래 오래 잘 살아남으렴. 먼저 간 니 남편 몫까지.


  오늘따라 문득 지수는 옛날 그 집의 거실 한 구석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먹고 햇볕을 쬐던 청거북이 한 쌍이, 생애 첫 반려동물이었던 그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해탈한 듯한 주름진 얼굴, 느릿한 걸음걸이, 만지면 서늘했던 등껍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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