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벼운 이 관계가 싫증 났다
내 주변 모든 것들이 무게 없이 둥둥 허공을 떠다니며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부유 속에서, 나는 방황했다.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가벼운 댓글들, 트위터에 장난스레 올라오는 아이폰 스노우 어플로 찍은 간지 나는 사진들, 무거운 척하고 있지만 실제론 아무런 깊이도 없는 인터넷 상을 떠돌아다니는 글들. 이 가벼움 속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마저 가볍게 느껴졌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가벼운 것이리라. 어쩐지 이 모든 관계가 위태로워 보였다. 관계의 가벼움은 나를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내몰았다. 이 통증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상실한 뒤 찾아오는 허탈함과 공허함, 이유도 모르게 스스로를 경멸하게 만드는 내 사고와 행동이 나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딱 한 달, 그렇게 나는 견디지 못하고 가벼운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삭제 키를 누르 듯 아주 가볍게 그리고 무심히. 깊이 있는 무언가를 계속 갈구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타나지 않았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생각이 필요할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여지없이 내가 찾아가는 곳은 서점. 오늘은 시 부문이다. ‘시’라면 모름지기 함축의 미학이니, 그 어떤 글보다도 한 글자 한 글자 깊이 있게 꾸욱 눌러쓴 글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시 부문으로 가기 전, 서점 이 곳 저곳을 돌아보며 서점 가득 쌓여 있는 지식과 지혜의 종이 더미들을 보며 흐뭇했다. 왠지 모를 마음의 위로. 한 글자 한 글자가 나에게 다가와 '괜찮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아픔도 겪었으니 너의 마음속 통증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나를 향해 있는 글자들. 책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다.
켜켜이 자신만의 무게감을 간직한 채 쌓여있는 글자 사이에서 이 책과 마주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나는 아직도 이 작가의 이름을 정확히 외우지 못한다) 세상이 나에게 혹은 내가 세상에게 깊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깊이의 강요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책장을 열었다. 한 젊은 여성 작가를 향한 비평가의 깊이 없는 평. 이 단순하고 가벼운 말 때문에 그 여류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상실'해버린다.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그 여류작가는 깊이에 대해 생각한다. 그 깊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스스로를 '깊이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으며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 여류작가가 생을 마감하자, 앞서 그 여류작가에게 깊이가 없다던 비평가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그 여류작가의 죽음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던 객관적 상관물인 그녀의 작품은 '깊이'를 가지게 되었다. 이 얼마나 허탈한 깊이인가? 이 짧은 단편 속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광범위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내가 그토록 스스로에게 요구하던 '깊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런 깊이의 실체도 모르며 무작정 파고듦을 강요한 것은 아닌가.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강요하던 깊이라는 것이 실제로 인간이 만들어낸 허위와 허상인 것인가.
깊이
: 위에서 밑바닥까지 또는 겉에서 속까지의 거리.
: 생각이나 사고 따위가 듬쑥하고 신중함.
: 어떤 내용이 지니고 있는 충실성이나 무게.
깊이(명사)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위에서 밑바닥까지 또는 겉에서 속까지의 거리. 둘째, 생각이나 사고 따위가 듬쑥하고 신중함. 셋째, 어떤 내용이 지니고 있는 충실성이나 무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다의 겉모습만 보고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듯이, 사람의 표면만 보고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결과만 보고 그 사람의 내면의 깊이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내가 스스로가 아닌 그 누군가에게 깊이를 강요한다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 왜냐하면 나 아닌 타인의 깊이를 헤아린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불가능하므로. 어쨌든 나는 이제 타인에게 깊이를 강요하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직 나만의 깊이를 위하여, 나만의 탐구를 위하여 파고들기로 했다.
깊이 있는 사람. 내가 그토록 원하던 깊이 있는 사람은 무엇일까. 하나의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섣불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하게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 조금은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 이때 말하는 마음의 여유란, 내가 사고한 것이 세상의 정답이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타인의 의견과 생각, 즉 한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의 넉넉함이다. 세상에 ‘A는 B다’라는 공식처럼 딱 떨어질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는 걸 아는 사람.
그 안에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한 없이 넓은 바다처럼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닐까.